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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토론의 광장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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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에서 검열 이슈가 불거지기 시작한 2015년, 김재엽 극작가 겸 연출가는 공교롭게도 베를린에서 방문교수로 체류 중이었다. 멀리 타국에 있었지만 시국에 대한 분노는 온라인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시 SNS 글이나 칼럼 기고를 통해 검열사태 타개를 위한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고, 돌아와서는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 참여작 <검열언어의 정치학:두 개의 국민>에 이어 급기야 이번 공연 <생각은 자유>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생각은 자유>는 ‘베를린에서도 한국 사회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던 김 연출가가 당시 그곳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무대 위에 풀어낸 작품이다. 꼼꼼한 기록과 관찰에 장점이 있는 그가 공공극장의 메카 베를린에서 끊임없이 떠올렸고, 또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질문들을 공유할 기회다.
베를린 체류 경험을 토대로 하는 연극은 총 3부작으로 기획 중인데 <생각은 자유>는 그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연극의 제목은 현지에서 접한 민중가요 '생각은 자유다(Die Gedanken sind Frei)'에서 따왔다. 2013년에 올렸던 공연 <알리바이 연대기>에서처럼 ‘재엽’이 주인공이며, 이 밖에도 실제 인물이 실명으로 대거 등장한다.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된 만큼 대본은 마치 길게 쓰여진 일기 혹은 기행문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말 그대로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이 최근 표방하는, 일종의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인 셈이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기행문과도 같은 이 공연은 연극의 형식미 추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대신 표현의 자유, 그리고 공공극장의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함으로써 연극 혹은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에까지 이르게 한다.

세계시민, 이주민, 난민… 한국사회 속 콤플렉스

“우리 안에 있는 갈등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난민, 이주민, 세계시민, 이렇게 세 가지 키워드를 만들어봤어요.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어른 세대는 난민 의식에 시달리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지방에서 서울로, 또 외국으로 이주노동을 겪으면서 이주민 의식에 시달리고 있죠. 또 세계시민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막상 한국에 있을 때는 외국 분들한테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키워드들 사이에서 잘 섞이지 못하고 부대끼고 있다는 관점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본다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어떤 길들이, 타자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관점 같은 것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좀더 상대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공동체, 공공성 같은 부분들을 확립하고 비전을 세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김재엽 연출가

지역 갈등보다 세대간 갈등이 이슈인 시대다. 젊은 세대는 태극기 부대를, 나이 든 세대는 세월호 노란 리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여기에서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지만 세대별로 기억도 감수성도 무척이나 다름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정말 경험이, 기억이 그렇게 무 자르듯 분명하게 세대별로 갈리는 것일까. 김재엽 연출가는 연극 <생각은 자유>를 통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 속 갈등이 사실은 복잡다단한 결을 지니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베를린의 수많은 연극을 보며 국가란 무엇이며 공공극장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하던 ‘재엽’은 우연한 기회에 수십 년 전 독일로 이주한 한국 노동자들과 조우하고 교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로 불리던 그들이 사실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보호를 받은 산업의 역군이 아니라 저마다의 동기로 독일에 건너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일궈낸 다양한 개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선진국의 사고방식과 60~70년대 한국의 사고방식이 공존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재엽’은 한국사회의 현 상태를 발견한다. 마치 거울 속 이미지처럼 다가온 그것은 다름 아닌 세계시민 의식, 이주민 의식, 난민 의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다.

연극 <생각은 자유>는 한국사회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동체 개념에 대한 인식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기서 공동체라 함은 하나의 모호한 덩어리가 아닌, 세밀한 관심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 개개인의 합을 말한다. 내가 속한 공동체 안 개개인의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봄으로부터 상대주의적 관점이 발생할 수 있고, 또 서로 간 ‘생각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다는 취지다.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볼 줄 아는 공동체’라는 개념은 이번 연극 무대에서 광장과 갤러리라는 콘셉트로 가시화된다. 여행 기록을 바탕으로 한 연극인 만큼 일단 무대는 여행 이야기를 전시하는 갤러리로 꾸며지는데, 베를린 체류 당시 수집한 이미지와 지난 1월에 추가로 현지에서 찍어온 이미지가 무대 벽면에 투사해 마치 설치미술 작품 같은 느낌을 자아낼 예정이다. 또한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공간을 관객석 옆쪽까지 넓게 확장해서 씀으로써 갤러리 외에 광장의 느낌 또한 자아내고자 했다. 이미지 자료 외에 그와 관련 멘트나 에피소드 등이 일부 벽면에 투사되어 이화작용이 가능해질 예정이다.

공공극장의 공공성에 대하여

“세금을 내는 시민들, 국민들이 겪고 있는 갈등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장으로서 공공극장의 시스템이 돌아가야 하는데 이제까지의 우리 공공극장을 돌아보면 관료들이 국가주의를 강요했고, 예술가들은 엘리트주의적인 관점에서 공공성을 활용했다고 할까요. 정작 돈을 내고 있는 시민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그 동안 관심이 없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공공극장과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확립이 있어야 검열과 같은 갈등, 범죄들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령 박근혜 정부의 경우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공적인 인간인데 사적인 인간으로 공적인 걸 사유화시키는 사람들이었잖아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이제는 공공극장에 공공성이라는 테두리, 공적인 태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재엽 연출가

연극 <생각은 자유>에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은 바로 공공극장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다. 최근 수년 사이 국공립극장이 표현의 자유, 검열 문제에서 이슈의 중심에 섰던 만큼 민간극장 공연을 통해 국공립극장에 날리는 이번 메시지는 자못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재엽’은 베를린의 공공극장을 방문하고 난 경험을 이 공연에서 상세하게 소개한다. 그간 김재엽 연출가는 기회가 닿는 대로 국공립극장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인 만큼 연극을 통한 정치적인 발언이나 논쟁, 토론을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파해온 바 있다. 그간의 주장이 이번 무대에서도 직간접적으로 전달되는데, 선언적인 말이 아닌 구체적인 예시와 증거들을 가지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좀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이처럼 <생각은 자유>는 검열 시국 이후 예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공공극장은 또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2017년 5월, 검열 사태는 중요한 고비를 넘긴 것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극복의 대상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예술인들의 지난한 투쟁을 거쳐 이제는 검열의 주체들이 응징을 받을 차례가 됐지만 아직은 끝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이뤄지지는 않은 상황이다. 또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이들이 사라진 후에도 예술계에 자기검열이라는 후유증이 남아 창작자들을 괴롭히고 있기도 하다.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직 여럿 남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공립극장의 공공성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다. 오랫동안 간헐적으로 문제제기가 되어왔지만 한번도 제대로 끝까지 논의된 적이 없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국공립극장은 국가권력의 것이 아닌, 국민의 것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국가주의와 엘리트주의, 성과주의를 넘어서서 국공립극장이 추구해야 할 공공성의 구체적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혹여 국민 다수의 의사 혹은 취향이 우선되며 예술가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을 해치는 경우가 생길 우려는 없을까. 극장에서도 광장에서처럼 열린 토론, 끝장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답을 미리 정해놓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나눠야 할 이야기가 예술계에 산적해 있다. <생각은 자유>가 이 같은 토론의 물꼬를 트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일정
5월 23일~6월 17일
장소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평일 8시, 토 3시7시, 일 4시(월 쉼)
* 5.31 문화가 있는 날 3시8시
작·연출
김재엽
출연
강애심, 지춘성, 하성광, 정원조, 이소영, 유종연, 김원정, 박희정, 윤안나, 필립 빈디쉬만
문의
02-708-5001

태그 생각은 자유,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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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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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호   2017-05-2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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