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소환된 기억, 구원의 길을 모색하다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곡 ‘죽음과 소녀’는 영원한 잠인 죽음이 주는 유혹과 안락함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곡이다. 슈베르트는 이 곡을 두고 ‘운명의 속삭임’이라 말했다 한다. 죽음의 공포에 떠는 소녀와 그를 다정한 말로 위로하며 데려가려는 죽음의 신 사이의 대화가 이 곡의 모티프다. 영원한 잠으로의 유혹, 이제 그만 모두 잊고 편히 쉬라는 죽음의 메시지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치명적인 ‘운명의 속삭임’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살아간다. 묻으려 해도 묻히지 않는 아픈 기억이 때때로 신체와 정신의 감각을 깨우며 쉼 혹은 죽음으로의 도피를 방해하는 까닭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이자 슈베르트의 곡과 동명의 제목을 지닌 <죽음과 소녀>의 주인공 ‘빠울리나’도 마찬가지다. 칠레의 군사독재 시절 고문을 당한 ‘빠울리나’는 독재정권이 무너진 지 15년이 지나도록 악몽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상처로 얼룩진 기억과 다시 한 번 조우한 ‘빠울리나’는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 구원의 길을 모색한다.

아리엘 도르프만이 제시한, 기억과 용서, 구원이라는 화두는 상처를 품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유효하다. 어렵지만 때때로 꼭 필요한 이 화두에 극단 양손프로젝트가 지난 2012년에 이어 다시 한 번 도전한다. 초연은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의 지원을 거쳐 완성되었으며 이번 공연은 당시의 작품을 토대로 한다.

소환된 기억, 구원의 길을 모색하다

기억을 소환하는 소리

<죽음과 소녀> 속 ‘빠울리나’에게 기억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다름 아닌 소리다. ‘빠울리나’의 남편인 ‘헤라르도’는 어느 날 차 고장으로 길가에 서게 되고 우연히 의사 ‘로베르또’의 도움을 받아 집에 오게 된다. 그런데 ‘빠울리나’는 ‘헤라르도’와 함께 집으로 온 ‘로베르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을 고문한 의사라 확신하고, 그를 감금하고 폭력을 가한다. 변호사이자 인권위원회 위원인 남편은 법과 인권을 내세우며 ‘빠울리나’와 충돌한다.

양손프로젝트는 <죽음과 소녀> 초연 당시 이 소리 요소에 특별히 주목해 공연을 만들었다. 청각이란 물리적 힘으로부터 발생하는 감각이다. 이 점에 착안해 양손프로젝트는 긴 테이블 5개와 의자, 마이크 등의 도구를 활용해 갖가지 소리를 빚어내며 과거의 상처에 의해 현재까지 억압받고 있는 ‘빠울리나’의 심리를 부각시켰다.

과거의 기억에 억압 받는 인간 내면의 풍경을 소리화한 이 공연은 원작의 8개 장면 중 1막 4장, 2막 2장, 3막 1장만을 다룬다. 하나같이 인물의 내면갈등이 극에 치닫는 장면들이다. 갈등이 큰 장면이 많다는 것은 이 극단이 내적 갈등을 상징할 요소로 앞세운 ‘소리’를 통해 실험해볼 영역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가 제시한 화두나 줄거리는 극의 뼈대로서 존재하되, 이 극단은 관객과 소통할 새로운 연극적 표현방식을 찾아 나서는 데 더 큰 방점을 둔다.

소환된 기억, 구원의 길을 모색하다

기억과 용서의 길

공연은 ‘빠울리나’가 ‘로베르또’를 자신의 포로로 묶어두고 협박하는 한편 그 모습을 남편 ‘헤라르도’에게 공개하는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 공연 중 ‘빠울리나’의 포로가 된 ‘로베르또’는 빈 의자로 상징된다. ‘로베르또’ 역의 배우가 등장하긴 하나 그는 자유롭게 무대 위를 활보한다. 무대 사방을 헤집고 다니는 ‘로베르또’는 마이크를 통해 굵은 목소리를 냄으로써 ‘빠울리나’의 억압 받는 심리상태를 짐작케 한다. 처음의 갈등은 피해자 ‘빠울리나’와 제3자적 입장을 견지하는 ‘헤라르도’에게서 발생한다. 과거의 원수(로 추정되는 이)를 묶어둔 행위를 두고 “하지마, 그러면 안 돼”라고 하는 남편 ‘헤라르도’와 “언제까지 그럴 거냐”는 아내 ‘빠울리나’의 대화가 초반부터 예리한 대립각을 세우며 관객을 선택의 궁지로 내몬다.

계속 되는 장면에서는 ‘빠울리나’의 대변인으로서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종용하는 ‘로베르또’와 용서를 빌 게 없다는 ‘헤라르도’의 모습, 우여곡절 끝에 모종의 타협 지점에 이르는 두 남자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베르또’가 자신을 파괴한 그 의사임을 분명히 파악하게 되는 ‘빠울리나’의 모습이 차례로 다뤄진다. 이들 인물 셋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치권의 흔한 다툼과 극적 타협, 이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아나서는 시민의 모습이 저절로 연상된다. 이 모든 인물 간 구도와 상황을 줄거리가 아닌 감각의 논리에 따라 체험할 수 있다는 게 이 공연의 특징이다.

완벽한 리바이벌을 싫어하는 양손 프로젝트가 이번에는 어떻게 공연을 풀어낼 지 궁금해진다. 살짝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극의 큰 틀거리는 전작과 같지만 ‘헤라르도’와 ‘빠울리나’의 대립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도록 만들 예정이라고. 박지혜 연출가는 “극이 새롭게 들리길 바란다”면서 “건조하게 진행해 의도가 들리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귀띔했다.

소환된 기억, 구원의 길을 모색하다

양손프로젝트의 연극 <죽음과 소녀>를 통해 기억과 용서에 관한 묵직한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은 결국 관객의 몫이다. 공연은 단지 관객에게 ‘타인의 잘못을 잊지 않고 기억하되 용서하는 일은 과연 가능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찬찬히 사색해볼 기회를 마련할 뿐이다. 양손프로젝트가 이번 공연에서 새롭게 찾아낼, 또 다른 몸의 표현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서는 데 다시금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폭력과 억압의 기억에 맞서 스스로의 구원을 모색하는 ‘빠울리나’의 총구가 결국 어디로 향하는지 놓치지 마시길.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죽음과소녀 포스터

일시
10월 24일~11월 15일, 평일 8시, 토 3·7시, 일 4시, 월 쉼
* 문화가 있는 날: 10월 29일 4·8시 2회 공연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아리엘 도르프만
번역·연출
박지혜
출연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
문의
02-708-5001

태그 두산아트센터,양손프로젝트,죽음과 소녀

목록보기

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nabyeot
제54호   2014-10-16   덧글 1
댓글쓰기
덧글쓰기

독자
두산 신작 올라올 때마다 꼬박꼬박 기사가 올라오네. 글쓴이는 프로그램에도 썼던데 두산이 이 잡지 발행인?

2014-11-05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