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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친애하는 낯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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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부터 국립극단은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 활동하는 한인작가 5명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한민족 디아스포라전’을 선보이고 있다. 영어권에서 성장한 이민 2, 3세대의 작가들과 한국 연극계의 다섯 명의 젊은 연출이 매칭되어 동시대, 다른 공간에 흩어진 우리의 모습을 포착한다. 이국으로부터 온 퍼즐조각 통해 우리라는 그림의 틈을 채워보는 ‘한민족 디아스포라전’은 7월 23일까지 이어진다. 소개하는 작품은 6월 22일 개막하는 <가지>다.

전채요리: 레이네 이야기

작가 줄리아 조는 LA에서 태어난 교포 2세다. 극작가이자 텔레비전 드라마를 쓴다. 자신의 성장 환경과 경험에 바탕을 둔 작품을 여러 편 썼으며 <가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2016 미국의 Berkeley Repertory Theatre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섬세하고 인상적인 구성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으며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연출은 극단 작은신화의 정승현이 맡았다. 그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항상 관객에게 사랑의 따뜻함을 전하는 연출이 되고 싶다”고 밝혔듯이, 전작인 <청혼>(2009, 서강대 메리홀), <따냐-따냐>(2010, 거창연극제), <롤리타>(2014, 산울림소극장) 등처럼 따뜻한 온기로 <가지>를 채색한다.

<가지>는 재미교포 2세인 레이가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보내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 청년시절 도미한 아버지와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외아들 레이의 직업은 요리사. 하지만 요리를 한지도 맛있는 식사를 해본지도 오래다. 레이의 직업을 두고 ‘요리는 여자들이나, 못 배운 놈들이나 하는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보수적인 아버지와는 그리 다정한 사이가 못된다. 하지만 더 이상 회복 가능성이 없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온 이후, 호스피스 루시앙과 친구 코넬리아와 함께 그의 마지막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레이다.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의식을 잃은 순간에도 항상 낡은 핸드폰을 지니고 다녔다. 20년도 더 된 핸드폰은 한 번도 울린 적이 없지만 배터리는 항상 완충되어 있었다. 연이은 밤샘 간호로 예민해 질대로 예민해진 레이에게 루시앙은 외출을 권한다. 레이는 아버지의 핸드폰을 들고, 과거의 연인 코넬리아를 찾아간다. 찾아간 건 1년 전, 말도 없이 떠나버린 주제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한국말을 제일 잘 하잖아’라고 뻔뻔한 부탁을 하는 레이의 절실함에 공감한 코넬리아가 한국에 있는 아버지의 하나뿐인 동생과 대신 통화 해준다.

메인 요리: 맛으로 순환하는 추억

대부분의 장면에서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가끔 들을 수는 있다. 첫 대사는 공교롭게도 ‘밥 먹었어?’다. 밥, 먹었어? 부모들이 자식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로, 특히 한국인 부모의 끼니 걱정은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레이의 아버지는 예외다. 먹는 것에 만큼은 맛에도 멋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어린 레이를 맥도날드에 데려가 제일 싼 햄버거 두 개와 공짜 케첩을 주며 ‘여기 있다, 빅맥’할 정도니. 그런데 레이가 요리사라니. 이 의외성은 미국으로 날아온 삼촌에 의해 설명된다.
형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영어 한 마디가 어려운 삼촌이 단숨에 미국으로 온다. 삼촌은 느닷없이, 한인 타운에서 사온 살아있는 자라를 부엌에 들여다 놓고, 아무리 조카라지만 처음 보는 레이에게 자라탕을 끓이라고 한다. 할머니를 닮은 그 손맛으로, 미국으로 가는 큰 아들을 붙잡고자 끓인 소고기 무국처럼 맛있는 국으로 형님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게 붙잡자고 호소하면서.

부모 세대와 가장 큰 갈등을 겪는 것은 이민 2세대로 알려져 있다. 이미 부모 세대를 통해 여과된 고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3세대와는 달리, 2세대는 두 발은 여기에 디뎠으나 머리와 마음을 고국에 두고 온 부모 세대에게 저항감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집안에서 보고 배운 가치와 외부의 그것은 너무도 차이가 나서 두 세계 모두에 속하지 못한 채 자아가 공회전하던지, 혹은 완전히 외부 세계로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문화는 전수되는 것이지만 체득보다 강력한 문화적 축적은 없기 때문에, 이민 2세들은 가정 내에서 문화적, 언어적 장벽을 체험하게 된다. 그에 따라 그들의 가치관은 불협하고 살아가는 동안 내내 삐거덕, 삐거덕. 결코 이해하지 못 하는 서로의 한 부분이 파편처럼 남는다. 그러나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기에’ 불완전한 사랑이 끈질기게 서로의 가운데 남아있다. 레이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던 낯선 사람, 아버지와 작별하는 중이다.

디저트: 맛으로 소환하는 추억

<가지>는 40대 미국인 다이앤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한참동안 다이앤은 모습을 감추는 데, 작품의 끝에 이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드라마 씬처럼 24개의 많은 장으로 구성된 <가지>의 중간, 중간 등장인물들의 독백이 다큐멘터리 속 회고처럼 삽입된다. 다이앤, 레이, 루시앙, 코넬리아. 이들 독백의 특징은 모두 ‘음식’과 ‘먹는 일’에 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먹는 것에 관한 자기만의 기억이 있다. 버터에 구운 빵으로 만든 파스트라미 샌드위치, 고기와 야채가 듬뿍 들어간 스튜, 달달한 소고기 뭇국, 먹고 먹어도 줄지 않는 유년시절의 접시처럼. 그 고유하고 특별한 맛의 기억은 사는 동안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난민 출신인 루시앙이 회고하듯이, 한번 가져본 것에 대한 상실과 결핍이야말로 절실하기 때문이다. 미국 공연 당시 일부 한국어 자막을 사용할 정도로, 작품 속 인물들은 다양한 정도의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는데 이를 바꿔 표현한 한국 공연에서는 어눌한 한국어와 유창한 한국어, 어눌한 영어와 유창한 영어의 곡예를 보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왜 <가지>인가? 영어로 가지는 에그플랜트(eggplant)로 주로 불리지만, 작품의 제목은 ‘Aubergine'을 쓰고 있다. 난민출신 루시앙의 고향에선 가지를 그렇게 부르는데, 미국 가지와 맛도 모양도 다르다. 고향 식으로 부르면 훨씬 맛도 좋게 느껴진다며, 레이에게도 부르길 권하는 이름이다. 다르게 부름으로서 소환되는 맛과 추억을 레이는 루시앙으로부터 배운다. <가지>는 음식을 소재로 만남과 헤어짐, 공감과 이해를 이야기 한다. 아버지를 통해, 삼촌을 통해, 아들을 통해, 요리사를 통해 맛의 기억이 소환될 때, 조각났던 이들 사이의 파편이 짝을 찾는다. 그 과정 안에, 불완전하고 또 완벽한 사랑이 있다.

[사진: (재)국립극단 제공]

일정
6월 22일~7월 2일 평일 7시반, 주말 3시(화 쉼)
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줄리아 조(Julia Cho)
연출
정승현
출연
김재건 김정호 신안진 김광덕 김종태 이현주 우정원
문의
1644-2003

태그 국립극단 가지, 허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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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균

허영균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공연 창작 작업과 함께 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다.
byebanana26@gmail.com
제118호   2017-06-2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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