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단막의 단맛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10분짜리 희곡을 한데 모아 희곡집을 낸다. 그렇게 책장에 쌓인 희곡이 오늘로 백하고 세 편이다. 쪼르륵 줄지어 꽂힌 네 권의 희곡집 책등은 유달리 단단하다. 그 속에 꼽꼽하게 응집된 이야기가 틈을 주지 않고 파닥인다. 10분은 짧지만 거대한 조건이다. 이 조건은 10분짜리 이야기 대부분을 단막극으로 유도한다. 15분, 10분, 아니 29초까지. 현존하는 여러 형태의 짧은 이야기들은 단막극을 조상으로 한다. 해럴드 핀터, 안톤 체호프, 스트린드베리, 버나드 쇼, 존 밀링턴 씽, 유진 오닐, 사무엘 베케트는 인상적인 단막극을 남긴 작가의 이름이기도 하다. 
극장 서촌서로에서 단막극장이 열린다. 주제인 ‘우리서로각자서로’는 ‘관계성’에 관한 연극 세 편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작가와 연출을 모두 맡은 이양구, 김효진, 김가람 세 사람이 초겨울 극장을 채운다. 
<소꿉놀이>
이양구 작, 연출가의 <말없이>로 시작이다. <말없이>는 발달장애가 있는 중학생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여인이, ‘말없이’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온 어떤 여인이, 말없이는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서 겪는 어려움을 그린다. 이양구 작, 연출가는 짧은 순간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삶의 반짝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은 마음으로 <말없이>를 준비했다. 그에게 단막극은 긴 이야기로 흡수될 수 없는 이야기로, 단막극을 모은다고 해서 장막극이 될 수는 없다는 그의 생각이다. 
이어서 ‘응용연극단체 문’의 <소꿉놀이>이다. 출산 이후에 시작되는 여성 몸의 변화를 보여줄 <소꿉놀이>는 김효진 연출이 해왔던 표현 형식으로서 몸에 관한 탐구를 이어간다. 응용연극단체 문이 추구하는 순환구조의 공동창작방식은 다른 면에서 이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특정 대상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과정에서 실재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것을 워크숍을 통해 발전시켜 작품을 창작하는 방식이 <소꿉놀이>에도 적용된다. 이 작품은 30대 여성 공연 창작자들이 모여,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고, 그러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나’를 작품에 투영해 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마지막은 창작집단 ‘B.로소’의 대표 김가람이 연출하는 <그 하루의 꽃>이다.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에게 감사와 사랑을 담아 전하는 ‘꽃’을 통해 우리가 진정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는 연극이다. <그 하루의 꽃>에는 동성애자와 쌍둥이의 다툼, 이혼을 앞둔 부부의 마지막 만남, 비정규직 간호인과 부자 고용인의 논쟁이라는 세 에피소드가 있다. 이 세 이야기는 꽃을 매개로 하나로 엮인다. 소통의 도구로 쓰이는 꽃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소통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말없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세계의 주인이지만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자기의 세계를 전부 탐험하지 못한다. 그러니 타인의 세계는 더욱 미지의 영역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자신의 세계는 타인의 그것과 공집합을 이룰 때 보다 세밀하게 관찰된다. 세계와 세계의 짧은 접촉은 각자를 도리어 분명하게 비추어 주기 때문에, 자신을 알고자 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접촉을 원한다. 그 일시적 공유지에 ‘우리 서로’의 이야기가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길고 넓은 개인의 세계, 개인의 이야기 속에 스쳐 지나쳐버리기 쉬운 이야기를 단막극은 포착한다. 덕분에 그 번뜩이는 잠깐들이 연극에 머문다. 몇몇 세계의 짧은 공존, 좁은 공집합이 단막극이 아닐까. 잠깐을 함께 목격하게 하는 단막극을 통해, 다시 이 세계를 일일이 바라본다.

[사진: 서촌공간 서로 제공]

일시

<말없이> 10월 25일~11월 4일

<소꿉놀이> 11월 8~11일

<그 하루의 꽃> 11월 15~18일

장소
서촌공간 서로
문의
010-3543-5890

태그 허영균,단막의단맛,우리서로각자서로

목록보기

허영균

허영균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공연 창작 작업과 함께 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다.
byebanana26@gmail.com
제150호   2018-10-25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