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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금의 이곳에서부터 움직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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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일,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으며 괜히 새사람이라도 된 양, 들뜬 기분으로 새해의 포부들을 품어 본다. ‘이 사회에 유용한 인간이 되어야지’, ‘근면하고 성실한 예술가가 되어야지’. 모름지기 큰 포부에는 구체적인 계획들이 따라줘야 하기에, 곧이어 ‘매주 최소한 5일씩은 운동을 하여야지’, ‘최소 2주에 1권씩은 책을 읽어야지’, ‘1달에 한 번씩은….’ 이처럼 포부를 뒷받침할 계획들도 차례차례 세워 본다.
지금부터 조금 무서운 이야기를 할 것인데, 그건 바로, 지금은 구정도 지났고, 어떻게 해도 2019년임을 부정할 수 없는 3월이 되었으며, 그 3월마저도 중순을 넘어 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계획들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따라서 포부들 역시 한낱 공허한 것이 되었기에, 이제 자연스레 자괴감에 허덕일 차례이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어째서 나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할까’ 등의 자괴감에 시달리다 보니 괜스레 억울한 마음이 든다. 뜀박질이라도 하자니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고, 좁고 어두침침한 방에서 독서를 하자니 이 방은 어째 책 읽기보다는 술 마시기에 적합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건 내가 나약해서라기보다는 어쩌면 부동산 때문이고, 어쩌면 메이드 인 차이나와 전지구적 자본주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 모든 책임은 그놈의 자본주의에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무얼 해야 할까. 영화 “파이트 클럽”처럼 금융산업 밀집 지역인 여의도를 터뜨려버릴까?
농담이다. 아무튼, 이렇게 개인이란 존재는 아무래도 나약하고, 이 사회의 부조리함은 어쩐지 너무나도 굳건하기에, 우리는 이 세계 앞에 종종 무력해지기 일쑤인 것 같다. 이러한 악조건들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일상과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부조리 가운데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소망을 품으며,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나름의 노력들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지면에 맞게 질문의 각도를 조금 달리하여, ‘예술하기’에 상당히 비우호적인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들은 어떻게 자신의 일상을 지키며 창작활동을 지속해나가고 또 관객과의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까.
오늘 이 지면을 빌어 소개하고자 하는 “Monthly Performance - 월례움직임”이 이 답답함을 타개할 한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탈중심-소규모-캐주얼 프로덕션’을 지향하는 ‘월례움직임’은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마다, 작가들이 작업의 구상 단계, 과정 단계, 완성 단계를 막론하고, 모든 단계의 작업을 나름의 방식으로 발표하는 플랫폼이다. 또 이 ‘움직임’이 이루어지는 장소들 또한 상당히 캐주얼하고 특이한데, 일단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대학로의 극장가에서 벗어나 대방동의 옥탑, 작가의 가정집이나 연습실 같은 곳에서 관객과의 만남을 벌이는가 하면, 이에 그치지 않고 서울을 벗어난 광주, 혹 심지어는 대한민국을 벗어난 미합중국의 뉴욕에서도 그 ‘움직임’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식이다. 이렇게 한 장소에서 자신의 퍼포먼스를 끝낸 작가는 또 다음 달의 발표자를 지목하여 섭외하는데, 따라서 “월례움직임”의 ‘움직임’ 스펙트럼은 무용이나 연극 또 미술 등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으며, 상당히 넓은 범위의 작가진과 퍼포먼스를 포용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소규모의 ‘움직임’을 매개로 한 만남 이후, 작가와 관객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프로그램 중에 필수적으로 포함된다는 것이며,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 관객의 ‘자율후불’에 따라 공연 수익을 정산한다는 것이다.
이를 “월례움직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기대 제로 / 과정 중심 / 다단계 섭외 / 고정되지 않는 주소 / 자율후불제이다. 공연예술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는 유의미할 뿐 아니라 상당히 건강한 시도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공연예술을 업으로 삼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소위 ‘신진’에 속하는 예술 종사자인 필자마저도 어느 순간부터 한 해의 일정들이 패턴화되며 일상으로부터 모종의 기시감과 피로함을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연초에는 ‘아래아한글’ 워드 프로세서에 허덕이며 창작지원금을 신청하고, 운이 좋아 선정되면 과연 이 작품은 어떻게 보일 것이며 어떤 반응들을 끌어낼 수 있을까, 기대 반 두려운 마음 반으로 외롭고 고된 작업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1년에 한 편 혹은 두 편 정도의 공연을 올리고 나면 작품이 물질의 형태로 남지 않는 장르 특성상, 관객과 평단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지난 작업의 시간과 그 의미를 평가받고 이를 내면화한다. 그리고 다시금 같은 과정을 밟는 그닥 새롭지 않은 새해…. 다시 말해 한 편 혹은 두 편 정도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1년 중 태반의 시간을 지하 연습실에 ‘갈아 넣고’ 무대에서 두 시간 남짓한 ‘현존’이란 걸 한 뒤, 과연 그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진 만남이기는 했는지, 밀려오는 회의감과 씨름하다 대안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기에, 결국은 다시금 이 굴레를 돌고야 마는 것이다.
물론 상황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수의 공연예술계 종사자들이 지원금의 액수와 시기에 좌우되는 삶,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공연이었나 자괴하는 삶, 언제까지 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사회가 되었든 예술 생태계가 되었든, 분명 어딘가 잘못된 것 같긴 한데, 나 자신의 삶도, 이 사회도 또 예술정책도, 어디서부터 무얼 고쳐나가야 할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 알게 된 “월례움직임”은 창작과 만남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하는 듯 보였다. 외부적인 요소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의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움직이며 지금의 관객과 만나는 것, 만남을 계기로 대화와 영향을 주고받는 것, 그리고 작가들이 느슨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며 매달의 움직임을 이어나가는 것. 다양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르의 움직임으로부터, 필자는 밥 한 숟갈씩을 모아 한 그릇의 밥을 이룬다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조금 촌스런 비유를 하자면 “월례움직임”은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잡곡밥 같은 느낌이랄까. 잡곡밥, 아니 “월례움직임”에 관한 더욱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링크들을 참조해주시길.
    • 발표작가: 김명신
    • 발표작가: 조아라, 퍼포머: 최은진 장현준
    • 장소: 몸소리말조아라센터

[사진제공: 월례움직임]

태그 송이원,Monthly Performance,월례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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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원

송이원 연출가
‘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
eewons@gmail.com
제155호   2019-03-1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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