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괴물이 된 루저들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과 제목이 같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연극 <괴물>의 원작은 영화 <해피 버스 데이>다), 극의 중심에 가족이 놓인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두 가족의 행동 양태는 사뭇 다르다. 영화 <괴물> 속 가족 경우 비루한 모습의 가정일지언정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딸을 ‘괴물’에게서 구출해내고자 애쓰지만, 연극 <괴물>의 가족은 선천적 장애를 앓고 있는 가족의 한 구성원을 ‘괴물’로 간주하고 그를 죽이고자 공모한다.

극단 산수유의 정기공연으로 무대화되는 이 작품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가족,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어느 한 가족의 모습을 관객 앞에 펼쳐 보인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강간,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이들의 모습은 어느 것 하나 소위 말하는 정상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을 뿐 온갖 범죄의 소굴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는 모든 인간관계가 왜곡되고 뒤틀려 있다. 번듯한 것은 오직 하나, 이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건물뿐이다. 시나리오에서 희곡으로 바뀌었지만, 작가는 불규칙한 시간 구성이라는 영화적 문법을 고수한다. 그리하여 때때로 서로 얽히기도, 어긋나기도 하는 극 중 인물들은 극 말미에야 비로소 한 사람 한 사람씩 조명된다. 상처 입은 괴물의 모습으로써.

괴물이 된 루저들

가해자이자 피해자

저마다 비상식적인 삶을 사는 이들 가족은 선천적 장애를 앓고 있는 첫째 승현의 생일날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다. 홀로 6남매를 키우는 엄마, 그리고 성이 다른 아들 기태와 성일, 기태의 아내 선영, 성일의 여자친구 정복, 히키코모리 딸 아현, 넷째 아들이자 트렌스젠더인 상훈, 동네 양아치의 삶을 동경하는 막내 승환 등은 한자리에 모여 작은아버지가 가져온 문서에 사인하고, 승현을 죽이기로 한다. 독약이 든 마지막 생일상 음식들을 승현에게 먹인 이들은 승현이 죽기 전 10분씩 함께 있으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아픔과 진심을 이야기한다. 괴물이 죽고 가족은 다 함께 괴물을 묻을 곳으로 간다.

줄거리만 보면 일견 스릴러로 비치지만 작품은 범죄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거나 범인을 숨겼다가 공개하는 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극의 앞부분부터 이미 이들 이상한 가족 모두를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 그리기 때문이다. 대신 강조되는 것은 각 사람의 입장을 보다 세밀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류주연 연출가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장애인을 죽이는 가족들 한 명 한 명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부조리극에 가까운 극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이 지극히 사실주의적인 연기를 펼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괴물 같은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 비뚤어진 이들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결국 연민 혹은 안타까움의 감정을 품게 된다. 단순히 이들을 알아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삶의 주름마다 우리 사회의 그림자가 서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괴물이 된 루저들

괴물의 순환

이 극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범죄자를 옹호하거나 응징하는 것에 있지 않다. 극은 괴물이라며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여기던 승현보다 사실은 승현을 없애려는 이들 가족이 되려 더욱 괴물의 모습에 가깝다는 점을 피력한다. 구조나 내용상 선명하게 방점이 찍히지는 않지만, 결국 이들이 추종하는 것은 자본의 논리요, 힘의 논리다. 승현을 낳은 어머니마저 자본주의의 매정한 속성이 결국 승현을 그대로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수긍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사실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아이러니한 것은 승현을 죽이려는 이들 모두가 사회적 통념상 루저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극단적인 삶을 살아가며 사회에 반항하는 듯 혹은 무심한 듯 살고 있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자본의 논리, 힘의 논리에 억눌려 있다. 이들은 게임 아이템, 중국산 물품 유통, 주거 문제 등 다양한 얼굴을 한 자본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 모두가 힘을 합해 괴물을 죽이지만 그 괴물은 엉뚱한 희생양일 뿐, 진짜 괴물은 오히려 강력해진다.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영리하게 파고들면서 모두를 공범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성의 말살에 대한 모두의 침묵이 깊어지면서 결국 악은 순환의 고리에 서게 된다.

괴물이 된 루저들

[사진: 극단 산수유 제공]

괴물 포스터

일시
12월 3일~14일, 평일 8시, 토 3·7시, 일 3시, 월 쉼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이승원
연출
류주연
출연
박명신, 선종남, 장성익, 김용준, 이현경 외
문의
02-3668-0007

태그 극단 산수유,괴물,김나볏

목록보기

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nabyeot
제57호   2014-12-04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