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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리보기] 극단 프랑코포니 <무대게임>

김슬기_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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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식당에 갔다가 목격한 일이다. 옆 테이블에 중년 남성 둘이 앉아 있었는데, 주문한 음식은 이미 차려져 있었고, 조금 더 연배가 있는 쪽은 껄껄거리며 통화에 몰두해 있었다. 맞은편의 중년 남성은 불기 시작한 라면을 뒤적거리며 하릴없이 그의 통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우리 테이블에 음식이 나오고 그걸 절반쯤 먹어치울 때까지 통화는 계속되었고, 저 가련한 중년 남성은 그렇다고 이제 와서 라면을 먹기 시작할 수도 없을 터였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일행들의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통화를 마친 그가 라면 그릇에 젓가락을 꽂으며 말했다. “아,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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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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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의 한 연출가는 누군가가 나의 행동을 보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연극이 된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내내 자신만의 연기를 수행 중이거나, 다른 이들의 연기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 된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라거나 삶은 각본 없는 드라마와도 같다는 식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미처 자각하지도 못한 사이 모두를 배우로 만들어버리는 ‘지켜보는 눈’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거다. 그 눈은 나의 존재감을 확인시킨다. 때문에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지켜보는 누군가의 눈을 깨닫는 순간, 기꺼이 그 시선을 즐기고 그것이 좀 더 오래 나에게 머무르도록 의도적으로 상황을 지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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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요한 것은 이렇듯 불필요한 연기를 이끌어내는 추동력이 나의 내면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는 사실. 타당한 동기가 없는 연기는 곧 나아갈 방향을 잃고 겸연쩍은 국면 전환으로 뒷걸음질 치기 마련이다. 호탕하게 웃어 젖히던 중년의 남성이 불어터진 라면을, 역시나 호탕하게! 먹기로 작정한 것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 지켜보는 눈은 우리의 자존감을 한껏 고양시키다가도, 금세 바닥을 치게 만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나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누군가의 눈! 결국 그 눈 때문에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소소한 희극과 비극들로 채워진다.
  • 공연창작집단 뛰다 <맨발땅 이야기>



  • 게임의 판돈

    연극 <무대게임>의 배경은, 여성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게르투르드가 자신의 1인극에 오랜 동료 여배우 오르탕스를 캐스팅해 첫 연습을 시작하는 무대다. 두 사람은 물론 직업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세계에 거주하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도 삶을 영위하는 방식도 너무나 판이해 대화는 도무지 접점을 찾을 수가 없다. 때문에 이 둘의 만남 자체만으로 이미 연극은 충분한 재미를 확보한다. 당연하게도, 연극은 관객의 기대를 배반해야 하므로(!)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이들이 만들 1인극은 대사 한 줄조차 밝혀지지 않으며, 소위 말하는 연극판을 둘러싼 온갖 인물 군상들의 곤조와 허위의식만이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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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데,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벗어난 또 하나의 존재가 연극에 틈입한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틈입하는 것은 아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어딘가에 있다. 그런데 드러나지는 않는다. (공연 중 실제로는 조명을 컨트롤할 수 있는 오퍼레이터 석에 앉아 있을 테지만) 극 중 게르투르드와 오르탕스는 바티스트라 불리는 스태프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거나 자기 의견에 대한 동의를 구한다. 물론 연극의 설정상 이 대사는 상대에게 들리지 않는 것으로 약속된 기호다. 작가는, 방백으로 처리해도 될 만한 대사들을 굳이!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대화로 설정했다. 이로써, 실제로는 말 한마디조차 거들지 않지만 바티스트의 지켜보는 눈은 두 사람의 대화에 예상치 못한 역동성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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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듯 연극에서는 비-존재로서의 존재인 바티스트의 반응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게르투르드와 오르탕스는 모두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는 우스운 꼴로 형상화된다. 황당한 것은 이들이 이 의사(擬似) 대화를 통해 연신 헛발질을 해대며 너무 자주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 결과적으로 무대 위엔 자기기만과 허황된 욕망, 나르시시즘, 과대 포장된 자의식 등이 넘쳐나면서 두 인물의 실상이 까발려진다. 서로를 꽤나 필요로 했던 두 사람의 게임은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상대를 깎아내려 득점을 하고 승부를 가릴 수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한갓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게임의 판돈으로 자존감을 걸어 버렸고, 결국 연극은 이들이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해버리면 끝이 난다. 심지어, 이들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어느 순간 이미 그들을 지켜보던 시선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 극단 민들레 <꽃할머니>, 청소년전문극단 진동 <18청춘잔혹사>

    물론 대개 일상에서 막을 여닫는 작은 연극들은 이렇게 극단적인 나락으로 우리를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 시선에 허세도 좀 부리고 자기 최면에도 빠지고, 때론 오버액션도 해주고, 의식적으로 가오도 잡아줘야 삶에 좀 탄성이 붙는다고 할까. 지켜보는 눈을 적당히 의식해주는 센스는 경직된 세계에 웃음을 불어넣는다. 그는 내가 그의 눈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 역시 그가, 내가 그의 눈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지켜보는 눈은 즐거움을 향유한다면,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연극은 아직은 괜찮다. 그러니 그 눈, 내게서 떼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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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아시테지겨울축제 포스터
  • 일시 : 3월11일(화)∼3월30일(일)
    평일 8시 / 토 3시 7시 / 일 3시 / 월쉼
    장소 : 게릴라극장
    작 : 빅토르 아임(Victor Haim)
    연출 : 까띠 라뺑(Cathy Rapin)
    출연 : 김시영, 임선희
    문의 : 02-743-6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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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프랑코포니, 무대게임, 까띠 라뺑, 게릴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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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39호   2014-03-0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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