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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두산아트센터 <배수의 고도(背水の孤島)>

김슬기_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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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사회에 대한 우화 같은 실화

    <배수의 고도>는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같은 해 9월 일본에서 공연되었다. 1막은 지진이 일어났던 당일 도쿄에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그 여름 복구작업이 한창인 미야기 현의 한 마을을 다룬다. 방송국 보도부 소속의 코모토는 재난 상황을 은폐하려는 정부의 태도에 염증을 느끼고 다큐멘터리 연출을 위해 현장으로 나가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지진과 쓰나미로 모든 것을 잃고 헛간에서 살고 있는 타이요의 가족들과 자원봉사자, 지역 공무원, 파산한 사업가와 주변 이웃들은 갈등과 혼란 속에 살고 있다. 모두들 재앙을 이겨내고자 서로를 돕고 의지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치 기준이 무너진 혼돈 속에 서로의 입장은 첨예하게 부딪히고 불신의 골은 깊어만 간다.

    한편 2막은 그로부터 12년의 시간이 흐른 가까운 미래를 설정해 그때 그 인물들을 어느 경호회사에 모아 놓았다. 이야기를 모두 밝힐 수는 없지만, ‘경호회사’라는 것만으로 이들이 무언가에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어디까지나 허구일 뿐이지만, 이 허구는 모두 지금의 문제로부터 기인한다. 1막이 당시의 상황을 다큐적으로 드러낸다면, 2막에서는 이미 모두가 다큐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일본의 현실을 꼬집기라도 하듯 어딘가 SF적인 공기마저 흐른다. 그런데 이 공연이 올라가는 지금 이 시점, 바다 건너 일본의 재앙은 우리에게도 어쩐지 멀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세상이 작품을 더 절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우화 같은 실화일지도 모른다.

    불신시대, 확신하지 말라

    <배수의 고도> 연습실에서는 벌써 한 시간 반째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연습 중이다. 대본으로 치자면 전체 72페이지 중 불과 6페이지에 불과한 내용이다. 연극은 편집이 불가능한 예술인지라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특히 이렇듯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 연극, 그러면서도 갈등이 극에 달아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장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연출의 눈이 구석구석 바쁘게 돌아가고, 서로간의 거리, 방향, 동선에 따라 인물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조금 더 가까이, 거기선 주저앉아서, 살짝 어깨를 감싸고, 등을 보이며… 등등 대사 하나하나에 따른 동작들이 세밀하게 쪼개진다. 다음 행동에 개연성을 주기 위한 딱 맞는 타이밍을 계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br />

    이 연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우리 또한 삶에서 얼마나 많은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 불신 속에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 역시 몇 시간이 걸려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는 것처럼, 미처 인지하지도 못한 미세한 결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사실 차이를 좁히고 불신을 극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 미세한 결들을 알아차리는 것, 즉 차이를 인정하는 일이다.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결국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야 마는가. 그리고 비록 스스로가 옳은지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 경계를 넘나들며 숱한 차이들 속에 갈팡질팡 하는 인물은 또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br />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br />

    틈을 만드는 연극

    서로 간의 차이에 대한 얘기가 이 연극의 가장 최종 심급에서 작용하는 메시지라면, 다른 한편으로 <배수의 고도>는 일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작품인 만큼, 어쩔 수 없이 원자력 발전소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건드린다. 재앙과 그것에 대처하는 차원에서라면 우리 또한 이제는 결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피폭이나 원자력 그 자체는 현실적으로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재엽 연출은 공연이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이 거리감을 어떻게 조율할지 고민 중이다.

    아마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순간 그 답은 선명해질 것이다. 짐작컨대 대사 한 두 마디가 작품 전체의 방향을 좌우할 수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 눈에 띌 만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이 시대 연극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제 연극은 그저 극장 안에 갇힌 안온한 드라마로서 연명하지 않고, 관객들의 사유와 행동에,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현실에 낯선 틈을 만들고자 한다. 나는 과연 그 불편한 틈을 참아낼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2014 두산아트센터 인문극장의 근본적인 질문은 여기에 있다.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br />






  •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br />
  • 일시 : 6월10일 ~ 7월5일 평일 8시 / 토 3시 7시 /
    일 공휴일 3시 / 월 쉼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작 : 나카츠루 아키히토
    연출 : 김재엽
    출연 : 선종남, 하성광, 이윤재, 선명균, 김승언, 오대석, 이종무
    김소진, 이진희, 이정수, 김시유
    문의 : 02-708-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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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45호   2014-06-0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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