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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괴물로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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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는 유명한 이야기는 알고 보면 축약된 버전인 경우가 많다. 잘 각색된 대중적인 작품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원작이 묻히는 사례다.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널리 알려지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원작이 품고 있는 풍성한 의미와 다채로운 결이 잊혀지는 건 아쉬운 일이다. 극단 여행자가 연극 무대에서 간간이 선보여온 명작 시리즈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이대웅 연출가가 이끄는 여행자는 <더 정글북>, <보물섬> 등의 작품을 통해 원작만의 특별한 결을 찾아 살려내고 자신들의 해석을 덧입히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미녀와 야수> 역시 이 같은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1756년 잔 마리 르프랭스 드 보몽이 쓴 동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진짜 오리지널은 그로부터 16년 더 거슬러 올라간 1740년에 가브리엘 수잔 바르보 드 빌레느브가 쓴 동명 작품이다. 즉 보몽의 동화는 빌레느브가 쓴 장편소설의 요약판인 셈이다. 연극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걸 목표로 삼는 극단 여행자는 <미녀와 야수>를 만들면서 빌레느브의 장편소설을 개작의 대상으로 삼았다. 특이한 점은 영어 제목 속 Beauty와 Beast 사이에 and가 아닌 end를 넣어 자신들만의 독특한 해석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이 연극은 아름다움(Beauty)과 추한 것(Beast)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그 둘의 관계에 대해 파헤쳐 나가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자기혐오와 편견으로 빚어진 괴물

“보통 <Beauty and The Beast>를 <미녀와 야수>로 번역하죠. 맞는 번역이긴 한데 그 안에 사실좀 더 큰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생각해요. 미와 추의 개념 같은 것 말이죠. 저희는 <Beauty end The Beast>라고 영어제목을 살짝 바꿔봤는데, 추상적인 아름다움이 비스트(괴물)를 종결시키는 구조로 만들었어요. 원작을 토대로 어떤 이야기를 더 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 과연 괴물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자갈퀴를 덮어쓴 괴물일까 등을 스태프들과 함께 생각해봤습니다. 21세기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사람인데 마음이 괴물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자기혐오나 편견, 그런 것들이 결국 요즘 세상의 괴물이 아닐까요.” -이대웅 연출가

이번 공연은 강동아트센터 초연 이후 올라가는 재공연이다. 초연 때 관객들로부터 ‘생각 외의 이야기다, 신선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냈다. 18세기에 쓰여진 원작은 이대웅 연출가의 말을 빌리자면 ‘거의 해리포터 급의 판타지’를 담고 있다. 요정들이 등장하고 여자 주인공 벨의 탄생 과정과 그 속에 숨겨진 비화가 나오는 원작을 두고 1시간 40분 가량으로 무대 위에 압축했다. 그러면서도 원작에 숨겨진 핵심적 이야기와 구조는 살리려 노력했다. 총 2막으로 구성된 이 연극은 사악한 요정이 벨의 어머니를 질투한 나머지 벌이는 악행들, 벨과 야수가 서로를 오해하다 교감하는 과정 등을 빠른 속도로 담아낸다.

미녀인 벨과 야수의 외모를 한 왕자이지만 이대웅 연출가와 극단 여행자는 원작을 파헤친 결과 사실은 겉보기와 다르게 내면을 보면 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견을 품고 있던 괴물이고, 왕자는 정직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지만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일종의 훼손된 아름다움이다. 극단은 이 둘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마법이 풀린다는 개념으로 공연을 펼쳐나간다. 추함은 텍스트를 동시대의 눈으로 해석한 결과 편견과 자기혐오로 풀었고, 아름다움은 벨이라는 이름 글자에서 착안해 용기(brave), 우아함(elegance), 사랑(love), 좋아함(like) 등의 키워드 아래 찬찬히 풀어나가는 식이다.

아름다움이 추함을 끝낼 수 있다

“21세기적인 추함, Beast는 무엇일까요? 저희는 다름 아닌 자기혐오 혹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 갖는 편견이 아닐까 싶었어요. 이런 생각들이 결국 괴물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관객들이 아름다움이란 것에 대해서도 꼭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계속해서 비인간적으로 흘러가는 현대의 풍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결국은 인간다운 것에서 나온다고 보는데, 그게 바로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관객들이 이런 부분들을 꼭 느끼고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이대웅 연출가

이대웅 연출가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다시 바라보게 하기 위해” 연극을 만든다고 말했다. 그런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힘이 다른 매체보다 연극에 더 강하게 있다는 게 이 연출가의 생각이다. 이번 작품에서 관객이 다른 시각을 갖도록 자극할 핵심적 요소는 장미나무다. 야수가 벨을 떠나보낸 후 종국에 변해가는 형상이 바로 장미나무인데, 극단 여행자는 이 극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의 정수를 생명력 있는 식물로써 표현해낸 셈이다. 사악한 요정의 마법에 걸려버린 왕자의 성에서 원숭이, 새, 팬더, 장작나무, 나무늘보 등으로 표현되는 여타의 하인들의 모습과도 대비가 되는 대목이다.

캐스팅의 경우 야수가 되어버린 왕자 한 명 외에 모두 여자배우들로 이뤄졌다. 자연스레 무대 위 움직임은 여자 배우들의 특성과 장기를 살리고자 근력을 적극 활용하는 쪽보다는 부드럽게 흘러가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소녀의 방처럼 꾸며진 무대에서 시작했던 초연 당시 공연과 달리 인트로 설정을 일부 바꾸기도 했지만 배우들이 오브제를 적극 활용해 움직이면서 상상의 공간을 창조해나가는 초연 때 방식은 그대로 고수할 예정이다.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하얀 가구들로 구성된 오브제들이 계속 변화되면서 이야기를 스펙터클하게 열어나가는 식이다. 특히 마법의 성이라는 공간의 느낌을 살리고자 문이 계속 이동할 예정인데 이 이동식 문을 담당하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연극적 묘미를 한껏 더할 것으로 보인다.

한바탕 꿈같기도 한 동시에 현실세계에 대한 강렬한 비유처럼 다가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 <미녀와 야수>는 이번 공연에 그치지 않고 이후 한국적 색깔을 한껏 살린 동양판 미녀와 야수 제작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엔 한국적으로 적극 해석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예정인 만큼 원작소설에서 비롯된 고유한 특징과 숨겨진 이야기를 극단 여행자를 통해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극단 여행자 제공]

일시
12월 25~30일, 평일 8시, 주말 3시
장소
여행자극장
원작
가브리엘 수잔 바르보 드 빌레느브
재구성
황정은
연출
이대웅
드라마터그
허영균
출연
김도완, 박정민, 정수영, 권은혜, 박미영, 김수정, 박현지
문의
070-7918-9077

태그 여행자, 미녀와 야수,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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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nabyeot
제130호   2017-12-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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