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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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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오디션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TV에서도 일상에서도 ‘누군가에게 간택되기 위해’ 수많은 관문을 마주해야 하는 세상이다.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산업의 역군이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 했지만 지금처럼 그 경쟁이 노골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통과의례 수준이던 경쟁은 이제 각자의 운명을 가르는 시험대나 다름 없게 됐다. 기회를 잡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낙차는 너무나 크다. 이제 기회는 반드시 싸워 이겨 잡아채야 하는 무엇이 되어버렸다.

박찬규 작가가 쓴 희곡 <졸업작품>은 오디션의 다른 이름이 되어버린 졸업공연을 극의 소재로 삼는다. 극의 주인공들은 ‘입시 경쟁’을 헤치고 나온 후 이번에는 ‘졸업 경쟁’을 마주하게 된 공연예술학부 학생들이다. 공연예술학부의 저조한 취업률을 높이고자 학교는 졸업공연 제작에 기획사를 참여시키고, 기획사는 학생들 중 몇 명을 기획사 배우로 선발하겠다고 제안한다. 졸업을 앞두고 불안했던 4학년 학생들은 기획사 눈에 들기 위해 전쟁 같은 캐스팅 경쟁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사고가 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경쟁은 멈추지 않고 점점 더 가열된다.

2014 크리에이티브마인즈 <졸업작품>

입시세대가 자라면 어떻게 될까

요즘 세대에게 졸업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청운의 꿈을 담을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업종을 불문하고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우선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어른들의 조언은 효력을 잃어 버렸다.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나서면 ‘계속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하는’ 상태에 머무르기 십상이다. 졸업생들을 줄지어 기다리는 불안정한 계약직은 이제 갓 졸업한 학생들을 불합리한 취업 시장 구조의 말단에 가둬 버리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희곡 <졸업작품>은 청년들의 이런 불안정한 상태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졸업’하면 생각나던 석별의 정이나 새 출발이란 말은 좋은 시절의 옛 말이 되어버렸다. 대신, 취업이라는 키워드가 그 자리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극소수에게만 허락되는 무대라는 공간은 이런 현상을 더욱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극 중 예비 배우들은 기획사가 제공하는 무대 위에 서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다. 냉혹한 입시를 거쳐 살아남은 학생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또 한 번의 오디션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경쟁 사회는 이들로 하여금 끝없는 경쟁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따져 묻기 전에 지금 당장 경쟁에 뛰어들도록 재촉한다.

박찬규 작가는 “2000년 초반, 20대에 관한 세대론이 불 당시 막상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는 것 같아 이 작품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자기개발 담론이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게 가장 위험하다는 게 박 작가의 생각이다. 자기개발에 매진 할 것을 종용하는 사회는 결국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게 되기 때문이다. 초고를 쓸 당시 20대였던 작가는 자신이 속한 입시 세대의 이야기를 빌어 스스로와 또래에게 질문한다. 아무런 질문이나 반항 없이 경쟁을 받아들인 우리가 자라면 과연 어떻게 될까, 라고.

2014 크리에이티브마인즈 <졸업작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젊음’

공연의 주된 배경은 연습실이다. 등장인물들 사이에는 여느 이십대들처럼 서로에 대한 질투와 시기, 경쟁이 있고, 꿈과 도전이 있으며, 남녀 간의 사랑과 그에 따른 책임의 문제가 있다. 이들이 머무는 공간은 그 나이 또래에만 경험할 수 있는 뜨거움과 열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러한 젊음의 발산마저도 현실의 무거움에 이내 짓눌려 버린다. 대형기획사의 캐스팅이라는 절호의 ‘취업’ 기회는 마치 블랙홀처럼 무대 위 모든 젊음의 열기를 응축하고 흡수한다.

연습실 공간에서 계속해서 발산해내던 젊음의 열기를 한 몸에 응축해낸 채 극 말미 무대로 나가게 되는 공연예술학부 학생들의 모습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그려낼 지가 이번 공연의 관건이다. <창신동>, <공장>, <옆에 서다> 등에 이어 박찬규 작가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게 된 김수희 연출가는 무대 표현에 있어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김 연출가는 “연극적 전환에 신경을 쓰고 있다”며 “극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습실 장면에서는 암전 없이 쭉 가다가 이들이 공연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게 되는 순간 시각적 효과를 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성에 몸이 달아 있으며 졸업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여기는, 이십대만의 에너지를 포착해내기 위해 오늘도 연출가는 배우들과 고군분투 중이다.

2014 크리에이티브마인즈 <졸업작품>

이와 별개로 CJ문화재단의 프로그램인 ‘2014 크리에이티브마인즈’의 발전 과정도 눈여겨 볼 포인트 중 하나가 될 예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형기획사의 눈에 들기 위한 예비 배우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이 작품은 대기업 문화재단의 지원 프로그램에 당선 되면서 무대로 옮겨지게 됐다. 노파심에 작가와 연출가에게 애로사항은 없었는지 슬쩍 물었는데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처음 입봉하는 작가에게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는 것이다. 박찬규 작가와 김수희 연출가는 “독특한 생각이나 시각, 소재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 같다”며 제작과정에 대해 만족감을 표했다. 젊음을 잃지 않는 경쟁은 가능한 것인지 이번 공연을 통해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공연은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펼쳐진다.

[사진: CJ문화재단 제공]

2014 크리에이티브마인즈 <졸업작품> 포스터

일시
2월 13일~3월 1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 3시, (월요일, 2/19 공연 없음)
장소
쁘띠첼씨어터
박찬규
연출
김수희
출연
정나진, 최유송, 박선희, 이철희, 이현균, 김민하, 이승헌, 이지혜, 강해진, 신사랑, 박소아
문의
02-470-6318

태그 2014 크리에이티브마인즈,졸업작품,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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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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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호   2015-02-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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