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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체홉, 들으며 생성되는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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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프로젝트”는 공연을 본 관객들이 책을 읽은 듯, 음악회를 감상한 듯 삶의 환기가 되었으면 하는 프로젝트다. 한 편의 책읽기가 주는 힘을 믿으며, 그것을 무대 위에서 배우를 통해 관객과 나누고자 한다. 프로젝트의 첫 작품은 안톤 체홉의 단편을 무대화한 <A. 체홉: 말:하다 듣다>이다. 장소는 혜화동 1번지, 2월 12일부터 같은 달 15일까지다. 다섯 편의 체홉 단편 소설 <카멜레온>, <귀여운 여인>, <아뉴타>, <아내>, <상자 속의 사나이>가 각각 배우 한 사람의 모노드라마로 펼쳐진다.

말하다

흔히 ‘화술’이라 부르는 배우의 말하기 능력은 배우의 기량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연극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극장이 있기 이전에 이미 배우의 말하기가 있었으므로, 연극이란 어쩌면 배우의 말 위에 세운 극장인지도 모른다. 여기 다섯 편의 연극은 다섯 명의 배우를 통해, 극작가 체홉의 단편 소설을 연극으로 다시 세운다. 배우들은 말로서 배경을, 상대 배우를, 그 시대를 그려내고자 부단히 붓을 움직인다.
체홉의 단편 소설은 문학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러시아 문학이 이전에 일구어 왔고, 또 추구해왔던 존재의 본질 탐구, 인간 영혼의 심층에 다다르고자 하는 치열함, 깊이 있는 사상의 추구 등과는 다른 결로 흐른 것이 이유일까. 그러나 <A. 체홉: 말:하다 듣다>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존재의 본질보다는 존재의 상태를, 영혼의 심층보다는 인간이 놓인 상황을, 사상의 추구보다는 그들의 길지 않은 하루를, 삶의 언저리를 들여다본다. 바로 그런 점이, 오늘의 관객으로 하여금, 체홉의 단편 소설에 눈과 귀를 열게 한다.

듣다

민유리 배우의 <귀여운 여인>은 ‘사랑해야 사는 여자’ 올렌카 이야기다. 올렌카는 한 평생 누군가를 사랑해왔다. 사랑은 올렌카의 영원한 에너지다. 그녀의 삶을 무너뜨린 것은 사랑의 부재이며, 그녀의 삶을 다시 일으키는 것도 사랑의 도래다. 체홉에게 올렌카는 왜 귀여운 여인인 것일까? 이것이 헌사인지, 험담인지는 보는 이들마다의 해석이다. 만일 러시아어를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귀여운 여인>을 비롯하여, 작품마다 체홉이 숨겨놓은 의미를 더 선명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윤선우 배우가 연기하는 <아뉴타>. 아뉴타는 극중 인물의 이름이다. 주인공인 의과대학생 스테판 클로치코프의 연인이다. 스테판은 제 할 일에만 빠져 자신을 사랑하는 아뉴타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 게다가 희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일반적으로 복잡한 체계를 띈 러시아식 이름을 생각해 봤을 때, 아뉴타라는 이름에도 특별한 의미와 정서가 있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공연장에서 만날 배우나 연출께 그 뜻을 배울 수 있길 기대해본다. (부탁드립니다.)

보다

정해연 배우의 <아내>, 황위재 배우의 <카멜레온>, 최용진 배우의 <상자 속의 사나이>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체홉의 단편들이다. 일상성의 다양한 변주, 개체 간의 소외, 의사소통의 단절이라는 체홉의 작품을 구성하는 주된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아내>에서는 남편의 눈으로 바라본 아내의 이중생활이, <카멜레온>은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꿔대는 경찰이, <상자 속의 사나이>는 자신의 기준에만 함몰된 사나이 벨리코프가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가장 모순된 관계를 형성한다. 이들과 외부 세계와의 관계는 교류가 아니라 교환이며, 그마저 몇몇은 교환에도 실패하는 일방통행일 뿐. 체홉의 작품의 유머는 이 교환 방식의 구경꾼에게 수여되는 허탈한 웃음이다. 그렇기에 웃음 뒤에는 차가운 공기가 남는다.

말로서 소설을 연극으로 세운 다섯 편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눈과 귀도 끝없이 무언가를 그리고 상상하게 될 것이다. 웃음의 온도는 낮을지라도, 다섯 배우의 모노드라마는 분명 짧은 축제를 경험하는 기분일 것이다.

[사진: 극단 창세 제공]

일시
2월 12~15일, 평일 8시, 공휴일 3시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원작
안톤 체홉
연출
김혜진
출연
최용진, 정해연, 황위재, 윤선우, 민유리
문의
010-4477-2473

태그 극단 창세, 체홉, 허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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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균

허영균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공연 창작 작업과 함께 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다.
byebanana26@gmail.com
제133호   2018-02-0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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