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침묵된 역사, 말이 기억을 현존하게 한다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극단 코끼리만보 <말들의 무덤>

최윤우_연극평론가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극단 코끼리만보의 신작 <말들의 무덤>은 한국전쟁 중에 일어난 양민학살을 목격한 증언자들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그동안 침묵되었던 비극적인 역사를 연극적으로 복원한 작품이다. 연극의 기본적인 서사구조를 따르는 드라마 대신 연극적 상상력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묻혀진 ‘말’들을 중심으로 무대에 옮긴 이 작품은 무명으로 사라진 영혼들에 대한 제의식과도 같은 작품이다.

  • 2009년 <작은 연못>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1950년 7월, 노근리의 철교 밑 터널(속칭 쌍굴 다리) 속으로 피신한 마을 주민 수백 명이 미군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무참히 살해된 ‘노근리 사건’을 조명, 한국전쟁 중 자행된 양민학살의 비극적 역사를 다룬 최초의 영화였다. 노근리 사건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1999년 AP통신 기자들의 ‘노근리 사건’ 특종보도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듬해 퓰리처상 탐사보도부문을 수상했던 보도기자 중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수상소감을 밝혔다. “노근리 사건처럼 세상에는 의외로 언론이 직접 나서서 취재해 그들의 하고 싶은 말을 전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말을 전달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억울하고 답답해도 정작 자신의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고, 왜곡과 외면 속에 말을 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래서 할 말을 잃어버린 탓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근리 학살사건’ 외에도 한국전쟁 중 백만 명 이상이 학살당했다고 추정되는 양민학살 사건은 전국 모든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한국사의 뼈아픈 진실이다. 이제야 서서히 그 진실이 드러나고 있고, 말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눈앞에서 가려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다. 대화를 한다는 건 서로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존중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연극 <말들의 무덤>은 지난 역사와 그 역사 속에 실존했던 사람들과의 대화를 위한 하나의 제의와 같다. 이유도 모른 채 사라져간 사람들, 그렇게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꾸며지지 않은 생생함으로 무대 위에서 기록되고 재현된다. 잊지 말아야할 역사, 아니 잊을 수 없는 역사 속에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 <말들의 무덤>에 현존한다.

    잊힌 역사와 존재에 대한 이야기

    <말들의 무덤>은 한국전쟁 양민학살 목격 녹취록을 13명의 배우들이 재현하는 구성으로 진행된다. 21세기 현재, 배우인 ‘내’가, 20세기에 일어났던 한국전쟁 중 사라져간 ‘영혼’들의 빈 몸을 바라보며 무덤 속에 유폐된 그, 그녀들을 ‘말’로 기억하고 복원하는 것이다. 진실화해조사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는 인터뷰 자료와 녹취록을 재구성해 무대에서 배우가 재현하는 이 작품은 죽어간 사람들을 우리들의 기억으로 돌아오게 하고, 죽어간 사람들의 몸을 호명하는 제의로 마무리된다.



    연극은 민간인 학살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전개보다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사라져간 사람’과 ‘사라짐을 목격한 사람’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전쟁 중 일어난 양민학살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며 소리 없이 사라진 존재와 끔찍한 죽음의 기억을 목격한 채 살아간 사람들의 ‘말’과 ‘기억’을 현재 시간으로 복원하고 있는 <말들의 무덤>은 전쟁의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불어 닥친 근대화의 바람에 묻히고 잊힌 실존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연극은 사라진 육체와 함께 억압되었던 침묵을 다시 깨어나게 하여 20세기 낯선 과거의 기억을 21세기 낯선 현재의 사람들과 만나게 한다. 사라짐을 거부하는 영혼들의 ‘말’(words)들이 무대 위에 다시 섰을 때, 그 ‘말’들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증언들로 살아 움직이는 ‘말’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투영되어 인간 존재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연극 <말들의 무덤>은 2010년부터 준비된 호흡이 긴 작품이다. 김동현 연출과 배우들은 지워질 수 없는 비극적 역사의 한 단면을 재구성하기 위해 녹취록을 작품의 근간으로 가져왔고, 끔직한 사건을 겪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연극 만들기가 감정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객관적 사실을 입증할 사진, 영상 기록물을 찾아 연구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후 2011년 2월 <21세기 여인>이란 제목으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워크숍 공연을 가졌고, '말'로만 남은 흔적을 살아 움직이는 배우들의 몸을 통해 이미지화시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  
  • [사진제공 : 극단 코끼리만보]
  • 일시 : 9월6일(금)~9월15일(일)
    평일 8시 / 토,일 4시 / 쉬는 날 없음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구성, 연출 : 김동현
    출연 : 이영주, 백익남, 강명주, 오대석, 우미화, 이은정, 김태근,
    윤현길, 권민영, 이지현, 전박찬, 이강욱, 임호영
    문의 : 02-889-3561, 3562

 
[최윤우의 연극미리보기] 함께 나온 기사 보기

수치와 질투, 그것을 인식하는 타자의 시선

남산예술센터 & 상상만발극장
<천 개의 눈>

침묵된 역사, 말이 기억을 현존하게 한다

극단 코끼리만보
<말들의 무덤>

태그 말들의 무덤, 침묵된 역사, 코끼리만보, 김동현

목록보기

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31호   2013-09-05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