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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극단 풍경 〈LOVE & MONEY〉

김슬기_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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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원은 없다

    돈은 참으로 위대하다. 그 무엇과 나란히 붙여놔도 속물의 냄새를 풍긴다.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행복, 명예 등등 온갖 숭고한 가치들이 돈과 엮이면 한순간에 수식(數式)으로 전락한다. 기실 돈 자체가 속물적이라고 할 순 없다. 그저 선택을 강요받아야 하는 상황이 나를 계산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 같아 불쾌하다. 취향이나 기호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는 걸 왜 골라잡아야 하는지, 삶은 왜 계속 이렇게 거친 옵션들을 던져주는지, 이 고통스러운 선택 앞에 누굴 원망해야 하는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결과는 불행할 것이다. 저주를 퍼붓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뺄셈을 해야 할 차례다. 무엇을 가질지 계산하는 게 아니라, 버릴 것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선택의 고민이 상쇄되진 않겠지만 더하기가 차악의 선택과 결과를 무한 반복해야 하는 과정이라면, 빼기는 제로가 되면 끝이 난다.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파국이 분명한 불행을 택할 것인지, 영원히 지속될 비극을 택할 것인지. 여기서 한 가지 주의사항. 돈을 택하던 택하지 않던, 당신은 결국 돈 때문에 눈물 흘릴 것이다. 당신이 돈과 다른 가치를 나란히 두었던 바로 그 순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바로 그 울음을 울게 될 것이다.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당신의 바닥은 어디?

    ‘사랑과 돈’. 이 통속적인 제목의 드라마는 너무 세다. 이렇게까지 바닥을 보여줘야 하나 싶을 만큼 이야기의 힘이 강렬하다. 부부는 사랑했다. 그 사랑이 너무 아름다워서 결혼식 하객들은 자신들을 불청객처럼 느꼈다. 안타깝게도 여자는 쇼핑 중독이었고, 오래지 않아 부부는 큰 빚을 떠안게 되었다. 남자는 글을 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버렸다. 옛 애인을 찾아가 일자리를 구했고, 자존심을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치가 않았다. 이제 자신을 버려야 할 차례였다. 그에게는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견디기 힘든 결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여자를 버렸다.

    이제 그 많은 뺄셈의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다 버려도 결국 구하지 못할 것이라면, 애초에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 자체가 틀렸던 건 아닐까. 앞으로 되감기를 해본다. 덧셈으로 삶이 충만하던 때로 돌아가 본다. 아무것도 버릴 필요가 없던 그때, 부부의 불행은 여자의 쇼핑 중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쩌면 결핍된 것이 있었을 테고, 아마도 욕망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물건들을 사들이는 것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무언가. 남자는 자신을 내던져 빚을 대신 갚기 전에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희생을 무기 삼아 여자를 원망하고 있다. 그는 모른다. 사랑도 그러하지만 희생 또한 실체가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채울 수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연극은 뒤에서부터 앞으로 이야기를 되돌린다. 제로가 된 남자는 여자의 죽음을 복기한다. 만약 이 이야기가 두 사람의 사랑으로 시작하여 여자의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면, 이들의 불행은 한낱 평범한 가정비극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꾸로 흐르는 불행은 모든 국면의 인과관계와 연결고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곳엔 응당 그러해야만 했던 사건이란 아무것도 없다. 이야기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은 남자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순간들을 또렷하게 인식한다. 그는 매번 자신의 최선을 다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남자가 바닥을 드러내는 과정을 역추적하며 비극은 강도를 더해 가고, 그에 비례하여 사랑은 원래 자리를 되찾는다.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그 결과 연극은 로맨틱 신파이자 잔혹 호러로 시작하여 그 무엇도 아닌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순간, 여자는 말한다. 너무나 축복받은 기분이라, 미래가 기대된다고. 자신이 원하는 건 그게 전부라고. 이제 이야기를 다시 쓰는 것은 오로지 관객들의 몫이다. 도래하지 않은 비극에 좌절할 필요도 없고 거짓 희망에 기대를 걸어볼 이유도 없다. 시답잖은 심리 테스트는 집어치우고 자신의 의지대로 질문지를 다시 작성해야 한다. 사랑과 돈 중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질문이 틀렸잖아요!


  •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 일시 : 4월10일(목)∼4월20일(일) 평일 8시 / 토 3시 7시 / 일 3시
    장소 : 선돌극장
    작 : 데니스 켈리
    번역 : 성수정
    연출 : 박정희
    출연 : 김정호, 이서림, 박유밀, 전유경,
    김훈만, 최성민, 김예은, 안지윤
    문의 : 02-889-3561, 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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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LOVE & MONEY, 데니스켈리, 선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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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41호   2014-04-0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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