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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포기할 수 없는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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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즈팩토리가 1년 만에 신작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로 돌아온다. 보스니아 출신 작가 사샤 스타니시치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붕괴에 따른 갈등과 민족청소를 동반한 처참한 내전의 과정을 12살 소년의 시점으로 그려낸다. 국내 공연계에선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으로, ‘연극적으로 소설 읽기’라는 토모즈팩토리의 장기가 전작 <사물의 안타까움성>에 이어 이번에도 제대로 발현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수십 년 전 저 멀리 유럽 땅에서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지만 참혹한 내전과 정전, 그리고 분단의 상황은 한국 관객에게도 꽤나 유효한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 연출가 쯔카구치 토모는 이민족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소년을 작가의 분신이자 현대인의 분신으로 읽어내는 한편, 보스니아 내전을 통해 분단의 상처를 끝내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투영하는 데 중점을 둘 예정이다.
한국과 보스니아 사이 간극 줄이기
“이번 공연에선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의 내전 중 임시휴전이 이뤄지고 함께 축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실제로 이런 일들이 일어났었다고 해요. 서로 민족은 달라도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고, 바로 몇 달 전까지는 이웃이었던 사람들이었던 데다, 또 유럽 쪽에선 워낙 축구에 열광적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어쨌든 이 축구 장면은 주인공이 쓴 일종의 단편소설이자 판타지로 그려져요. 축구 경기 중 주인공이 그 안에 들어가서 어떤 개입을 하기도 하는 등 마치 연극의 연출가처럼 이 장면을 지배하고 있죠. 하지만 실제 현실은 소설가의 상상력이나 연출가의 솜씨로는 어떻게 하더라도 바꿀 수가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현실을 마주하는 예술가, 작가들은 ‘우리가 이렇게 살아지면 좋겠다,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해요.” -쯔카구치 토모 연출가
공연의 전반부에선 갑작스러운 조부의 죽음과 구체제를 부정하는 새로운 교과서를 배부 받는 소년의 에피소드 등을 통해 전쟁으로 붕괴되어가는 일상이 담담하게 그려질 예정이다. 토모즈팩토리는 현재 원작 소설의 큰 줄기를 따라가되, 소설 중 인상적인 장면을 골라 무대에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소설의 연극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작은 에피소드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오히려 극대화하는 방식인 셈이다.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이 소년의 눈을 거치면서 풍성한 은유를 담은 장면으로 재 가공될 예정이다.
특히 한국 관객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 공연팀이 고민하고 있는 지점들이 흥미롭다. 가령 새로운 교과서를 받아 공부해야 하는 상황은 사실 원작에서는 짧게 스쳐지나가는 장면이지만 토모즈팩토리의 공연에선 무대를 통해 집중 조명된다. 정권에 따라 교과서 내용이 바뀌는 경험, 그리고 공산주의 나라가 갑자기 붕괴되고 시스템이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혼란상태가 되는 것 등 한국의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장면들을 일부러 골라내 국내 관객들의 시선과 생각을 사로잡는다는 계획이다. 축구 장면을 공연에 넣은 것 역시 이따금씩 남북 축구대회를 열곤 하는 한국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될 이번 공연에서 1부 속 마을과 교실 등의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판타지 공간이 2부 시작부터 초록 잔디밭의 모습으로 관객의 눈앞에 펼쳐질 예정이다. 이 공연의 백미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장면을 위해 공연팀은 풋살 경기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 중이다.
보통 사람들이 겪는 전쟁, 그리고 그 후의 일상
“이번 공연을 통해 사람의 양심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어요. 평화로운 시대에선 양심이란 아주 좋은, 그 사람의 장점이죠. 근데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선 사실 양심이라는 게 그 어떤 소용도 없죠. 어쩌면 다 끝나고 나서 그 사람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것 이외엔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그런 존재가 돼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이러니하죠. 양심을 갖지 않으면 고통스럽지도 않고, 그냥 지나간 일로 처리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고통을 받는 사람은 양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쯔카구치 토모 연출가
‘미처 생각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되어 버리는 순간’. 전쟁을 겪는 보통 사람들은 사실 대부분 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그런 식으로 허무하게 맞닥뜨리게 되곤 한다. 전쟁이란 참혹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지만, 또 누군가는 가해자, 학살자가 돼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작품은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돼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공연이 될 예정이다. 자신이 저지른 일들로 영원히 고통 받는, 양심을 지닌 보통 사람들. 우리가 그 사람들의 편을 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알면서도 가해자가 되는 사람, 가해자가 된 후에도 고통 받지 않는 사람들과 이들은 분명히 다르다는 게 연출가의 생각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공연을 올리는 토모 연출가는 일본인이다. 토모는 원작을 공연화할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자기 죄 값을 지닌 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일본인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일본과 한국 사이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회피하지 않고 나름대로 정면 돌파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산 지 어느덧 15년차가 된 이 연출가에게는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이 나라를 볼 수 있는 입장이지 않을까’는 생각이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다. ‘연극은 결국 되게 다이렉트한 대화인 것 같다’는 토모 연출가는 현재 자신이 만나고 직접 관계를 맺는 이곳 한국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작업을 어떤 식으로든 꾸준히 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사진: 토모즈팩토리 제공]

일시
12월 24~31일 평일 7시 30분, 주말 및 공휴일 3시
장소
KOCCA콘텐츠문화광장 STAGE66
원작
사샤 스타니시치
연출
쯔카구치 토모
제작/번안
손상희
출연
장용철, 김희정, 전정훈, 송철호 외
문의
070-4185-4524

태그 김나볏,토모즈팩토리,군인은축음기를어떻게수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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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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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호   2018-12-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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