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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지금도, 여기에도 - 2019년 관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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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더러 그나마 극장에 찾아오는 손님은 대개가 대학생으로서 그것도 여학생이 태반이다. 이는 한국연극이 대사회적 영향력의 한계를 옹색할 만큼 제한시켜 버려 교육 정도가 낮은 대다수의 일반 대중과 연극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대시켜 줄 수 있는 교육 정도가 높고 사회의 중추를 이루는 샐러리맨, 인테리겐치아 관객을 다같이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문화가 앞으로 발전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원이 여자라 한다면 이 또한 심각히 고려해야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성’관객 수난사
1971년 발표되었던 평론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위의 평론가는 당시 한국연극의 획일화 문제를 지적하면서 관객의 폭이 좁아지고 심지어 ‘여학생 관객’이 주를 이루는 점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여학생 관객이 주를 이룬다는 사실이 관객의 획일화를 의미한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지만, 그 다음 대목은 사뭇 문제적이다. 문화가 발전하는 데 있어 필요한 에너지원이 여자라는 점이 왜 심각한 고려 사안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관객에 대한 글을 청탁받고서 오랫동안 묵혀 두고 있었던 기억들을 되살려보았다. 1930년대 동양극장을 찾았던 수많은 여성 관객들, 1950년대 악극의 전성기와 1960년대 한국영화의 붐을 이끌었던 여성 관객들은 문화의 발전에 있어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향유자였지만 ‘고무신 관객’이라는, 다분히 비하의 의미가 내포된 단어로 지칭되곤 했다. ‘고무신 관객’이라는 단어 뒤에는 으레 ‘눈물 바람을 일으키는’, ‘교육의 정도가 낮은’ 따위의 함의들이 따라붙곤 했다. 세월이 흘러 새롭게 소비 주체로 떠올랐던 1970년대 여학생들은 이전 시대의 여성 관객에 비해 정식 대학 교육까지 받은 엘리트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 2019년 관객을 소개하면서 이런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과거는 현재를 되돌아보는 가장 강력한 거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관객들이 모이는 곳 : 트위터, 연뮤갤
관객들이 주로 사용하는 플랫폼이 SNS 트위터와 디씨인사이드 사이트의 연극뮤지컬갤러리(이하 연뮤갤)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최근 몇 년간 공연 정보를 공유하려는 관객들의 움직임에 힘입어 트위터나 연뮤갤을 이용하는 관객들의 숫자는 꾸준히 늘어났다. 인터뷰에 응해준 한 관객 역시 정보 공유의 차원에서 트위터와 연뮤갤의 차이를 설명했다. 짧은 글자 수로 콘텐츠를 제한하는 대신 리트윗(타인의 트윗을 공유) 문화가 활발한 트위터의 경우에는 티켓 오픈 소식과 같은 정보들이 빠르게 공유된다. 게다가 공연기획사들이 공식 계정을 운영하거나 배우의 팬 카페가 계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필요한 정보를 한 번에 수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티켓팅 전쟁’이 벌어지는 공연들의 경우 티켓과 관련된 정보는 관극의 기회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정보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객들은 인기 있는 공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반면 연뮤갤의 경우에는 공연정보사이트에서는 얻을 수 없는 비공식적 정보들이 공유되는 곳이다. 흔히 말하는 ‘계자 피셜’의 정보들이 공유되고 자신이 본 공연에 대한 후기도 꾸준히 올라온다. 플랫폼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기능에 특화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두 플랫폼 모두 정보의 유동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트위터가 업데이트 되는 속도나 연뮤갤에 글이 올라오는 속도는 항시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순식간에 놓쳐버릴 정도인데, 이것은 반대로 관객들의 적극성을 입증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최근 연극계에서 ‘관객’의 존재가 강하게 부각된 계기는 아무래도 미투와 맞물려 개최되었던 관객참여집회(#withyou 집회)일 것이다. 공연계에서 미투가 크게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한 공연관계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연뮤갤에 털어놓으면서 부터였다. 관객들은 해당 관계자의 피해 사실과 유명 배우의 가해 사실을 결코 묵인하지 않았고 크게 분노했다. 늘 그렇듯 쉬쉬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관계자들은 처음으로 관객들이 자신들을 외면할 수도 있겠다는, 가장 원초적인 불안감을 갖게 되었고 관객들의 지지 덕분에 많은 피해자가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관객참여집회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늘 공연 관계자들에 의해 대상화되었던 관객들이 연뮤갤, 트위터와 같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모여서 목소리를 낸 ‘사건’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창작자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대학로 거리로 나섰다. 트위터나 연뮤갤을 중심으로 모여든 관객들의 자발성과 적극성은 정말이지 놀라운 것이었다.
‘함께’ 연극을 만드는 존재들
트위터나 연뮤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공유한다. 공연관계자들은 늘 관객들과 만나고 싶지만 종종 연뮤갤에 올라온 글들의 반응을 보면 ‘계자’에 대한 반발감이 상당하다. 처음에는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는 이들이 갖는 고유의 폐쇄성이 공연관계자들과 관객의 거리를 만드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 이런 플랫폼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에도 공연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여성 관객들이다. 하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돈과 시간을 내서 극을 보러 오는 관객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남배(남자배우)들만 있으면 덕후들이 다 보러온다.”, “OO설정이 있으니 언니들이 좋아하겠지.”, “회전하는 관객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와 같은 비하 발언들은 상식 이하다. 무엇을 좋아하고 소비하는지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지만 여전히 다수의 여성 관객은 ‘여성 관객’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을 받고 있었다.
‘미투’ 이후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인터뷰에 응해준 관객은 솔직히 말해 눈에 띄게 큰 변화는 잘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차별적인 발언들은 계속되고 있고 마니아 관객들을 배려하지 않는 마케팅 정책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제적인 공연 대사들이 바뀌거나 젠더프리 캐스팅을 통해 여성 배우들이 설 자리가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신들을 대하는 차별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공연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은 변화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는 말로만 관객이 공연을 함께 만드는 주체라고 할 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이제 1971년의 발언을 정정해보자. 한국문화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원이 여자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나마 있던 에너지원을 흐트러트리는 것은 우리 내부의 오만함일지도 모른다.

태그 2019년 관객 보고서,관객 플랫폼,김태희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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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김태희

한국연극사를 공부하고 있고 연극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shykth@hanmail.net 

제161호   2019-06-13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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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라
전문에 동감하며 또 슬프기도 했습니다. 점점 나아지길..희망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건 이렇게 생각해주는 분들이 있어서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2019-06-13댓글쓰기 댓글삭제

ㅂㅂㅂ
평론에 나오는 관객중 한사람으로서 정말 고마운 글입니다. 잘읽었습니다.

2019-06-13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