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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 세우고 어깨 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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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 “취미” 두 글자를 검색하니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란 뜻풀이가 뜬다. 처음엔 ‘즐기는 것에 굳이 전문성과 비전문성이 전제되고 구분되어야 하는 걸까’ 싶은 의문이 들다가, 계속 쳐다보니 ‘무엇이 아님’으로 냅다 부정부터 하며 운을 떼는 국어사전이 얄미워진다. 다소 음모론 같을 수 있지만 OECD 국가 중 노동시간 1-2위를 다툴 만큼 노동과 업(業)을 사랑해마지 않는 사회의 ‘사전적 정의’ 답다 해야 할지.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인 취미마저도 굳이 전문적이고 ‘생산성’을 가질 수 있는 일, 즉 직업의 반대급부로서밖에 정의될 수 없는 것인지 이내 아쉬움이 들고 만다.

그러니까 위 정의로부터 혹자는 프로페셔널이 아니며 전문성이 ‘결여된’ 상태, 즉 아마추어리즘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아마추어 천문학회, 아마추어 조기축구회, 아마추어 극단 같은 것들. 천체 관측이 되었든, 공을 차는 것이 되었든, 또는 연극 한 편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것이 되었든. 굳이 위 정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어떤 활동에 ‘취미’라는 두 글자가 붙는 순간 그 활동들은 직업과 돈벌이, 즉 ‘생산성’과는 별개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한 개인이나 집단이 어떻게 자신의 여가를 보내고 즐기느냐의 문제로 국한되는 듯 보인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취미란 직업과는 달리,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야 여가에 대한 담론이 일기 시작하였는데 그렇다면 취미는 언제쯤 사회적인 화두가 될 수 있는 걸까, 등의 생각 또한 이어 든다.

취미가 그 자체로 정의되지 못하고 홀대받는 기분이 들어선지 서론이 다소 길었다. 아마도 이는 이번 글을 쓰기 위해 취재하였던 ‘여우 플라멩코’ 덕인 듯 하며, 그들의 연습실을 참관하고 대화를 나누는 한 시간 남짓 취미의 중요성을, 또 함께 ‘즐기는’ 것의 힘을 피부로 또 몸으로 느끼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소개할 ‘여우 플라멩코’는 연극배우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플라멩코를 추는 취미 모임으로, 2014년에 시작되어 어느덧 5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지속적인 연습과 모임의 힘인지 지난 5년 동안 이들은 각종 페스티벌과 더불어 여러 축하무대에서 꾸준히 공연을 선보여 왔고, 더 나아가 정기적으로 자체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는 등, 상당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취미로 하는 것이니 뭐 대단한 걸 할 것도 아니고, 잘 추는 팀은 이미 많으니 그저 재미있는 플라멩코를 지향한다고 말하는 그들이었지만, 어쩐지 연습실에 들어서며 보게 된 움직임은 그 내공이 상당히 대단해 보였다. 기존 플라멩코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다 보면, 본업이 본업인지라 일단 표정부터 지으며 시작하는 본인들을 발견하게 된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하였는데, 듣고 보니 무대에서 몸의 상태 그 자체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익숙한 그들이기에 테크닉과 더불어 여러 요소를 동시다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강점이 아닐까 싶었다. 이렇듯 ‘여우 플라멩코’는 관객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무대를 지향하며 각 행사의 취지에 맞게 공연의 구성과 안무를 각색하여 선보이기도 하고, 플라멩코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연극작품 속의 여성 캐릭터들을 무대 위에 불러들이기도 한다(<Viva La Vida>(2017)). 캐릭터들의 대사에 리듬을 입히고 춤을 얹는 등, 이들은 취미 활동 가운데 자신의 본업인 배우/연기라는 영역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시도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퓨전을 ‘맞춤 제작’한다.

이들의 모임은 일방통행적인 방향으로 취미만 다채롭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물론 이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지만). 춤의 발상지인 스페인과 달리 아직 한국에서는 플라멩코가 그리 대중적인 춤이 아니기에, 각종 작품에 협력 안무로 참여하거나 참여 중인 작품에 플라멩코를 응용하여 무대를 다채로이 하는 경우도 다수였고, 더 나아가 몇 구성원은 모임을 계기로 플라멩코 음악극에 참여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시적인 영향과 더불어 무엇보다 플라멩코라는 춤은, 연극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와 맞닿은 점이 참 많다고 한다. 척추와 어깨의 자세 교정과 체력 증진을 위해 플라멩코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지만, 다른 발산 위주의 춤들과 달리 플라멩코는 추는 사람의 정서와 함께 운용되는 경향이 강하기에,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다르듯이, 플라멩코 동작 역시 개개인의 신체적 특성, 또 그 신체의 사용방식에 따라 그 ‘맛’이 다양해진다고 한다. 리듬을 정확하게 듣고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틀이 주어지지만, 기본적인 틀은 지키되 각자가 표현할 것을 ‘멋대로’ 살려내는 것이 중요한 춤이기에, 이들은 플라멩코 연습을 하면서도 연기와 유사한 점들을 시시각각 체감한다고 한다.

앞서 언급하였듯 플라멩코는 척추와 어깨를 펴고 춰야 하는 춤으로, 이와 같은 자세를 만들다 보면, 낮아진 자존감이 다시금 서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물론 춤과 자세가 이러한 기능을 하기도 하겠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커뮤니티로서의 순기능 또한 적지 않아 보였다. 정기적이고 정규적으로 일을 지속하기 힘든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땐 그 시기가 까마득해 여러모로 위축되고 힘이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럴 때 이들은 함께 모여 춤을 추고 밥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어려운 시간을 겪어낼 수 있도록 서로의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이다.
더불어 모임의 구성원 수가 적지 않기 때문에, ‘한 다리 두 다리’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현장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교류가 일어나 ‘작업소개소’로 기능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의상 대여와 운전 등의 ‘매니지먼트’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상부상조의 순환에 부족함이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출산 등의 이유로 경력이 단절된 배우들이 모임에 나와 몸을 조금씩 풀고 교류를 하게 되며 작품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이렇게 춤이라는 매개로 여러 구성원이 각자의 삶에서 회복을 도모하고 고립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힘을 받는 경우 또한 많다고 한다.
‘여우 플라멩코’의 연습실을 참관하고 그들과 짧은 대화를 나눈 뒤에, 필자는 필자에게 있어 연극이란 활동과 삶의 관계에 대해, 또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일반화하기 힘든 경우일 수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연극이란 것을 소위 직업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이것이 나의 취미가 아닌 직업임을 한사코 증명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는 이 사회에서 연극의 자리와 벌이가 불안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고, 연극계라는 제도 내에서 신진으로 분류되는 필자의 자리와 벌이가 불안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해 두 해가 지나며 삶 가운데 연극이란 활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면서부터, 어느 순간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까지가 취미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잦아지는 걸 느꼈다. 새로이 느껴지는 불안과 버거움에, 과장을 조금 보태어보자면, 가장 사랑하던 취미 하나를 잃은 기분이랄지.

아마 당분간 생각들에 대한 정리가 명료하게 될 것 같지는 않으며 이 사회에서(혹은 필자 개인에게) 연극은 언제까지나 일이기만 할 수도, 또 취미-즐거운 일이기만 할 수도 없을지 모르겠다. 다만 해답과 정답을 찾을 수는 없을지언정 그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방향성을 더듬고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찾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취미가 필요하다.


여우 플라멩코 정보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actressflamenco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태그 여우,플라멩코,송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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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원

송이원 연출가
‘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
eewons@gmail.com
제160호   2019-05-3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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