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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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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동 <게공선>

“그래 지옥으로 가는 거야!”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 <게공선>은 고바야시 다키지의 대표작이자 계급주의 소설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1926년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배인 ‘게공선’에서 한 선원이 가혹한 노동과 폭력으로 사망했던 실제 사건을 소설화해 당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소설 발표 후 9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극단 동이 이 ‘게공선’에 탑승한다. 극단 동은 이 공연에서 게공선에 탑승한 선원들의 삶을 실제로 겪어내다시피 하며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는 노동자, 청년의 모습을 극대화해 표현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라 그 의미가 더한다. <게공선>은 일제 강점기를 민족 간의 관계가 아닌, 계급 간의 관계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이로써 오늘날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일제강점기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일본인과 조선인으로 단순하게 나누는 대신, 부르주아(일본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일본과 조선의 노동자)로 좀 더 세밀히 나눠볼 기회를 얻는다. 그럼으로써 식민지의 잔재는 일본적인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를 게공선의 위태로운 삶의 현장으로 내모는 자본주의라는 점을 강조한다. 연극 <게공선>은 소설의 이런 시각을 따라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사다리에서 가장 하단에 매달려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내며 진정한 광복, 해방이란 무엇인지 사색하도록 이끌 예정이다.

어쩔 수 없이 겹쳐지는 세월호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내용의 소설이 원작이다. 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사실 자본주의 속성이 배를 침몰하게 했다는 점에서 세월호와 닿아 있기도 하다.”- 강량원 연출가

극단 동 <게공선>

공연에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지만, 관객들은 게공선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세월호를 연상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배가 무대의 배경이라는 점, 그곳에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가혹한 논리가 배를 결국 침몰로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게공선은 선박이 아닌 공장선이기 때문에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고 또한 공장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즉, 게공선을 통해 법의 사각지대가 무대에 본격적으로 펼쳐 보여지는 셈이다. 아마도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선원으로 분한 배우들의 육체가 피폐해지면 질수록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육체노동자의 고단함을 눈으로 실감하는 동안 가령 이런 대사가 귀와 가슴에 와 걸린다. “배에 대한 보험은 충분히 들어뒀어. 고물배는 차라리 가라앉는 게 더 이익이라고 말했어. 러일전쟁 때 배에다 겉치장만 다시 한 거야.” 선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생명과 안전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자본주의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결국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조건에 맞서 싸우기를 택한다. ‘자본주의라는 지옥을 함께 하는 배’라는 부제처럼 바라보는 이 또한 무대 위 선원들과 어느새 한마음이 된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몸

가공된 무대를 보는 것뿐인데 가혹한 노동현실과 그에 대한 분노를 강하게 실감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배우들의 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배우의 몸이 간접경험의 밀도를 한껏 높인다. 무대에서 배우들은 아무런 도구에 기대지 않고 맨몸으로 선원을 연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동작은 더 없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강량원 연출가는 이번 공연을 위해 배우들이 직접 리서치에 나섰다고 귀띔했다. 원양어선을 타는 모습이 담긴 영상자료를 찾아보면서 연구하기도 하고 배우들 중 일부는 배를 직접 타면서 그물 깁는 동작을 익혀오기도 했다. 현재 극단 동의 연습실 한 편에는 굵은 밧줄이 묶여져 있다. 배우들이 밧줄의 두께를 실감하게 하기 위해 실제 배에서 쓰는 밧줄을 직접 공수해온 것이다. 실제 무대에서는 밧줄이 쓰이지 않고 밧줄을 움켜쥐고 끌어당기는 등의 움직임만 표현될 예정이다.

극단 동 <게공선>

연습실에는 밧줄 외에 플라스틱 박스도 놓여있다. 게가 가득 담긴 박스의 무게를 가늠하기 위해 박스에 10kg에 육박하는 아령의 무게추를 담아뒀다.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움직임은 언뜻 마임을 연상시키지만 통상의 마임보다는 훨씬 더 묵직하다. 신체를 가혹하게 단련하는 탓에 에어컨 바람 속에서도 훈련 중인 배우들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비 오듯 떨어졌다.

스타니슬라브스키의 훈련체계를 배우의 신체행동을 중심으로 한 연극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극단 동은 이번 작품 <게공선>을 제17회 서울변방연극제 공식초청작이자 폐막작으로 무대에 올린다. 강량원 연출가는 “지난해 공연들을 보고 너무 좋아서 내가 먼저 참가 신청했다”며 변방연극제에 대해 “연극의 실험정신이 있는 곳”이라고 치켜세웠다. 올해 변방연극제에서는 지난 수개월간 담금질해온 극단 동 특유의 실험정신이 관객의 오감을 자극할 예정이다.

[사진: 극단 동 제공]

극단 동 <게공선> 포스터

일시
7월 22일~8월 2일, 평일 8시, 주말 8시
장소
인디아트홀 공
원작
고바야시 다키지
각색·연출
강량원
출연
최용진, 최태용 ,권택기 ,김석주, 김진복, 윤민웅, 이재호, 김광표, 임주현, 김용희
문의
02-3673-5575

태그 극단 동,게공선,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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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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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호   2015-07-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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