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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그만 하는 게 어때? 생각을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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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말 명동예술극장에서 현대 일본희곡 낭독공연으로 무대에 오르고, 이달 초 대학로 키작은 소나무 극장에서 공연된 데 이어 12월 중 연우무대에서 다시 한 번 관객 만날 채비를 하는 희곡이 있다. 바로 1977년생 도쿄 출생인 마에다 시로가 쓴 <그레이트 생활 어드벤처>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독회 공연도 포함돼 있긴 하지만 고전이 아닌 작품이 한 해에 세 번이나 무대화되는 것은 어쨌거나 이례적이다. 특히 마에다 시로의 이 작품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하나같이 젊은 연극인들이라는 게 흥미롭다.

연우무대 <그레이트 인생 어드벤처>

이 작품의 원작은 소설이다. 극작가이자 연출가, 배우이자 소설가, 영화감독인 ‘팔방미인 예술가’ 마에다 시로가 2007년 아쿠타가와상 후보에도 올랐던 이 소설을 직접 희곡으로 각색해 발표했다. 한 장르에 천착하지 않고 종횡무진한 덕분일까. 마에다 시로의 작품에서는 동시대의 젊은 감수성이 유독 두드러진다. 올 연말 연우무대의 공연 역시 원작의 톡톡 튀는 감각에 집중해 무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극 <데스트랩>으로 인기몰이를 한 젊은 연출가 김지호는 앞서 한국에서 소개된 마에다 시로의 두 공연(제목 <위대한 생활의 모험>)과 달리 원작과 유사한 <그레이트 인생 어드벤처>라는 이름을 붙였다. 게임 중독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외래어의 혼합 사용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제목으로 느껴진다.

작품의 주인공은 화면이 좌우로 움직이는 게임, 이른바 ‘횡스크롤 게임’에 빠진 청년이다. 단순하게 앞과 뒤로만 움직이면서 점프와 공격을 하는 횡스크롤 게임 속 캐릭터처럼, 극 속의 주인공 역시 매력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주인공은 어찌 보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루저로 비치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수많은 장벽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인생 방식을 개척해나가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세상에 반항도 순응도 하지 않는 이 남자 캐릭터는 이미 공고한 체계를 갖춘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요즘 젊은 세대의 모습과 포개어진다. 살아가는 방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 현재 세대의 감성과 그들이 처한 환경을 정확히 반영하고, 나아가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까지 곱씹어 보게 한다는 점이 이 희곡의 매력 아닐까.

연우무대 <그레이트 인생 어드벤처>

미래 없는 삶

이 극에는 게임에 빠진 남자 외에도 다수의 인물이 등장한다. 하루 종일 계속되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심신이 지친 여자, 남자와 마찬가지로 게임에 빠져 있지만 현실에도 어느 정도 발을 담그고 있는 다나베와 그런 다나베의 여자친구, 어린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남자의 여동생 등이다. 각기 다른 성격의 인물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삶 아니면 근시안적인 미래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무대의 배경은 남자의 방이다. 이 방은 단 위에 꾸며져 있어 마치 섬처럼 보인다. 방에는 만화책, 이불과 베개, 소설 <해변의 카프카>, 사발면 빈 그릇, 게임 피규어 등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도무지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한 이 ‘섬’에서 남자가 견디는 방법은 게임으로의 도피다. 푼돈을 벌기 위해 외부 세계로 나가는 여자는 그런 남자를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결국 이곳으로 돌아오곤 한다.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게살통조림을 나눠 먹자며 위로하는 남자가 있기 때문이다.

무대는 현실과 가상, 두 가지로 나뉜다. 방이 현실의 공간이라면 형형색색의 볼풀 공으로 채워질 예정인 방의 둘레는 게임의 공간, 가상현실의 공간이다. 좀처럼 게임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남자는 여기서 게임 속 마왕을 처치하고자 고군분투한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치부하자니 이 남자의 모습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관객은 이 남자에게 세상에 대한 굳은 인식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남자는 어차피 해쳐나가기 힘들, 공고한 체계를 갖춘 세상 대신 이 곳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존재적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볼풀 공은 가상현실을 상징하는 장치인 동시에 게임 속 캐릭터의 움직임을 연극적으로 풀어내도록 돕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연기할 때 배우는 실제로 공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배우는 그 가운데에서 단순한 동작만을 반복할 수 밖에 없고, 이로써 어렵지 않게 게임 캐릭터로 빙의한다. 남자는 이곳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왜 살아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 침묵하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자기만의 세계, 질서 속에서 사는 돈키호테처럼.

연우무대 <그레이트 인생 어드벤처>

모두가 겪었을 법한 순간

무기력한 탈진 상태의 삶, 의미 없는 낙관으로 점철된 삶이지만 이 남자를 비난하기 힘든 이유가 또 있다. 미래 없이 현재에만 집중하는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극한의 위태로움을 피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확신 없이 일단 움직이고 바쁘게 생활을 영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남자의 삶은 모험 그 자체이자 현대적 의미에서 비극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번 연우무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한심하기 그지없는 인물들을 결코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30대가 공감할 만한 해석을 할 것”이라는 김지호 연출가는 남자 주인공에 대해 “보통 남들이 만들어낸 표본에 맞춰 살다보니 삶이 각박해지는데 여기서 조금은 벗어나보고자 했던 사람”으로 보고 있다. 사실은 모두가 이런 순간을 겪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연출가는 현재 배우들과 함께 무엇보다도 설득력 있는 인물 만들기에 초점을 맞춰 맹연습 중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공연 팀이 두 가지 버전의 다른 공연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한 팀은 원작 그대로 정적인 분위기로 연기하고, 다른 한 팀은 보다 역동적인 분위기로 연기할 예정이다. 이로써 전체 작품은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는 대사, ‘생각을 그만 하는 게 어때?’와 ‘생각을 좀 해.’ 사이를 진동하는 공연이 될 듯하다. 뚜렷한 확신도 정답도 없는 세상에서 삶에 대한 사유와 살아가는 방식의 선택은 이로써 관객의 몫으로 오롯이 남을 예정이다.

[사진: ㈜스페셜원컴퍼니 제공]

연우무대 <그레이트 인생 어드벤처> 포스터

일시
12월 18일~2015년 1월 31일, 평일 8시, 토3시5시반, 일 3시, 월 쉼
장소
대학로 연우 소극장
마에다 시로
연출
김지호
출연
정윤민, 김상엽, 정상훈, 김화영, 길하라, 유현선, 고은이, 박혜진, 이채원
문의
02-6227-0301

태그 연우무대,그레이트 인생 어드벤처,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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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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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8호   2014-12-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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