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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는 없지만 존재가 있다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Creative VaQi <서울연습-모델, 하우스>

최윤우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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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 전이다. ‘광화문 괴물녀’라는 단어가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건(?)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정체에 대해 궁금해 했고,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어디 무슨 남,녀’라는 이야기가 마녀사냥처럼 확산되었다. 광화문 한복판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옮겨지며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추측을 쏟아내다, 결국 그것이 공연의 퍼포먼스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수그러들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에 직면하게 된 공연 팀에서 ‘홍보를 위한 의도된 퍼포먼스가 아니었다’는 어색한 해명을 하기에 이르렀던 작품은 바로 크리에이티브 바키(Creative VaQi)의 <도시이동연구 혹은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였다. “흉측한 형상의 출연으로 잘 짜인여진 공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던 이경성 연출의 질문이 ‘괴물’이라는 수식어로 사라져버렸다고 아쉬워했지만 지금 여기 다시 <서울연습-모델, 하우스>에서 이야기는 더 구체적으로 확장돼 있다.

  • <서울연습–모델, 하우스>는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된 이경성 연출의 신작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공간’에 대한 개념을 다양한 방식과 관점으로 풀어냈던 전작들처럼, 이번 작품 역시 도시의 이미지와 그 속에서 관계하고 있는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중첩되어 있다. 텍스트 없이 출발하는 그의 작품 만들기는 이번에도 계속된다. 때로 그것은 낯설고 어색하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텍스트를 활용하는 것은 조금 더 나중에 하고 싶다는 예술가로서의 고집 역시 수긍할만하다.

    참고할만한 텍스트가 없으니, 연습을 진행하는 연출과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잠깐이라도 그 흐름을 놓치면 어디서, 어떤 것을 말해야 할지 막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산아트센터 지하 연습실, 그렇게 스스로 긴장했던 연습이 끝났다. 아, 뭐라고 해야 하나. 서사는 없는데,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들의 존재감이 밀려온다. 그것은 조용하지만 강력하다. 도발적 실험이나, 스펙터클한 장면이 보이지 않는 덤덤한 이야기와 행위들이, 내 삶의 현재로 관계하기 시작하는 순간, 연극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넘어서 있었다.

    서울연습 - 모델. 하우스
서울연습 - 모델. 하우스
  • 인물의 구성부터 작품이 시작 된다

    케빈 베이컨의 여섯 단계 게임이 있다. 여섯 사람만 거치면 모두 아는 사람이 된다는 재밌는 가설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관계, 사람과 사람의 섞임은 쉽게 구분 지을 수 있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는 말과 같다. 즉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섯 사람만 거치면 아는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을 만큼 세상은 아주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연습-모델, 하우스>의 등장인물은 6명이다. 그리고 이 숫자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도시, 그리고 그 도시 속에 살아가고 있는 각각의 세계, 그 각각의 세계가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텍스트가 없는 연극의 출발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인물들은 각자의 세계를 창조해간다. 도시, 서울, 각자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여기 삶의 공간에서 관계를 만들어간다. 그 속에 연극이 말하고 싶은 질문이 숨어있다. 우리에게 도시란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가, 그 속에서 관계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하는.

    서울연습 - 모델. 하우스

    개별적 존재들이 지닌 각각의 소우주가 만난다

    여섯 명의 인물이 일종의 미션을 수행한다. 그들은 자기 생각 말하기 연습, 간식 맛있게 먹기, 몸으로 표현하기 등을 통해 자신만의 현실, 공간을 구축해나간다. 여섯 인물들은 그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저항하지만 쳇바퀴 돌듯 다시 그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미션 수행이 진행되면서 무대 위에는 여러 흔적들이 덧대어지고 무늬가 생성되지만 같은 장소에 놓여 있는 이들의 공간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점점 더 벌거숭이가 되어간다. 장면이 만들어질 때마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는 영상이 흘러간다. 마지막 5분. 프로젝트 위에는 5분 동안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보이고, 그 어떤 순간보다 길게 느껴지는 그 시간동안 배우들은 침묵하고 멈춰있다. 여섯 명의 배우들이 현재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감각하고 인식하는 풍경들을 재료로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각자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연극 <서울연습-모델, 하우스>는 오늘 여기 도시라는 이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 안에서 ‘나’라는 개인은 누구이고, 어디에 정주할 수 있는가를 되묻다.

    서울연습 - 모델. 하우스

    가능성에 대한 탐구는 또 하나의 화두다

    스포일러를 염려하는 연출가의 바람을 무시할 수 없어 구체적인 장면들을 서술하지 않았지만, 작품은 희곡을 근간으로 재현되는 무대와는 차별화된 형식으로 진행된다. 객석과 무대는 구조적인 경계가 있지만 막힘이 없다. 일루전illusion 의 공간인 무대와 현실 공간인 객석의 관계는 무너지고, 무대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공간이 되어 바로 지금 우리의 삶, 현재를 마주하게 한다. 즉흥이랄 수는 없지만, 자유로운 변주가 가능한 무대는 이내 시공간을 초월하며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간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내가 속해 있는 공간이 어디인지를, 그리고 그 공간이 다른 이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들여다보게 한다. 연극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예술가들의 관점과 해석에 따라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이를 표현하는 형식도 달라진다. 미시적 거리가 필요한 작품이 있고, 때로 거시적 관점으로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이경성 연출의 작품 만들기는 그러한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구다. 연극의 작업방식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이 작품의 기저에 침잠되어 있는 또 다른 화두다. 극장 공간과 텍스트 위주의 연극을 넘어 삶 속 공간에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온 이경성 연출의 신작 <서울연습-모델, 하우스>가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다.
  • 서울연습 - 모델. 하우스
  • 일시 : 4월 23일∼5월 18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 3시, 월쉼
    (※4월27일 3시, 7시 30분)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작, 구성, 연출 : 이경성
    작, 출연 : 오대석, 오의택, 나경민, 장수진, 성수연, 김승록
    문의 : 02)708-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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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이경성, 서울연습-모델, 하우스, 크리에이티브 바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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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22호   2013-04-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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