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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라진 그 곳,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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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없고, 기능만이 존재한다. 기능을 수행하는 게 사람이라지만 인력이야 언제든 대체 가능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이 널려 있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다. 공장의 생리가 그러하다. 어디 공장뿐이랴.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노동자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공장의 생리가 작동한다.

연극 <공장>은 넓은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공장’에 대해 얘기한다. 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다루지만, 극이 흘러갈수록 사람 사이 관계, 구조가 보인다. 작가가 기계로 가득 찬 공장 대신 공장의 휴게실로 공간적 배경을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기계는 소리를 통해 시스템으로서 군림하는 자기 존재를 암시할 뿐이다. 이로써 이야기는 공장에 국한되지 않고 노동자, 사람 얘기로 확장된다.

사람 사라진 그 곳, 공장

공장이란 이름의 작은 사회

이 작품은 2014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 우수작품제작 지원 선정작으로서 공연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박찬규 작가와 김수희 연출가가 연극 <창신동>, <옆에 서다>에 이어 다시 힘을 합쳤다. 박찬규 작가 희곡은 사실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하되 사람 사이 관계가 부각되도록 한다는 특징이 있다. <공장>도 마찬가지다. 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이 희곡에서 작가는 노동문제를 고발하는 단순한 글쓰기에 그치지 않고 내가 속한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 구조부터 돌아보도록 한다.

작품은 한 공장에서 가족처럼 함께 일하면서도 원청-하청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잔인한 노동 현실에 주목한다. 극은 자동차 회사 협력업체 공장의 직원들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곧 있을 태훈과 선애의 결혼준비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된다. 이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별개로 한편에서는 하청 직원 노조가입 문제로 쌍둥이인 윤희와 윤수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 노조로 인한 징계성 배치 문제가 언급되는 가운데 급기야 결혼을 앞둔 태훈이 사고를 당한다.

무대에 철탑은 등장하지 않지만 극은 자연스레 불법파견 근절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296일 동안 철탑농성을 이어갔던 현대차 울산공장 직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이 연극을 통해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농성을 벌여야만 했을까 혹은 어떻게 그렇게 오래도록 철탑에서 버틸 수 있었나에 대해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 나간다.

등장인물 중 공장노동자들은 남매, 부부, 모녀, 연인 등 친밀한 인간관계로 얽혀 있지만 입장은 제각각 조금씩 다르다. 작가는 끊임없이 노조 결성을 방해하는 회사뿐 아니라 함께 일하면서도 원청직원과 하청직원이 서로 다른 작업복을 입고 수당에 차별을 받는 모습을 그리면서 노사갈등과 노사갈등 문제를 동시에 언급한다. 겉모양새는 한 공동체이지만 실상은 파편화되어 있는 모습이 바로 작가가 바라보는, 공장이란 이름의 작은 사회다.

사람 사라진 그 곳, 공장

가볍지 않은 이야기, 어떻게 펼쳐질까

공장 노동자의 현실을 다루면서도 극 중에는 공장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명색이 ‘공장’이란 제목이 붙었다. 등장인물들을 억압하는 상황 뒤에 거대한 시스템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극 중 어떻게든 암시돼야 할 것만 같다.

연습실에서 만난 김수희 연출가에게 계획을 물으니 “제목에서 말하는 거대공간, 사람이 사라진 공장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다”면서도 혹시나 연출의 과욕으로 전반적으로 리얼한 연극의 분위기를 해칠까 고민 중인 모습이었다. 그래도 “라인을 망치지 않는 선에서 무대로 보여드리고 싶다”고 하니, 어떤 식으로든 연출의 결정이 무대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또 김 연출가는 “노동자의 삶을 꿰고 있어서 이런 작품을 하는 것은 아니고, 작가가 공부한 노동법을 따라가며 공부하는 입장”이라고 겸손히 실토(?)하기도 했다. “이해한 만큼은 가감 없이 전달하고 싶다”는 말이 오히려 믿음직스럽고 반갑게 느껴졌다.

사람 사라진 그 곳, 공장

<공장>은 노동문제를 가볍지 않게 다루되 관객과도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연극이 될 수 있을까?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연습실 분위기로 미뤄 짐작하건대 일단 긍정적이다. 연기에 관록이 붙은 베테랑 배우들과 톡톡 튀는 감각의 신진 배우들이 허물없이 어우러져 극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진중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듣는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지 않는, 관객과 제대로 소통하는 노동 연극이 나올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연출가는 “그래도 무거운 건 어쩔 수 없다”며 유쾌하게 웃긴 했지만.

사람 사라진 그 곳, 공장 포스터

일시
10월 2~11일, 평일 8시, 주말·공휴일 3시(화 쉼)
장소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박찬규
연출
김수희
출연
임홍식, 조은아, 남문철, 백익남, 김성미, 전중용, 성노진, 정승길, 이은정 외
문의
02-889-3561, 3562

태그 사람 사라진 그 곳 공장, 극단 미인,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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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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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호   2014-10-0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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