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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_연극평론가
독특한 캐릭터 구축이 불필요하고, 스펙터클한 사건이 없어도 된다. 특별한 형식적 변화나 과도한 장치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뭘 하지 않아도 되는 연극이 있다. 연극 <배웅>이 그렇다. 제목만으로도 오랜 지인을 만난 것처럼 기분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이 작품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74세의 두 노인이 만남과 우정, 이별의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관계맺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연극 <배웅>은 캐릭터나 사건이 작품의 주요 요소가 아니다. 이 작품의 재미와 감동은 한 마디 한 마디 건네는 봉팔과 순철의 대화, 그들이 보여주는 묵직한 농담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들여다보는 데 있다. 딸과 순철, 아들과 팔봉의 대화에서 엿보게 되는 우리 사회의 해체된 가정의 모습과 두 노인의 시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은 물론, 혼자 밥 먹는 것이 가장 싫다고 떼를 쓰며 이제 우리 친구가 된 거냐고 묻는, 순철의 이야기 등 연극은 보는 내내 눈과 귀를 집중시키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바로 내 옆에서 언제라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두 노인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삶 속에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가를 역설하고 있는 작품이다.
연극 <배웅>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작품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정서다. 연극은 특별할 것 없는 한 병실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과 갈 곳 없는 한 노인의 만남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그리고 있다. 자극적인 소재나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펼쳐내는 이야기가 콕콕 짚어내는 것은 우리 가슴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다. 연극은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가깝게는 가족부터, 사회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살고 있는지, 무의미한 행위 속에서 조금 더 깊어질 수 있는 관계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으로써 내 주변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두 노인의 특별한 관계 맺기 극단 실험극장 <배웅>
근데 넌 왜 코끼리가 됐니? 극단 청우 <그게 아닌데>
극단 실험극장, 배웅, 오영수, 민복기, 이영석
월간 <한국연극>, 웹진 <연극in> 편집장을 역임했다. 연극평론가 및 새움 예술정책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소극장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예술정책 및 제도, 특히 예술 현장에 적합한 지원정책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