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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같이, 항상 설레는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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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것은 어쩌면 참 피곤한 일. 평정을 유지할 수 없고, 어딘지 마음 한쪽이 부풀거나 기울어진 상태. 그러다 설렘의 리듬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함께 와르르 부서져 내리는 것들도 많지요. 설렘을 감당하기 싫어서, 그 고된 마음이 견디기 힘들어서,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설렘을 피해 다른 길로 멀리 돌아가기도 하고요. 어떤 나라에서는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고도 한다지만, 피할 수 있을 때 피하는 것도 행복의 한 방법일지 몰라요.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도 있죠. 교통사고가 아니라 자연재해인 설렘. 의지만으로 조절할 수 없는 설렘 같은 것이요. 그런 순간들을 곰곰이 떠올리다보니, 문득 생애 가장 설레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싶어요. 그건 ‘아마도 그때’ 전혀 기억나지 않아도 그때. 어머니라는 난관을 뚫고 삶으로 쏟아져 나온 그때가 아닐까. 탄생은 앞으로 있을 무수한 만남을 예고하는 사건 같아요. 그리고 가장 처음 ‘그들’을 만나게 되죠. 탄생 전에 이미 만났던 그들을.

지금까지 ‘가족’이라는 단어의 긴 소개였습니다. 네, 너무 길었나요. 연극 <지금도 가슴 설렌다>를 잘 소개해보려 말이죠. ‘가족에 대한 작품입니다.’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역시 하게 되네요. 연극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가족에 관한 작품입니다. 이해하기 쉬운 만큼, 공감하기 어려운 가족의 이야기를, 이 세상의 ‘가족의 일부’들에게 전하는 작품이요. 남산예술센터의 희곡 발굴 프로그램인 ‘초고를 부탁해’로 선정된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17세 소녀 달리의 성장통을 이야기의 기둥으로 삼고 있어요. 현대의 가족은 뿌리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각각의 줄기와 기둥이 되어 이뤄진 나무가 아닐까요. 달리네 일곱 식구도 그렇습니다.

 

구정을 앞두고 70대 노부부 순자와 태윤의 세 아들과 가족들이 집에 모입니다. 큰며느리 은희는 남편의 외도를 끊임없이 의심하지만, 그런 남편을 감싸는 시댁에 불만이 쌓여있어요. 은희는 손녀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적게 받는다고 생각하는 17살 달리를 애지중지 합니다. 바람을 피워 이혼한 둘째 영현은 자주 볼 수 없는 자식들이 언제나 걱정스럽고요. 셋째 아들네는 몸이 성치 않은 아들 효성이 뒷바라지에 심신이 지쳐있어요. 어른은 어른대로, 또 아이는 아이대로 힘듭니다. 달리는 짝사랑에게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하여 고백하려 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고, 성적은 엉망. 부모님과 크고 작은 다툼을 반복하며 힘겹게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어요. 그러던 중, 순자가 가족들과 상의 없이 집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태윤을 요양원에 보내라고 선언합니다. 이 갑작스런 선언에 가족들은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드러내며, 심하게 다투게 돼요.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심하게 흔들립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표면에 상처를 내기 시작하죠. 까지고 벗겨지는 껍질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달리는 집을 나가고, 할아버지 태윤은 손녀 달리를 찾아 집을 나섭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아직 모든 게 미숙하고 서툴러서 사람을 보는 시선도, 세상을 이해하는 정도도 좀 더 깊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20대 초반에 계속 연극을 봤어요. 연극을 보니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었어요. 저는 가족에게서 멀어지고 싶었지만, 돌아가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나와 가장 가까이 관계 맺던 사람들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 내가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 첫 번째는 가족일 거라 생각했고, 좀 더 성숙한 눈으로 내 가족을 바라보길 원했어요.” -작가 이혜빈

 


태윤과 달리, 두 사람은 시간이라는 태풍의 소용돌이에 유실된 기억의 조각조각을 함께 주워요. 일부는 마모되고, 사라졌지만 조각을 이어붙이니 설레던 일들이 다시 눈앞에 그려집니다. 도자기의 세계에서는 한번 부서졌던 자기를 다시 이어 붙이는 기술을, 새로운 도자기를 굽는 기술보다 더 높이 친다고 해요. 그리고 그렇게 재건된 도자기는 처음의 그것보다 훨씬 강하다고 하고요. 어쩌면 부서져도 이어붙일 수 있을 거란 믿음, 그리고 그 ‘다시’를 통해 더 튼튼해질 거라는 믿음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설렘이 아닐까요. 러브레터를 쓰는 마음으로 희곡을 썼다는 작가의 마음은 뮤지션 최미루, 정자연, 홍예진의 연주와 노래에 실려 객석에 배송될 예정입니다. 두근두근.

 

[사진: 극단 이루 제공]

일시
12월 20일~2018년 1월 14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 4시(화, 1월1일 쉼)
장소
선돌극장
이혜빈
연출
손기호
출연
구자승, 조주현, 최정화, 나종민, 장하란, 하지웅, 김하지, 이세영, 이랑
문의
02-747-3226

태그 지금도 가슴 설렌다, 허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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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균

허영균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공연 창작 작업과 함께 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다.
byebanana26@gmail.com
제129호   2017-12-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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