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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갈구하는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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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십대 소년, 마음 터놓을 곳 없는 이십대 ‘소녀’. 그리고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는 중년 남자와 소통을 갈구하는 중년 여자까지. 낯설지 않은 현대인의 자화상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조금은 거리를 둔 채, 그러나 예리한 시선으로 현대사회를 조망하는 작품세계를 펼쳐왔던 김낙형 작가 겸 연출가의 작품이다. 여름의 초입, 연극 <붉은 매미>가 다시 한 번 관객을 만난다.

지난해 게릴라극장에서 극단 76의 40주년 기념공연 중 세 번째 작품으로 초연한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마치 세 가지 단편 소설을 묶어낸 듯한 인상을 주는 연극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각각 다른 세 가지 이야기가 하나의 이미지로 뭉쳐 형상화돼 떠오르는데, 여기에는 또 한 가지 강력한 요인이 뒷받침하고 있다. 바로 연극 전반에 깔려 있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정서가 그것이다. 서울 외곽의 어느 신도시 곳곳, 아파트 공터, 응급실, 패스트 푸드점을 훑으며 작가가 읽어낸 부재(不在)의 감성은 웬만한 짜임새 있는 구조보다 더 단단하게 이야기를 한데 묶어내는 역할을 한다.

고독하고 고립된 현대인의 단면을 연결하다

“무대는 신도시 느낌을 자아내도록 꾸밀 예정이에요. 세 개의 장에서 벤치나 큐빅 등 동일한 대도구를 사용하는데 배치를 다르게 한다든가 해서 서로 다른 의미를 담아낼 계획입니다. 조명도 달라지도록 할 거고요. 극장의 벽면을 활용해 아파트 입구, 병원 근처 공원, 패스트푸드점을 표현해내려 하는데, 장면마다 분명한 구분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도록 구성할 예정입니다.” -김낙형 연출가

<붉은 매미>에는 세상과 관계 맺기에 실패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관계 맺기의 성패는 세상에서 어떤 위치와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지와는 별 관계가 없다. 극 초반에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이 드러난다. 모두가 진정한 의미의 삶에서 배제돼 있기는 마찬가지. 이 같은 사실은 3개의 장이 진행되면서 좀 더 명확해진다.

첫 번째 장에서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옥신각신 하는 ‘남자’와 ‘사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길 하나로 계층이 나뉘어버리는 이곳에서 일반 단지 주민은 맞은편 아파트 단지 앞을 함부로 지나갈 수 없다. ‘남자’와 ‘사내’의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반단지에 사는 ‘남자’의 딸은 길을 돌아오다 다리를 다친다. 어른들의 의미 없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소녀는 피를 흘리며 서 있다. 삭막한 도시 풍경 속에 여러 군상들이 등장하는데 김낙형 연출가가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가운데 소외받고 있는 청소년, 청년의 모습이다.

두 번째 장에서는 소외된 그들, ‘동생’과 ‘누나’가 등장한다. 배가 아파서 응급실에 온 ‘누나’를 기다리는 ‘동생’은 평소의 모습 그대로 이곳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이다. 간호사로 대변되는, 병원의 소위 시스템은 수납을 채근하며 이들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이 가운데 집을 떠나 부유한 ‘여인’에게 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누나’에게 ‘동생’은 불만을 드러낸다. 그러나 소통에 서투른 ‘동생’은 만삭의 몸을 감추기 위해 압박붕대를 감고 있는 ‘누나’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성공을 향해 달려온 ‘남편’과 그가 출장 간 사이 집을 비운 ‘아내’가 등장해 논쟁을 벌인다. ‘남편’은 며칠간 젊은 여자, 청년과 함께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지낸 ‘아내’를 의심하고 비난한다. 출산을 원하는 ‘남편’과 아이 갖기를 거부하는 ‘아내’ 사이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점차 모호해져간다. 이 같은 세 가지 이야기가 장별로 진행되는 동안 일인다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연거푸 등장하면서 장면이 연결되는 대목이 있어 작품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세상이 아닌, 삶을 말하다

“정치, 문화, 경제, 교육 등이 ‘세상의 발전’이라는 화두에 발맞춰 가는데 이러면서 모든 초점이 실용에 맞춰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신자유주의라는 이념도 결국에 그런 것인데, 발전이 화두가 되면서 삶의 의미에 귀 기울이는 공간이 없어졌어요. 발전에 뒤처지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삶은 왜 이렇지’라는 질문을 할 것 같아요. 각자 스케줄대로 살아가면서도 인간이다 보니 결국 ‘삶’이라는 문제를 벗어버릴 수 없잖아요. 개인들의 잘못일 수도 있지만, 달려가는 문명의 속성 때문일 수도 있어요. 문명이 자기만의 생명력을 갖고 통제가 되지 않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어디에 발을 딛고 있든 간에 언제든 무너지고 꺼질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죠. 내가 사는 게 아닌, 마치 유리창에 비친 것 같은 삶이랄까요. 불이 꺼지면 없어지는 허상 같은 것이죠.” -김낙형 연출가

분명한 스토리 라인을 쫓아가기보다는 자기가 선 곳에 발붙이지 못하고 있는 존재들의 불안한 감정 상태에 주목하는 이 연극에서는 말(언어)이 중요한 연극적 도구로 사용된다. 인물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심히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는다. 그 가운데 스토리 자체보다 그 사이사이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감정이 더욱 뚜렷하게 다가온다. 결국 이들은 각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섬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김낙형 연출가는 <붉은 매미>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에 대해 “우리의 마음이 마치 붉은 매미 같은 기괴한 형상의 이미지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속으로는 매미처럼 처절하게 울고 있지만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게 현대인에 대한 김 연출가의 인식이다. 신도시라는 극의 배경은 가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비유로도 읽힌다. 연극 <붉은 매미> 속에서는 어느 정도 자기 자리를 잡고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른들마저도 사실은 권태롭고 의미 없는 생활을 그저 습관적으로 이어나가고 있을 뿐임이 드러난다. 허상뿐인 현대인의 삶이 드러나는 이 연극을 통해 김낙형 연출가는 마치 세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사진: 극단 竹竹 제공]

일정
6월 29일~7월 9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 3시(월 쉼)
장소
대학로 나온씨어터
작·연출
김낙형
출연
김수현, 김성미, 이철은, 이자경, 이창수, 김재민, 소이은
문의
컬쳐루트 010-2809-8123

태그 竹竹, 붉은 매미,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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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nabyeot
제117호   2017-06-0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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