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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호흡하는 유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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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Theatre이라는 시공간을 떠올렸을 때, 많이들 떠올리게 되는 감각 중 하나가 바로 ‘생생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자로 이루어진 텍스트 공간과 달리 구체적인 몸과 생김새를 가진 인물들이 직접 사건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극장의 그것은 상대적으로 ‘살아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편, 똑같이 인물들과 그 행위들로 구현된 서사이지만, 스크린이라는 막을 기점으로 분리된 시공간 ‘속’에서 장면들이 펼쳐지는 영상매체와 비교하였을 때, 극장의 객석과 무대라는 두 시공간은 상대적으로 연속적이며 맞붙어있는 것 또한 맞는 것 같다.

따라서인지 극장, 공연, 연극이라는 매체와 장르에는 줄곧 ‘직접 살아있는’, ‘눈앞에 현전(現前)하는’ 또는 ‘매개 없이 현존(現存)하는’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고는 하며, 극장을 찾는 관객들도, 또 극장공간을 재료로 삼는 창작자들도 이와 같은 감각을 찾고 또 서로 소통하여 만나고자 하는 듯 보인다. 다만 생각할수록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직접, 살아, 매개 없이, 현존하기에, 따라서 현전하는 것. 과연 무엇일까? 오늘날의 매체환경 가운데 어쩐지 유독 유토피아처럼 수식되기도 하는 이 현존하고 현전하는 연극성이란, 대관절 어떤 관계 맺기이고 소통인 것일까?
소극장혜화당, 조명기기 점검
거대한 질문은 잠시 미뤄두고, 극장이라는 형식 내지는 공간으로부터의 접근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오늘의 지면을 빌려 소개할 Witheatre(With와 Theatre의 합성어로 이하 Withe(withe : ‘실가지를 묶다’는 의미)로 표기)는 2018년 4월, 임성빈 조명·기술 감독을 계기로 결성되어 전문 관리자가 없는 소극장들을 대상으로 점검 및 유지보수 기술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모임이다. 안창용(Professional Advisor), 임성빈(Technical Director), 이재만(Lighting Supervisor), 윤경민(Sound Manager), 강우빈(Lighting Manager), 무려 10년에서 28년에 이르는 공연예술계 활동경력을 지닌 다섯 전문가가 운동모임의 구성원이며, 기술 나눔으로 표현되는 정기점검 및 보수와 더불어 극장 기자재 전반에 관한 문서 형태의 지침서, 즉 Technical Brief 작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비영리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개인의 시간 및 노동력과 더불어 기자재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비용에 이르기까지((본인들의 인건비를 제하더라도 한 극장 당 약 15만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체력과 사비를 지출해가며 가히 헌신적이랄 수 있는 이 기술 나눔 운동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임성빈 감독은 ‘세금’을 납부하는 마음이라고 답하였다. 본인을 포함하여 동료들의 일터이며, 많게는 100여 명의 관객들을 수용하는 (소)극장이란 공간은 화재와 더불어 각종 안전사고를 배태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을까 고민하다 극장 점검이라는 기술 나눔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그의 표현대로라면 멱살을 잡아끌었다지만, 실상 이 운동과 임성빈 감독의 문제의식에 동조하는 동료들이 흔쾌히 동참하며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소극장혜화당, 그리드 파이프 테이프 제거작업
케이블 정리를 위한 벨크로 테이프 기증부터 시작해 조명기기 낙하방지를 위한 (도구 없이 맨손으로는 조작이 불가능한)볼트와 너트 교체, 화재를 유발할 수 있는 전선 내피가 외부로 노출되지 않게끔 하는 터미널 부속 설치 등,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눈이 닿지 않는 곳곳을 분해하여 그 속의 소모품과 부자재들을 안전한 상태로 교체할 뿐만 아니라, 조명기기를 걸기 위한 그리드 파이프에 덕지덕지 붙은 테이프들을 헤라로 일일이 긁어 떼어내는 등, 극장을 작업하기에 안전하고 최적화된 상태로 만들기 위해 한 극장 당 삼일을 꼬박 소요하여 작업한다고 한다(만 삼일이 소요되는 일차점검 후 분기당 한 번씩, 총 세 번의 정기점검을 추가로 진행하기에, 일 년으로 셈하면 한 극장 당 최소 6일이 소요된다. 현재 총 여덟 극장(약 48일)을 점검 중이라고 한다). 부디 식사라도 제공하게 해달라는 극장 측의 요구에 못 이겨 이제 식사 정도는 제공받는 중이지만, 이러한 비용적인 면과 무관하게 다만 단 한 가지 약속만 지켜줄 것을 극장 측에 요구한다고 한다. 이는 바로 무대와 객석, 조정실과 분장실, 또 화장실 공간 등의 청소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며, 세심히 극장을 돌보는 이 약속이 지켜질 경우 구두로 재계약을 진행하여 1년의 무상점검 및 유지보수를 연장하게 되는 식이다.
  • 점검 전 디머(Dimmer)회로
  • 점검 후 디머(Dimmer)회로
