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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기억과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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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코끼리만보<말들의 무덤>

극단 코끼리만보의 연극 <착한사람, 조양규>와 <말들의 무덤>, <먼 데서 오는 여자>가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진중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신중한 걸음을 떼 온 코끼리만보의 대표작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착한 사람, 조양규>와 <말들의 무덤>은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묶여 9월 2일부터 16일까지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다. <먼 데서 오는 여자>는 9월 18일부터 10월 4일까지 역시 같은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생각나는 사람’의 1부 공연에 해당하는 <말들의 무덤>은 1950년대 있었던 양민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전쟁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묘사하는 대신 그때 사라져 간 사람과 사라져 간 사람들을 목격한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전쟁의 상처와 억압된 상태에서의 침묵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 공연인 <착한 사람 조양규>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한 실종자와 1971년 창경궁에서 도주한 한 마리의 홍학의 흔적이라는 소재를 병렬적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30여 년 동안 실종의 상태였던 홍학 한 마리, 그리고 베트남전에 파병돼 죽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귀국해 일상을 영위하다 결국 집에서 부패된 시신으로 발견된 조 씨의 이야기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지는 작품이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먼 데서 오는 여자>는 70~80년대 가족을 위해 중동에 파견된 남자와 파독 간호사를 꿈꾸던 한 여자의 삶을 통해 그 시대 한국 사람들이 겪어내야만 했던 비극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배삼식 작가에게 차범석 희곡상을, 이연규 배우에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안긴 작품으로, 지난해 공연 당시 전석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대중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극단 코끼리만보<말들의 무덤>

사라진 존재들, 흔적을 남기다

“한국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져왔다. 하지만 사실을 보여주는 게 연극은 아니다. 질문을 발전시키는 것,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극장의 일이라고 본다. 사라지는 것은 흔적을 남긴다. 극장에서 한국사의 기억들, 그 흔적들을 보여주려고 한다.”- 김동현 연출가

극단 코끼리만보의 이 세 작품은 애초에 극단을 창단할 때부터 연작으로 기획된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들은 하나같이 한국 근현대사를 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자칫 다큐멘터리 같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근현대사 그 자체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근현대사를 넘어서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는 점에서 각각의 작품은 다큐와는 맥락과 성격을 달리 한다.

김동현 연출가는 다른 장르와 매체들에서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언급하며 “역사에 대한 기억의 방식이 대부분 너무 다큐적”이라고 했다. 김 연출가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기록으로서의 역사보다는 체험으로서의 역사다. 즉, 재현이 아닌 재연에 중점을 두고 무대를 꾸려나간다. 자연스레 극장은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펼치는 한 바탕 굿판이 된다. 여기서 산 자의 도리란 죽은 자의 못다 한 말을 대신하고 또 그걸 들어주는 일이다. 극장이라는 이름의 굿판에서 배우와 관객이 이 역할을 각각 나눠 맡게 된다.

극단 코끼리만보는 이들 작품을 통해 과거의 전쟁터에서, 또 현재의 일상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사라져 가는 기억과 흔적을 발굴해 교차적으로 빚어낸다. 잘 직조된 제의적인 말들이 배우들의 몸을 빌어 극장을 채우고, 이때 과거 누군가가 겪어야 했던 부재의 상태는 마침내 공동체적인 체험을 통해 증명된다.

극단 코끼리만보<먼 데서 오는 여자>

극장만의 기억 방식을 찾아서

극장에서만 생기는 연극성과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오늘도 연습실에서 배우들은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연출가는 <착한 사람 조양규>의 연습 도중 ‘사실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상상력을 발휘해 몸을 움직여라, 관객에게 (상상에 참여할 기회를) 선물해라’ 같은 디렉션을 던졌다. <말들의 무덤>과 함께 이 작품의 연출 포인트는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이 연극의 전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만으로 자연스럽게 관객으로 하여금 역사를 기억하는 데 동참하도록 이끄는 연극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먼 데서 오는 여자>는 기억을 거부해온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드라마적인 구성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앞서 공연되는 두 작품과는 결을 살짝 달리한다. 한 노부부를 통해 한국전쟁부터 최근에 이르는 역사를 기억해내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가까운 길을 일부러 빙 둘러가듯 진행된다. 오늘날의 관객과 너무나 가까이 닿아 있는 이야기라 이면의 기억을 곧바로 들춰내는 게 다소 가혹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아픔까지도 기억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너무 아파 병들어버린 여자와 함께 조심스레 나누는 이야기가 관객을 사유의 시간으로 이끌어낸다.

[사진: 코르코르디움제공 제공]

극단 코끼리만보 포스터

일시
<생각나는 사람> 9월 2일~9월 16일 평일 8시, 주말 4시
<먼 데서 오는 여자> 9월 18일~10월 4일 평일 8시, 주말 4시, 월 쉼
(*9월 29일 4시)
장소
게릴라극장
문의
02-889-3561, 3562

태그 극단 코끼리만보,생각나는 사람,먼 데서 오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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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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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호   2015-08-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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