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극단 그린피그 <공포>

최윤우_연극평론가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삶이 무의미해지는 듯한 ‘순간’이 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하는 지, 삶의 의지를 상실한 채 ‘단지’ 살아가기만 하는 그런 시간이 있다. 그것은 패배주의도 아니고, 예측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불안함도 아닌 진부한 일상에 대한 무기력함이다. 그러한 주기가 반복되면 될수록 삶은 핍진해지고 피폐해진다. 죽음을 담보로 한 극단적인 체험이 필요할 만큼, 그렇게 ‘살아있음’을 다른 행위를 통해 느껴야 할 만큼, 개개인의 일상에 팽배해져 있는 무기력함은 어쩌면 그 어떤 존재보다 더 큰 삶의 공포로 되돌아오는 지도 모른다. 연극 <공포>는 무관심하고 건조한 삶, 예측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러한 삶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그린다. 유령이나 저승, 죽음보다 더 무서운. 어떤 것도 변하지 않고,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아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이 가장 무섭다는 안톤 체홉의 자기고백적 이야기는 낭만적인 삶의 모습보다 더 혹독하게 냉혹한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


연극 공포

연극 <공포>는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홉이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돌아와 발표한 동명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마치 “체홉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는 연출가 박상현은 소설 속 화자인 ‘나’를 ‘안톤 체홉’으로 설정, 그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속성과 공포의 근원,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연극 공포


정확히 무엇이 무서운가?

체홉은 사할린 여행에서 돌아와 자신의 친구인 실린의 집을 방문한다. 실린은 페테르부르크에서 관료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도시를 떠나 아내와 함께 시골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아내 마리는 배우생활을 했으며, 결혼 전부터 체홉과 알고 지내던 관계이다. 마리는 체홉의 방문에 기쁨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을 내비친다. 그날 밤, 실린과 체홉은 마리에게 피아노 연주를 부탁한다. 마리는 남편이 원하는 곡과 정반대의 곡을 연주하다가 끝을 내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모든 상황이 불편한 체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실린은 인생의 불가해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자신을 경멸하고 있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겠냐고 묻는 실린. 마리에게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던 체홉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마리는 지난 날 페테르부르크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체홉에게 사할린 섬으로 여행을 떠났던 이유를 묻지만 역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어느 날, 실린이 없는 저택에서 마리와 사랑을 나누게 된 체홉은 갑자기 들어온 실린에게 현장을 들킨다. 실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고,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실린의 이해할 수 없었던 공포가 체홉에게 옮겨온다. 얼마 후 실린과 마리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연극은 체홉이 사할린 여행에서 돌아온 후 친구의 집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실린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삶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실린을 이해할 수 없는 체홉은 ‘정확히 무엇이 무서운가’를 반문하지만, 얼마 후 실린이 가진 이해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연극 <공포>는 이들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삶과 행동의 문제를 꼬집는다. 극적인 결말이 기대되지만 절정에 이르지도 않고 이유 없는 긴장의 해소로 끝나버리는 안톤 체홉의 ‘제로엔딩zero ending’ 기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연출가 박상현


본질에 대한 탐구를 위한 시험의 과정

1892년 발표된 『공포』는 1890년 체홉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 모든 활동을 접어둔 채 사할린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이후 집필한 작품이다. 결핵에 걸린 병든 몸으로 러시아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마차와 배를 이용해 사할린 섬으로 들어가는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창작방법론의 위기와 갈등을 타개하기 위한 체홉의 고육책이었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이 여행 이후 그의 작품들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서 사회적인 문제나 실존적인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할린에서 돌아온 화자(체홉)를 체홉의 이야기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연극 <공포> 속 등장인물들은 삶이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두렵고 진부하다고 느낀다. 그들은 과거의 행동 때문에 현재에 고통 받고 있지만, 고통의 원인이 되었던 과거의 행동에 취해 있다. 이 삶을 끝내는 방법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삶, 그 두렵고 공포스러운 삶을 살아나가는 인간의 본질과 속성이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다. 연극은 그러한 ‘시험’의 과정을 작품의 키워드로 묶었다. 인간의 삶의 문제들이 새로운 ‘시험의 순간’을 거쳐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연극 <공포> 속 이해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다.

 
  • 연극 공포
  • 일시 : 12월 13일(금)∼12월22일(일)
    평일 8시/ 토 2시, 6시/일 2시/ (휴일 없음)
    장소 :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
    작 : 고재귀 연출 : 박상현
    출연 : 김태근, 이동영, 김수안, 신덕호, 신재환, 정은경
    이필주, 박하늘
    문의 : 02-922-0826



[최윤우의 연극미리보기] 함께 나온 기사 보기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극단 그린피그
<공포>

전통의 가치와 동시대의 해학

극단 미추&극단 백수광부
<돌아온 박첨지>

태그 극단 그린피그, 공포, 박상현

목록보기

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37호   2013-12-05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