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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수수께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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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쓰고 싶은 작가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비극이 되는지 모르겠다. 주인공을 죽여야겠는데, 어떤 죽음이 더 비극적인지 가늠이 안 된다. 아, 그러다보니 이제는 비극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린다. 비극을 제대로 알면 비극을 쓸 수 있으려나? 뭣보다 도대체 이런 질문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미치도록 비극이 쓰고 싶다. 왜? 왜 비극을 쓰고 싶은 건데? 모르겠다. 그냥, 이 모든 물음들이 몹시 피곤하다. 물음 그 자체가 너무 무겁다. 간신히 답을 찾는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그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질문들은 영원할 테니까. 이렇게, 언제고 우리는 삶을 우회한다.

극단 피오르 <비극의 일인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을 알지 못하면서 죽음에 대해 쓰는 작가와 죽어가면서도 그 죽음을 말하지 못하는 작가의 아내가 있다. 관객을 사로잡는 비극적인 희곡을 쓰기 위해 평생을 골몰했던 작가는 마침내 노벨상을 수상하지만 이제 사랑하는 아내는 곁에 없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숲속의 자택에서 은둔해온 그에게 유일한 말벗이 되어주는 것은 죽은 아내뿐이다. 작품 속에는 그가 죽였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이 있지만 누구도 그 죽음을 증명해줄 수가 없고,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작가는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조롱만 당한다. 불현 듯 나타난 첫사랑은 기억을 왜곡하고, 아내를 간병해주는 자원봉사자 아줌마는 알고 보니 모두의 집에 들렀다 열흘 전에 사라졌다. <비극의 일인자>는 이런 작품이다. 현실보다는 꿈과 환상을 쫓고, 여럿이 등장하지만 결국 이야기는 한 사람의 서사로 수렴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존재와 부재의 미세한 틈을 두리번거리며, 기억 혹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심연을 횡단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반전…

“어떻게 보면 연극은 이런 주제를 얘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은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 이 작은 세계에 들어오면 순식간에 스스로를 망각한다. 혹은 냉정하게 무대를 지켜볼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이든 존재론적 질문을 던져 관객을 생각하게 만드는 건 마찬가지다. 사실 철학자들이 존재를 설명하는 것도 그 방법이 논리적 기술일 뿐이지, 이야기는 모두 소설적 허구 아닌가. 그런 면에서 연극은 어떤 식의 로고스를 보여주기에 상당히 좋은 장르일 수 있다. 다만 자꾸 설명하려다 보면 결국 도서관 서가의 한 항목을 만들게 될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연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찾아가려고 한다.”- 연출가 임후성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배우는 현존이라는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작정하고 한 단계 더 들어간 질문을 던진다. 과연 부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혹은 존재의 무게감을 어떻게 연기로서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이야기상의 비약이나 순간순간 감지되는 변화 같은 건 사실 명확한 것도 아니고 말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해석의 여지가 있고 상상의 폭이 넓어지려면, 배우는 어떤 식으로든 구체성을 가지고 연기해야 한다. 나에게 답이 있어야 이미지도 만들어질 수 있는 거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관념을 형상화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연극이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배우 김정호

극단 피오르 <비극의 일인자>

무대의 답을 들어라

이렇듯 삶과 죽, 존재와 부, 기억과 망각이라는 주제를 에두르는 이 작품 일상의 부박한 감각과는 또 다른 미적인 조형성을 추구한. 논리보다는 음악적이, 드라마보다는 회화적인 표현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희곡의 언어는 아름답게 정제되어 있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라임과 리듬이 숨어 있. 그러다보니 대사를 발화하는 것만으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는 것이 가능하. 이를테면 한 배우는 자연스럽게 연기하면서 자신의 대사를 말하는, 옆에 있던 배우가 그 대사의 호흡에 맞춰 마지막 음절만을 따라하는 식이.

(이러한 구현을 글로 설명하자니 꽤나 까다롭습니다. 예를 들어 위의 문단을 소리 내어 읽는다고 했을 때, 저는 음영 표시가 된 부분에서 쉬어가겠습니다. 이때 제 옆에서 누군가 저 음영 표시된 글자만을 따라 말하는 거죠. 음, 재, 은, 다, 고, 다, 고… 이렇게요. 물론 제 글에는 라임도 리듬도 없으니 이게 음악이 되지는 않습니다만.)



배우들의 연기에 있어서도 움직임이 아니라 위치가 중요해진다. 빈 무대엔 덩그마니 두 개의 의자가 놓여있고, 높이 2.4m의 벽체만이 존재한다. 이때 배우 저마다가 차지하는 위치는 한 폭의 회화처럼 들어오고 공간은 그때그때 형질을 달리한다. 나는 여기 탁자가 있다고 생각해 손을 얹고 이야기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곳이 물속이 될 수도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얘길 하면서도 시선을 어디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이 나란히 존재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은 나지막이 읊조리는데 다른 한 사람이 고함을 지르는 것으로 두 사람이 위치한 시공의 결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극단 피오르 <비극의 일인자>

사실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평범하게 비극을 전시한다. 매일매일의 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사소한 삶의 순간들도 그 절박함으로 따지고 보면 단연코 그보다 덜 비극적이라 할 수 없다. 비극을 쓰고 싶은 작가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내 비극이 무엇인지 설명해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걸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여, 무겁고 피곤한 질문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못한 채 다시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당신, 진정 비극을 쓰고 싶은가?

[사진: 극단 피오르 제공]

극단 피오르 <비극의 일인자> 포스터

일시
2월 5일~2월 21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공휴일·21일 3시, 월 공연 없음
장소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김성민
연출
임후성
출연
김정호, 김성미, 전수아, 임정은, 배수진, 김진복
문의
02-764-7462

태그 극단 피오르,비극의 일인자,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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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61호   2015-02-0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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