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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고 유난한 연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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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지친 어느 날 메일함을 열어보니, 이런 편지가 와 있었다. “내 마음은 골짜기 깊어 그늘져 어두운 새들과 짐승들이 몸을 숨겼습니다 그 동안 나는 밝은 곳만 찾아왔지요 더 이상 밝은 곳을 찾지 않았을 때 내 마음은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온갖 새소리, 짐승 우짖는 소리 들려 나는 잠을 깼습니다 당신은 언제 이곳에 들어오셨습니까” 이성복 시인의 「만남」이었다. 평소 존경하던 연세 지긋하신 선생님께서 너무 노부인 티내는 게 아닐까, 하시며 보내주신 시 하나에 평안한 위안이 찾아왔다. 고단한 마음은 이렇듯 소소한 온기에 반응한다. 그러니 시시콜콜한 일상다반사를 공유할 연인을 만나는 일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유일하고 유난한 연애 이야기

극장과 예술가의 공생

크고 작은 축제부터 시작해 서울 시내 곳곳에 공연이 넘쳐나는 가을, 다섯 번째 ‘단솔프로젝트’가 무대에 오른다. 이 프로젝트는 키작은소나무극장의 공간지원 프로그램으로, 젊은 창작자들의 무대를 지원한다. 최근 이런 저런 민간 극장들이 뜻 맞는 젊은 작업자들과 손을 잡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기관이나 제도가 주도하는 프로그램에 끼워 맞춘 형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극장과 창작자들이 자발적으로 기회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연극계의 풍향계가 빙글, 방향을 다시 잡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프로젝트에 <데이트>로 참여하는 극단 필통의 연출에게도 이 작품이. 말하자면, 데뷔작이다.

그래서 특별한 시작

<데이트>는 2007년 극단 필통의 창단 공연으로 초연되었다. 당시 이시원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누구보다도 잘 살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갈등하고 욕망하지만 여전히 외로운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연애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삶의 원동력을 찾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어떻게 보면 흔하디흔한 연애 이야기지만 희곡에는 다소 특별하다 여겨질 수도 있는 남녀가 등장한다. 그들이 가진 상처도, 그것을 이겨내려는 방식도, 유별난 것 같다. 하지만 7년 만에 희곡을 다시 읽어보니 이 작품의 진짜 특별함은 인물들 각자의 이야기보다는 그들이 관계 맺는 방식에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남자와 여자는 이제 겨우 인사를 트자마자, 서로에게 자신의 치부와 상처들을 들춰 보인다. 이게 나야, 하면서. 이래도 괜찮겠어? 하면서.

“사실은 우린 다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내 일이 가장 힘들고, 내 인생만 다사다난한 것 같고. 이 작품에 나오는 여자와 남자도 특별하다면 특별한 거고 또 지극히 평범하다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이 인물들 각자의 사연에 집중하기보다, 텍스트의 호흡을 보려고 해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진 않지만, 이 둘은 왜 함께 있을까. 왜 지금 이 시간에 여기서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가, 이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만들고 있습니다.” - 연출가 한정원

판타지도 욕망도 아닌

그렇게 두 사람은 삶이 재앙과도 같은 순간에 만났다. 그러니 거기엔 어떠한 판타지도 끼어들 틈이 없다. 아, 정말 TV 드라마에나 나오는 달달하고 예쁜 로맨스는 신물이 난다. 세상에 저런 연애가 있을 리가 없잖아! 오히려 현실의 연애는 판타지 같은 건 간단히 건너뛰고 바로 욕망의 단계로 접어든다. 하지만 솔직함을 위시한 관계는 쉽사리 전진하는 만큼 금세 사그라진다. 그곳에 세상과의 소통이나 삶의 원동력 따위는 남아 있지 않다. 주위에 차고 넘치는 연애 이야기를 굳이 극장에 가서 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특별한 관계 맺기 방식은 연애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비록 현실은 비루할지언정 그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데이트, 참 설레는 말이다.

유일하고 유난한 연애 이야기

이시원 작가의 원작 희곡 <데이트>는 총 5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번 공연은 3장까지를 잘라 단막으로 무대에 올린다. 4장과 5장, 에필로그는 1,2,3장과는 또 다른 연애의 단면을 보여준다. (작품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시원 작가의 희곡집을 찾아주세요!) 세상의 모든 연애란 다 특별하기 마련이니까. 기실 작가는 이것이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평범한 연애 이야기라고 강조했지만, 그러므로 더욱 더 이 이야기가 특별한 것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결코 평범하지 않으므로. 여기 극장에서, 그 유일하고 유난한 연애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일하고 유난한 연애 이야기

일시
10월 9일~12일, 목·토 6시, 금 8시, 일 4시
장소
키작은소나무극장
이시원
연출
한정원
출연
유재돈, 배은아
문의
010-9450-6816

태그 유일하고 유난한 연애 이야기, 극단 필통,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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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53호   2014-10-0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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