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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뒤엉킨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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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연예술센터의 정기대관 공모 탈락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던 ‘2015 서울연극제’가 마침내 오는 4월 4일 막을 올린다. 올해로 36회차를 맞는 이번 축제는 대학로자유극장, 동양예술극장, 아르코예술극장 등에서 9일간 개최된다.

‘2015 서울연극제’의 경연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공식참가작 7편은 사전공모 및 희곡심사 과정을 거쳐 초연작 5편과 재연작 2편으로 선정됐다. 독립운동, 관동대지진, 80년대 학생운동, 청춘의 애환 등 극의 소재는 각양각색이지만 시대를 반영하거나 읽어내려는 시도를 한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씨름으로 그린 근현대사

극단 바람풀 <씨름>

"연극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들 하죠. 건만과 웅치를 통해 관객이 자기 모습은 어떤가 하고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작품 중 사람의 욕망이 두드러지게 표현되는데요. 이를 두고 작가는 영웅주의라고, 또 극 중 건만은 희망이라고도 말하죠. 여기 이 공동체가 해체되고 변화되는 가운데 사람들이 품은 희망 혹은 욕망, 아니면 본의 아니게 덧씌워진 영웅주의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사실은 이 모든 게 사람의 손을 탄 것들, 조작된 것들이죠. 우리도 사실은 그런 류의 욕망을 마음에 품은 채 혹시 무임승차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박정석 연출가

축제의 첫 포문을 여는 작품은 극단 바람풀의 연극 <씨름>이다. 극의 주인공인 건만과 웅치는 본의 아니게 전쟁터에 끌려갔다가 살아남아 동굴에 숨어든다. 동네에서 촉망 받던 청년 웅치와 겁쟁이로 놀림 받던 건만은 동굴에서 나오면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6.25 전쟁을 연상할 만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극은 시공간을 특정하지 않은 채 진행된다. 인물들이 동굴과 마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겪는 일화들을 통해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생존의 극한 상황 속 내가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사회의 가혹한 매커니즘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제한적인 시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역사로까지 확장돼 읽히게끔 하는 데는 전쟁 외에 씨름이라는 소재가 한 몫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 마을 사람들이 익숙하게 접해온 씨름은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벌이는 생존경쟁에 대한 한국적인 비유다. 박정석 연출가는 “이 작품에는 정서적인 매력이 있다”면서 “우화적인 부분과 직접적인 부분이 섞여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 과정에서 작가 고유의 극장 문법이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박 연출가는 경사진 원형 판을 기본 무대로 삼되 무대 뒷편에 단을 두고 회상 장면을 곁들여 한국의 근현대사가 우화적으로 보이게끔 만들 예정이다.

동굴에서 나온 그들에게 도덕적 질문을 던지다

극단 바람풀 <씨름>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동굴로 비유되는, 어떤 좁은 공간에 머물다가 그곳에서 탈출하면서 운명이 뒤바뀌는 이야기예요. 사연이 확장되는 셈이죠. 극중 모든 인물은 과거에서 현재로 오며 변화를 겪습니다. 굴곡진 역사를 살아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관객들이 ‘나도 어떤 상황에 몰리면 나를 포장하고 살아가겠구나, 불의인 걸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동의하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나도 나쁜 놈인데 남만 욕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사는 게 옳은 지에 대해 더 이상 얘기 안 하는 세상에 도덕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설유진 작가

씨름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다소 선이 굵은 이야기를 그린 까닭에 경력 많은 남자작가의 작품일 것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사실 <씨름>은 30대 초반인 설유진 작가의 처녀작이다. 처음 쓴 희곡으로 지난해 서울연극협회의 ‘희곡아 솟아라’ 당선작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설유진 작가는 작금의 한국 사회를 전쟁터로 바라보고, 근현대 질곡의 역사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고 주저 없이 설파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소까지 등장해 한 판 싸움을 벌이는 이곳의 풍경은 한국인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질 터. 작품은 이처럼 진한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초연작이긴 하지만 이번 공연에는 지난해 12월 낭독공연을 선보였던 배우들 대부분이 그대로 캐스팅 돼 작품 전반에 안정감을 더할 예정이다. 정재진, 전국향, 지춘성, 유준원, 강학수, 문창완 등 대학로 중견 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극의 서사에 힘을 더하는 한편, 곳곳에 숨어 있는 은유와 상징을 깊이 있게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금은 촌스럽고 서툴러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고민 대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권하며 도덕적인 올바름에 천착해 뚝심 있게 돌직구를 던진다는 게 이 작품의 미덕이다.

[사진: 극단 바람풀 제공]

극단 바람풀 <씨름> 포스터

일시
4월 4일~4월 12일 평일 8시, 주말 4시
장소
동양예술극장 2관
설유진
연출
박정석
출연
이재인, 김동현, 정재진, 전국향, 유준원, 지춘성, 강학수, 문창완, 지건우, 이훈희
문의
02-745-4566

태그 극단 바람풀,씨름,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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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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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호   2015-04-0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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