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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말하는 또 다른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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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고백하자면, 이번 원고는 많은 애정이 담길 예정이다. 소개 코너 취재를 위해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일은 늘 설렘을 동반하는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특히 더 그러했다. 대상이 최근 새롭게 발행되기 시작한 월간 '여덟 갈피'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매체를 운영 중인 입장에서 월간 '여덟 갈피'의 등장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아날로그식 소통이 갖는 의미
월간 '여덟 갈피'는 공연칼럼니스트 장경진과 아트디렉터 정명희가 의기투합해서 만들어진 매체로 매월 초 A5 사이즈, 여덟 페이지로 발행된다. 마치 공연 팸플릿을 접어놓은 것 같은 모양인데, 시각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각 페이지는 ‘어제의 흔적(리뷰)’, ‘오늘의 담소(인터뷰)’, ‘내일의 기대(기대평)’, ‘밤의 상념(에세이), ’한 잔의 그림(웹툰)‘으로 알차게 꾸려지고 그달의 기억(작품의 대사)을 담은 월력이 굿즈로 포함되어 있다. (매우 예쁘고 아기자기하다!)
사실 종이 매체를 새롭게 만들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매체의 종류에 대한 것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심지어 책도 전자책으로 읽는 시대에 왜 하필 종이 매체를 선택했냐는 것이다. 하지만 '여덟 갈피'가 종이로 발행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다. 다년간 웹 매체에서 일했던 '여덟 갈피'의 운영진은,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하루아침에 그동안 작성해왔던 데이터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너무나 허무한 일이었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일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공연에 대한 콘텐츠들은 숙명적으로 기록의 기능을 수행하기 마련인데, 그 기록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으니 배신감을 느꼈을 법도 하다. 그때부터 손에 잡히는 매체에 대한 갈증이 시작되었고, 매체를 새롭게 만들게 되면서 당연히 종이 매체를 선택했다. 종이 매체라면 적어도 만드는 ‘나’는 보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종이 매체는 눈앞에서 소비된다는 점, 그만큼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웹진에 글을 쓰면서 조회수에 목숨 걸던 순간들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공연 관련 콘텐츠에 대한 피드백이 유난히 적은 편이어서 수치로 나타나는 조회수가 마치 내 글에 대한 리액션인 것 마냥 그럴싸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웹상의 조회수가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고 느끼게 되면서 직접적인 소통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종이 매체가 선사하는 아날로그식 소통 방식은 느리지만 분명해서 매력적이다.
사적이고 내밀한, 그래서 더 친숙한
'여덟 갈피'를 만든 동기는 공연이 너무 좋아서였다. 공연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아 공연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이 일이 직업이 되고 나니 공연을 보는 일이 부대끼게 되었다. 매일 공연을 보고는 있지만 미처 소화되지 못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시 예전처럼 공연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 직접 매체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그래서인지 '여덟 갈피'의 글쓰기 방식은 사적이고 내밀하다. 기본적으로 대상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도 운영진들의 취향에 따른 것이고, (최근에는 여성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이들의 화두다) 특히나 에세이는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최근 자신에게 와 닿은 뮤지컬 넘버의 가사를 중심으로 가까운 지인에게나 털어놓을 수 있을 법한 여러 가지 단상들을 조곤조곤 풀어놓는 식이다.
일반적인 연극 매체에서 에세이 코너가 운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있다 해도 대부분 연극계의 이슈와 관련된 자유기고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는 늘 연극계의 화두, 사건, 소식에만 관심이 있지 정작 공연을 본 개인의 생각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평론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공연에 대해 각주를 다는 것이 평론이 아니라고 하지만 여전히 평론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대를 본 것 같은 생생한 묘사와 기록, 작품에 대한 평가, 작품의 만듦새에 대한 조언, 발전적인 방향에 대한 제시 등이다. 이런 글쓰기의 방식에서 언제나 ‘객관적인 시각’이 강조되고 개인적인 감상이나 사적인 이야기는 부차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공연에 대한 글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해야 한다. 어떤 글은 무대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과 기록으로 다 읽고 나면 마치 한 편의 공연을 본 것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고 또 어떤 글은 날카롭게 비판을 하고 담론을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그 넓은 스펙트럼 어딘가에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연과 함께 들려주고 말을 거는 글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독자들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공연의 만듦새를 평가하는 건 창작자들을 독자로 상정했을 때 필요한 글쓰기 방식이다. 어느 순간 우리의 글쓰기는 지나치게 창작자들을 향해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 '여덟 갈피'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공연 관련 매체의 다른 영역들, 요컨대 철저히 독자들을 향한,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의 공유다.
오늘날 매체를 운영하는 일
월간 '여덟 갈피'는 독립출판물로서의 길을 개척해 나갈 예정이다. 소수여도 꾸준히 자신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매체를 만들고 독립출판 지원을 받아 기존에 연재한 에세이와 웹툰을 엮어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공연 관련 매체가 지속적으로 운영될 만한 자본을 갖는 일은 실로 어렵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책을 팔긴 어렵고 웹진에 쓰는 글도 돈이 되지는 않는다. 처음 웹진이 등장했을 때 광고 수익을 올리거나 기사를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웹진이 등장한지 20년 만에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단한 수입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주머니는 (많이) 털지 않으면서 매체를 운영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지면을 유지하기 위해 이제 새로운 고민과 시도가 필요하다. 다양한 (잠재적) 독자가 있는 만큼 다양한 글쓰기 방식이 실험되어야 하고 그걸 담아내는 매체의 형식도, 이를 출판하고 유통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월간 '여덟 갈피'가 흥미로운 것은 이런 대목에서다.
매체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연 관련 매체는 언제나 필요하다. 이 간극을 어떻게든 메워보려는 것, 그것이 이 시대에 공연 관련 매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마주한 숙명이다. 이런 난제 해결에 동참하게 된 월간 '여덟 갈피'를 환영한다.
[사진출처: <여덟 갈피> 인스타그램]

태그 공연을 말하는 또 다른 방식, 여덟 갈피,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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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김태희

한국연극사를 공부하고 있고 연극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shykth@hanmail.net 

제168호   2019-09-2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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