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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밖도 아닌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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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의 시대
꿈이라는 단어는 행복으로, 행복은 다시 작고 소소한 것으로 대체된다. 요즘 세상 이야기다. 미래는 아득하고, 현실은 어둑하니 꿈이란 무겁기만 한 것. 그럼에도 용기 있게 꿈을 들어 올린 자에게 현실을 파악하라는 다그침이 돌아오는 시대, 바로 지금이다. 모든 것을 절반씩 포기해야 살아갈 수 있는 듯 완전함 따위는 없다. 완전함을 기대할 수 없으니 안정감 또한 없다. 꿈이란 단어도, 현실이라는 단어도 피로하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포기하면 편하다’고. 이 시대를 들어 올리는 새로운 명언이다.
선 위에 선긋기
꿈과 현실이라는 점을 찍고, 그 사이에 선을 그은 다음 그 선 위에서 외줄 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연극 <선긋기>가 있다. 남사당패의 유일한 후계자이지만, 줄타기를 포기하고 회사에 취직하여 대리 승진만을 목표로 삼은 주인공 이섭과 여전히 줄 위에서 살아가는 애인 송이를 통해, 세대 보편의 문제를 이 시대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스케치한다.
“꿈을 쫓고자하면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현실을 잡고자 하면 놓았던 꿈이 스멀거리며 현실의 발목을 잡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꿈과 현실, 두 가지를 포기하지 못하고 꿈과 현실, 그 두 사이에 선을 긋고 외줄을 타듯 아슬아슬하게, 언제 떨어질까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극단 전원 <선긋기>
줄타기를 소재로 한만큼 무대는 줄(선)로 빼곡하다. 이 줄들은 무대를 거미줄처럼 감싸고, 나가지도 머무르지도 못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다가 마치 현악기의 줄처럼, 청각적인 요소로 변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전통놀이나 마술, 환영 등의 역동적이고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네 명의 배우 외에도 여덟 명의 코러스가 등장한다. 코러스는 앞서 말한 역동적인 퍼포먼스, 시청각적 무대를 구현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이섭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 동시에 스승, 상사, 친구, 선생의 입을 빌려 사회에서 쏟아지는 각종 모순과 판단을 실어 나르는 음성이기도 하다.
포기하거나, 포기 당하거나
작품 속 주인공들이 보유한 재주는 ‘어름산 놀이’ 혹은 ‘어름 줄타기’라 불리는 것으로, 실제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9호에 오른 전통 연희이다.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음에도 우리에게 낯선 예술인 ‘어름산놀이’를 통해, 주인공 자신이 가진 재능과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의 차이가 초래한 소외감을 보여준다. 극중의 타령 소리는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무대 위에 그어진 선에 갇힌 이섭의 상황을 표현한다. 그는 선 안쪽도, 선의 바깥쪽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 아슬아슬하게 선 채로 현실이라는 허공 위에 팔을 허우적거린다.
관객들은 무대를 빼곡히 가로지른 줄을 보며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배우에게 허락된 공간이 한줌뿐이듯, 우리가 일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 또한 한줌뿐임을 떠올리며. 작고, 소소하고, 일시적인 것으로만 남은 행복과 어깨를 푹 누르는 꿈이라 불리는 육중한 무엇을 느끼며. 하지만 가혹하게도, 무대와 달리 현실의 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안도, 밖도 아닌 어딘가에서, 대부분의 우리는 ‘선’이라 부르는 경계를 찾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을 방황하지는 않는지.

[사진: 극단 전원 제공]

일시
12월 25~30일 화토일 4시7시, 수목금 8시
장소
후암스테이지
김태현
연출
김상윤
출연
전수환, 황연희, 정재훈, 김란 외
문의
0507-1306-7654
 

태그 허영균,선긋기,극단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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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균

허영균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공연 창작 작업과 함께 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다.
byebanana26@gmail.com
제154호   2018-12-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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