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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세계 속, 인식은 더욱 선명해진다
극단 두비춤, 극단 산수유 <청중>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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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지도 않아?


  • 부조리한 세계 속, 인식은 더욱 선명해진다

    "부조리한 세계가 더 뚜렷하다"

    앞서 공연된 <리빙>이 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직을 떠난 후 하벨의 소회를 담아낸 작품이라면, 이번에 소개될 <청중>은 하벨이 정치 초년생 시절 감옥 생활을 한 이후 양조장으로 보내졌을 당시의 체험을 다룬 작품이다.

    당시 옛소련과 공산주의 정권은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의 체코 분위기를 두려워하며 민중의 정신적 지주였던 하벨을 옭아매려 했다. 하지만 그 의도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양조장에서 케그통을 굴리며 일한 경험은 부르주아 출신 지식층인 하벨을 굴복시키기는커녕 도리어 "밑바닥의, 부조리하고 그로테스크한 차원의 세계가 늘 훨씬 더 뚜렷하다"는 고백을 낳게 한다. 극작가로서 하벨이 관객 혹은 청중이라는 존재에 대해 더욱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극 <청중>에는 단 두 인물만이 등장한다. 양조장의 관리인인 슬라덱과 고용인 바넥이 그들이다. 이중 바넥은 양조장 노동자로, 바츨라프 하벨의 분신 격인 인물로 평가된다. <청중>이 1976년 오스트리아에서 초연될 당시 비엔나 부르크 극장 예술감독은 공연 중 어느 날 무대에 올라 "바츨라프 하벨은 감옥에 넣을 수 있겠지만 바넥은 감옥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슬라덱은 누구인가. 관리인 슬라덱은 극중에서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시며 바넥을 테이블 앞에 붙잡아 두는 인물로 그려진다. 슬라덱은 바넥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감시를 담당하지만 막상 자신이 바넥에게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명확히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극은 바넥이 선하고, 슬라덱이 악하다는 이분법을 피한다. 극은 시간이 흐를수록 두 인물들의 심리가 각기 모순되고 모호해진다는 것, 그 자체를 그리는 데 치중한다.

    부조리한 세계 속, 인식은 더욱 선명해진다

    바넥과 슬라덱, 그리고 청중

    2010년 <리빙>이 체코 극단의 내한과 함께 대형 프로덕션으로 공연됐던 것과 달리, <청중>은 극단 산수유와 극단 두비춤의 연합으로 소박하게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인물도 간소한 만큼 공연의 초점은 극단 두비춤 배우인 문일수와 이상홍에게 오롯이 맞춰진다. 배우 이상홍이 바넥, 배우 문일수가 슬라덱으로 분한다. 극의 연출은 최근 연극 <별무리>에서 두 인물간 유기적인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특유의 장기를 보였던 류주연이 맡는다.

    6월 중순, 연습실을 방문해 보니 공연팀은 끊임없이 화를 내는 술꾼 슬라덱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다. 류주연 연출가는 하벨과 희곡 <청중> 사이의 역사적 맥락이나 배경은 일단 배제한 채 무대 위에 실존하는 캐릭터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이날은 슬라덱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류 연출이 “화를 내는 논리적 이유는 없는데 감정적인 이유는 있어요.”라고 하면서 인물 구축 과정에서 이성적인 논리를 전부 빼버리기를 주문하자, 문일수 배우는 “알겠습니다. 무식쟁이가 되어 볼게요.”라고 화답한다.

    슬라덱과 바넥의 대화를 한창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바츨라프 하벨이 왜 이 극에 <청중>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떠오른다. 이번 무대에서는 그 궁금증을 푸는 것이 오로지 관객의 몫으로 남겨질 예정이다. 류주연 연출가는 '청중'의 의미를 해석해 무대에 녹여낼 생각이 전혀 없다. 따라서 '청중'에 대한 어떤 연극적 상징이나 장치도 따로 마련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렇게 하면 설명적이 되어 버려요. 차근차근 인물의 캐릭터를 잘 쌓아 나가면 제목의 의미는 관객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고 봐요. 극의 제목이 버젓이 명시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라도 관객은 스스로 그 의미를 찾아 나서거든요. 각자가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겠죠."

    부조리한 세계 속, 인식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극단 산수유와 두비춤의 작품은 불친절한 공연이 되지는 않을 듯하다. 배우들이 최종적으로 각기 인물의 제 모습을 훌륭히 구축해낸다면 관객은 굳이 해석의 수고를 맡지 않아도 저절로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의 대립과 모순을 엿볼 수 있을 테니까. 바넥과 슬라덱의 모순과 아이러니가 복잡하게 얽히면 얽힐수록 관객은 보다 선명한 인식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작품 속에서 엿보이는 부조리극 특유의 유머가 똑똑한 길잡이 역할을 하며 관객을 침묵 속 상념의 세계로 이끌어낼 전망이다. 어쨌건 관객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자극할 이 연극에서 ‘청중’은 그저 듣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 지겹지도 않아?
  • 일시 : 7월 3~6일 평일 8시 / 토 3시, 6시 / 일 3시
    장소 :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작 : 바츨라프 하벨
    연출 : 류주연
    출연 : 문일수, 이상홍
    문의 : 010-6317-8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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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극단 두비춤, 청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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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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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호   2014-06-19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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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yosa
기대작 <청중>, 글로 먼저 만나니까 무척 반갑습니다. :-)

2014-06-19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