회로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붓으로 먼지를 털어낸 후 공중에서 먼지를 흡입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이는 극장 측에서 보다 애정을 갖고 공간을 살피는 차원의 관리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하에 자리하고 있는 소극장의 특성상 다분히 물리적이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발걸음을 따라 지속적으로 지하로 유입되는 먼지는 아쉽게도 다시 발걸음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가지는 않기에,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공간과 기자재 틈새 곳곳에 쌓이기만 하며, 심할 경우 몇 센티미터씩 먼지 층을 이루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는 물론 호흡기에도 심히 좋지 않은 것이지만, 이와 더불어 조명 케이블이나 커넥터 내의 전선 연결이 부실하게 이루어져 전압 증폭으로 스파크 현상이 발생할 경우, 바로 불꽃이 튀어 옮겨 붙을 수 있는 불쏘시개로 작용한다고 한다. 안전문제가 언급된 김에 관련 내용을 덧붙여보자면, 그리드에 조명기기를 고정하는 과정에서 볼트와 너트를 제대로 조이지 않을 경우, 최악의 경우 음향 스피커에서 발생하는 주파수와 조명기기의 전압 주파수가 어우러져 일정 시간동안 공명(共鳴) 및 공진(共振)하다가, 그 진동에 못 이겨 조명기기 추락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을 정도로 극장이란 공간은 많은 위험을 배태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 점검 전 상태의 조명기기 커넥터 내부
    - 전선 내피가 모두 노출되어 있음
  • 점검 후 상태의 조명기기 커넥터 내부
    - 터미널 작업 후 내피가 복구됨
먼지부터 주파수 진동에 이르기까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하지만 지극히도 물리적인 것들이 촘촘하게 엮어 하나의 시공간으로 나타나는 극장과 연극이라는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인터뷰 과정이었다. 임성빈 감독은 이 시공간을 호흡하는 유기체이자 생명체, 더 나아가 신생아로 비유하곤 하였다. 사물과 사람, 빛 그리고 소리 등이 함께 어우러져 나타나는 이야기이자 움직임인 연극, 또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완결된 결과물인 동시에 또 한편 관객들과 더불어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기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듯 경이롭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극장에서 발생하고는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곧 ‘살아있는’이라는 형용사에 생각이 닿는다. 어떤 대상의 ‘살아있음’을 당연한 전제로 여겨버리고 그 살아있음 내지는 생생함만을 착취해내려는 작업방식을 이어온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포와 혈관부터 시작해 다양한 기관과 뼈, 또 살 등으로 이루어진 생명체는 언제나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이며 환경과 더불어서만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일 테다. 어떤 부분이나 환경이 어긋날 경우,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그 생명은 허무하리만치 꺼져버리고 돌이킬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현존과 현전이라는 그 살아있음을 착취하기보다는 ‘살아있게 만드는’이라는 수식어로 방향성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수천 년 전, 지양해야 할 극작 방식으로 Deus-Ex-Machina, 즉 기계장치의 신을 언급하였을 정도로 실상 연극은, 그 태동기부터 기계장치와 매개체들의 조합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이야기가 호흡할 수 있도록, 또 더불어 호흡할 수 있도록 ‘살아있는’ 연극이 아니라 ‘살아있게 만드는’ 연극의 시공간과 환경을 만드는 고민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생태계로서의 연극과 그 환경이라는 화두로의 전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Witheatre SNS페이지 https://www.facebook.com/witheatre.korea/
[사진제공 : Witheatre]

태그 송이원, 소극장, 호흡하는 유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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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원

송이원 연출가
‘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
eewons@gmail.com
제175호   2020-01-23   덧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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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옥
시공간의 현전,사유와 정서가 현존하는 마주섬의 공간.연극보기를 나는 즐깁니다.지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수행되는군요!

2020-01-26댓글쓰기 댓글삭제

관객
현존이나 현전은 잘 모르겠고요ㅠ 극장들을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 마음과 실천이 존경스럽고 감동적이네요.

2020-01-29댓글쓰기 댓글삭제

이리오
감사하네요. 후원하고 싶습니다.

2020-01-31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