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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Stratford-upon-Avon time in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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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의 식탁>

고전은 지루하지 않다. ‘고전’이라는 말이 지루할 뿐. 어떤 흥미로운 책이라도 ‘반드시 읽어야할 고전’ 등의 수식어가 붙어있으면, 슬그머니 내려놓는 사람이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 어린 아이였을 때, 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독서는 고전이었다. 100권쯤 줄 세워진 오래된 책의 높고 가파른 계단. 이 100개의 계단을 오르지 못하면, 그 너머의 세상은 넘볼 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전을 두고 다른 책을 읽는 것은 정해진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뒷길이나 어슬렁거리는 일로 생각될 정도였으니. 그러나 나는 샛길, 뒷길, 개구멍이 좋은 아이. 여느 날처럼 골목을 산책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가 읽는 지금 그 책도 언젠간 고전이 될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냥 아무거나 읽어.”

이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읽을 거리 선택에 있어 평생의 자유를 얻었다. 샛길, 뒷길, 개구멍을 두루두루 들쑤시다보니 금세 어른이 되었다. 이윽고 어떤 문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 문을 열자 100개의 계단이 보였다. 마침내 높고 가파른 100개의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야만 할 때가 온 것이다.
한 시대, 하나의 정신이 쌓은 주춧돌을 등산하듯 오르는 일은 힘들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누적된 산책의 경험 덕분일 것이지만. 계단 오르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때로는 책으로, 영화로, 연극으로 도움닫기 하면서.

고전이라 이름 붙은 것들은 창작자들에게 ‘오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새롭게 읽기’라거나 ‘다시 읽기’라는 동일한 목표를 세운 영화와 연극을 수 없이 보았지만, 하늘 아래 같은 사람 없듯이, 똑같은 재창작 영화도, 연극도 기억하는 한은 없다. 같은 원작을 둔 연극들을 얼마든지 기대하며 볼 수 있는 이유다.

“소설, 연극으로 읽다”는 타이틀로 2013년부터 시작된 <산울림 고전극장>은 젊은 창작자들로 하여금 고전의 재해석에 도전하게 하고, 관객에게는 또 다시 새로운 발견을 기대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100권의 책을 쌓는다는 목표로 매해 약 5편씩 총 23편의 고전소설을 무대화했던 <산울림 고전극장>이 이름에 걸맞게 선택한 주제는 셰익스피어다.

<오셀로의 식탁>

1월 17일부터 4월 1일까지, <오셀로의 식탁>, <소네트>, <5필리어>,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 <줄리엣과 줄리엣>라는 이름으로 다섯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산울림 고전극장>의 올해만의 특징은 이전 해보다 다양한 형식과 주제로 각색과 재창작을 시도했다는 점일 것이다.
오성택 연출의 <오셀로의 식탁>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로 오셀로를 풀어냈다.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폭력을 헤롤드 핀터의 연극 메서드에 결합하여 무대화 했다.
희소성 면에서 주목되는 한상웅 연출의 <소네트>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정형시 가운데 ‘사랑’을 주제로 남긴 154편의 소네트를 재구성했다. 짝사랑의 고통, 인간의 필멸, 시의 영원성은 대사와 노래로 변주되어, 한편의 서정적인 음악극으로 탄생한다.
김준삼 연출의 <5필리어>는 햄릿의 등장인물인 오필리어를 소재로 우리 시대의 오필리어는 누구인가 질문하는 작품이다. 사회적 약자로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무대화 했던 이전 작업의 연장선상으로, 2018년 대한민국에서 젊은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겪는 고통을 그려낸다.
김민경 연출의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은 리드미컬한 제목이 인상적이다. 셰익스피어가 사고하기보다는 행동을 우선시 했던 야만적인 덴마크 인들을 <햄릿> 안에 그렸다는 생각에서 착안해서 만든 작품이다. 행동이 앞서는 덴마크인과 대조되는 인물로 사유하는 햄릿을 창조한 것처럼,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은 살아남기 위해 생각하기를 포기해버린 우리 사회를 재조명 한다.
마지막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퀴어적 상상력으로 재창작한 이기쁨 연출의 <줄리엣과 줄리엣>이다. 줄리엣 몬테규와 줄리엣 캐플릿의 사랑을 통해, 사랑은 평등하며 사랑은 이긴다는 것을 말하는 작품이다.

고전이라는 이름의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앞으로 몇 번의 셰익스피어를 조우하게 될까?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영원한 고전인 동시에 영원한 신작이다. 에이번의 셰익스피어는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모든 곳에서 영원히 살아간다. 그가 다시 한 번 새 생명을 얻는 곳, 2018년 겨울의 산울림 소극장이 마련한 ‘새로운 고전읽기’를 통해 나와 누군가의 100개 계단 오르기는 한결 수월해진다.

[사진: 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일시
1월 17일~4월 1일, 평일 8시, 주말 3시, 화 쉼
장소
소극장 산울림
문의
02-334-5915

태그 셰익스피어를 만나다, 허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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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균

허영균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공연 창작 작업과 함께 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다.
byebanana26@gmail.com
제132호   2018-01-2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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