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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밍하는 사회에 질문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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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어느 날 일본 와세다대학 동아리 ‘탐험부’의 학생들은 파키스탄 인더스 강으로 여행을 떠난다. 걸프전쟁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당시였지만 학생들은 모험이라는 가치를 포기할 수 없어 인더스 강 지역으로 카누 여행을 강행한다. 현지 도착 직후 동아리 팀장은 그만두자고 제안하지만 팀원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혼자 귀국한다. 남은 세 명의 학생들은 강에서 카누를 타다가 다코이트(산적)들에게 납치를 당한다.

연극 <그들의 적>은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세 학생이 실제로 겪었던 납치 사건을 기본바탕으로 하되 그 이후 이들의 삶을 상상해 무대화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강하지는 않다. ‘탐험부’는 ‘프론티어 보트클럽’으로, 동아리 팀장은 등장하지 않는 식으로 일부 바뀌는 등 실화를 일부 각색하고 사건 그 이후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작가가 상상해 쓴 대목이 주를 이루는 작품이다. 작가 세토야마 미사키의 대본은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국가의 국민 보호 의무와 더불어 개인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끈질기게 던진다. 이 점을 인정받아 2016년 요미우리 연극대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극은 44일 간의 납치를 겪고 나서 귀국한 뒤 완전히 달라진 이들의 삶에 특히 주목한다. 생존자 중 한 명인 사카모토는 시간이 흘러 주간지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다. 납치에서 풀려나 귀국한 이후 언론의 취재 경쟁에 따른 오보 양산과 그에 따른 세간의 비난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파파라치성 사진들을 찍고 있다. 납치 사건 이후 모험가라는 원래의 꿈을 잃고 난 뒤 자신을 프레이밍(framing) 하던 언론들에 대한 트라우마를 왜곡된 방식으로 해소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본인이 찍는 사진으로 심각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자 사진을 지켜내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 사카모토는 ‘숲에서 나가는 출구는 틀렸지만, 여행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며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언론의 프레이밍을 고발하다

“<그들의 적>을 무대화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바로 이 프레임이이에요. 대중이 언론이 설정한 바로 그 프레임 안에서 정보를 확인하고 공유하듯이, <그들의 적>을 보는 관객들 또한 이미 설정된 프레임 안에서 장면을 지켜보고 상황을 인식하게 되죠. ‘귀국 후’ 장면 이후 모니터라는 프레임 안에서 보여지는 언론의 과잉보도와 무대 위 배우를 통해서 전달되는 프레이밍 된 정보들 속에서 관객들은 어떤 인식과 가치판단을 내릴지 기대해보려 합니다.” -마두영 연출가

연극 <그들의 적>을 준비하는 주체인 디렉터그42는 연출가 마두영, 번역가 겸 드라마터그 이홍이, 마정화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이다. 두 명의 번역가 겸 드라마터그가 매년 번갈아 작품을 제안해 한 명당 총 21편, 최종 42편을 올리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디렉터그42의 공연을 보고 끌리는 다른 창작자가 있다면 저작권을 해결해 공연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좋은 해외작품을 국내에 두루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해에는 마정화가 번역하고 드라마터그 역할을 한 <상처투성이 운동장>을 공연했고 올해는 개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받은 상처와 피해 및 그 이후 개인의 삶에 주목하는 작품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고, 여러 작품을 보던 중 <그들의 적>을 선택하게 됐다.

마두영 연출가가 이번 공연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힘주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프레이밍이다.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진행된 일본 초연공연의 경우 무대 상수에는 피랍 당시의 모습, 하수에는 그 이후의 모습을 담고, 무대바닥 중간 부분엔 둥근 원을 형상화했다. 이와 비교할 때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원이 주는 상징성을 살리되 소규모 원형회전무대로 장면 전환에 재미를 주고, 명확한 공간 구분을 하는 대신 벽면에 설치된 여러 대 모니터에 당시 화면들을 편집해 송출하면서 차별화를 꾀할 예정이다. 계속해서 프레이밍을 짜며 사실을 왜곡하는 당시 언론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지고, 이 모습이 또 무대 위 인물들과 겹쳐지게 함으로써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집요하게 파헤친다는 계획이다.

누구나 ‘그들’과 ‘적’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사자가 아닐 때는 언론이 유포한 정보들만 보고 그 개인을 판단할 때는 ‘그들’이 될 수 있고 또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어느 순간 내가 ‘적’이 돼 있을 수 있잖아요. 최근에는 240번 버스 사건을 보면서 이 작품에 대해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내 일이 아닐 때는 너무 쉽게 ‘그들’이 됐다가 정작 내 일이 됐을 때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이유로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에요. 이 작품 안에서도 세 명의 학생들이 당시엔 우범지역이 아니던 곳에 사전에 충분히 리서치하고 카누 여행을 간 건데 납치된 것일 뿐이에요. 그런데 그 사건이 이렇게 전국민적인 욕을 먹게 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던 것처럼 누구나 ‘그들’과 ‘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두영 연출가

이 작품은 언론의 프레이밍이나 개인의 일탈 문제에 대한 국가의 올바른 대응 같은 주제들에 대해 명확한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지는 않다. 다만 누구든 가해자인 ‘그들’이 될 수 있고, 누구든 피해자인 ‘그들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해 판단들을 내릴 때 다시 한 번 곱씹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은연중에 강조한다. 수많은 언론들을 통해 각양각색의 정보가 쏟아지는 요즘 모든 것을 너무 쉽게 믿고 누군가를 너무 쉽게 재단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겠냐는 게 이번 공연의 주요 메시지가 될 예정이다.

마두영 연출가는 “작품이 끝날 때쯤 이 사람이 한 단계 성장했다기보다 그 동안 짊어졌던 짐을 좀 내려놓는다는 지점이 좋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뭘 해봐야겠다는 계획 말고 뭘 안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도 되지 않겠느냐’는 극 중 대사가 자못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고도 했다. 정답을 내리지는 않지만 국가는 국민을 어디까지 보호해줄 수 있는지, 언론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는지,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지, 개인의 잘못을 다수의 대중들이 심판하는 것은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지, 언론의 잘못된 방향 제시로 인해 대중은 얼마만큼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 경험하고도 그런 사회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이 정말 잘못된 건지, 또는 개인이 그런 부조리를 바꿀 수 있는지 등 생각이 갈릴 수 있는 수많은 질문들을 다른 누가 아닌 스스로에게 던지도록 하는 작품이 될 예정이다.

[사진: (c)이상홍]

일시
12월 8~24일 평일 8시, 주말 4시, 월쉼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세토야마 미사키
연출
마두영
번역/드라마터그
이홍이
출연
박용우, 백종승, 이동혁, 강희제, 김희연, 이형훈
문의
010-3543-5890

태그 그들의 적,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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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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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호   2017-12-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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