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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야만의 대립, 그리고 인간의 폭력성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극단 하땅세 <파리대왕>

최윤우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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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익숙하고, 영화로 본 것도 같고, 책도 읽은 것 같은 그런 작품이 있다. 흔히 ‘고전’이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예컨대,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봤고, 그의 대표작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실제로 『햄릿』을 읽어본 적이 없는 경우처럼 말이다. 여기 그런 작품이 또 하나있다. 윌리엄 골딩의『파리대왕』이다. 오페라였든가? 뮤지컬로 봤었나? 영화가 있었지! 하며, 아는 거야 하고 넘어갔을 지도 모르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가장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에게 내재된 악의 본성을 폭로한 이 작품.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책이라면, 무인도에 떨어진 소년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탐해보자. 책은 책끼리 대화한다는 말처럼, 이번 무대가 또 다른 연극무대를 찾게 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 파리대왕

    핵전쟁에 위협을 느낀 영국은 소년들을 비행기에 태워 안전한 장소로 옮기려고 한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 비행기는 추락하고 무인도에 표류한 어린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 구심점 없이 흩어져 있던 아이들은 랠프의 소라나팔 소리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선거를 통해 랠프를 대장으로 선출한다. 랠프는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소라를 가진 자만이 발언할 수 있다는 규칙을 정한다. 이어 오두막을 짓고 구조봉화를 올리고, 대소변 구역을 지정하는 등 문명인으로서 따라야 할 규칙을 정한다. 대장자리를 빼앗기고 불만에 차 있던 잭은 사냥팀을 조직하고 사사건건 랠프와 대립한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선출한 랠프의 지시를 따르던 소년들도 잭이 사냥해온 멧돼지 고기에 맛이 들려 점점 잭의 편으로 흡수된다. 그 과정에서 랠프의 편이었던 피기, 사이먼 등이 죽임을 당하게 되고, 랠프 역시 잭의 무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문명세계의 사회관습은 붕괴되고, 인간 본성에 잠재한 권력욕과 야만성이 드러나면서 섬은 지옥으로 변한다. 문명의 옷을 버리고 야만의 상태로 돌아간 소년들은 ‘추장’으로 군림하는 잭의 명령에 따라 랠프를 추격한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랠프 앞에 영국 순항함이 도착하고, 소년들은 구조 받는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은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 문명과 야만의 대립, 인간의 폭력성을 깊이 있게 다뤘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핵전쟁의 엄청난 파괴력을 경험했던 인류가 평화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당시, 어린 소년들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 인간 본연의 폭력성과 야만성에 대한 직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준 문제작이었다.
파리대왕
  • 이 작품을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상징을 찾아가는 데 있다. <파리대왕>은 다양한 상징으로 이야기의 주제를 확장시킨다. 즉, 누구나 평등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민주적인 제도적 장치, 또는 권위를 상징하는 ‘소라’, 불을 피우게 하는 ‘안경’은 문명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극대화된 상징이다. 또한 사냥을 하기 위해 얼굴에 하는 ‘위장’(가면)은 원초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익명성의 장치로서 기능한다. 이 작품은 다양한 상징과 비유를 통해 인간의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폭력적 야만성에 쫓기다 또 다른 폭력의 상징인 영국 군대의 순항함에 구조되었다는 이야기의 맺음 역시 쉽게 잊히지 않는 것처럼.

    연극 <파리대왕>은 이러한 원작이 지닌 묵직한 질감을 풀어내 지금 우리 시대에서 반복되는 삶의 모습을 목도하게 한다. 수 십 년 전에 사라진 현상이 아닌, 우리 세계에서 이유 없이 일어나는 살인과 살육의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어떤 것이 이성적이고 비이성적인가를 가늠할 수 없는 시대, 연극은 현상에 대한 단순한 고발이 아닌, 인간의 내적 심리를 흥미롭고 재밌게 파고들고 있다.

    사진제공 [극단 하땅세]

  • 파리대왕
  • 일시 : 3월15일(금) ∼ 3월31일(토)
    평일 8시 / 토 4시, 7시 / 일 4시 (월 쉼)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원작 : 윌리엄 골딩
    번안 : 윤조병
    연출 : 윤시중
    출연 : 권제인, 임세운, 이길준, 최병준, 임세환, 문숙경,
    염용균, 유성주, 조정훈, 채충명, 이수현, 민주홍, 김윤미
    문의 : 02-6406-8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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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파리대왕, 극단 하땅세, 윌리엄 골딩, 윤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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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19호   2013-03-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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