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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이 더불어 흐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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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서명을 ‘아직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직도 하냐는 말을 너무 듣다 보니 저희 쪽에서 먼저 선수를 치는 거죠(웃음).”
12월 32일이나 33일 같은 건, 또는 13월 1일이나 14월 1일과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시간을 셈하는 최대 단위는 1년이며 이는 열두 달로 나뉘어 되풀이되기에, 우리는 한 해를 넘기고 또 한 해를 넘겨도 언제고 다시금 1월과 2월로 또 3월과 4월로, 그러니까 이 4월로 돌아오고야 말 것이다. 바삐 넘겨온 달력은 어느덧 2019년이라는 숫자를 우리 앞에 내세우지만, 우리는 이제 또다시 이 4월을 마주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4월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고 또 무얼 의미해야 할까. 조심스레 기억이란 두 글자를 내밀어 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장용철 선배가 페이스북에 ‘너무 울고 싶은데 옆에서 기타치고 노래 불러줄 사람 없냐’고 올렸어요. 그랬더니 (안)계섭이가 가수거든요.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2014년 5월 17일에 처음 마로니에 공원에서 모이게 된 거죠. 처음엔 매일 모이다가 점점 시간이 정해지면서 지금 같이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서명을 받고 문화제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정해지게 됐어요. 어느덧 256주차가 됐네요.”
“이런 활동을 하는 단위가 전국적으로 많은데, 짐은 우리가 제일 많은 것 같아요(웃음). 영상을 트니까 프로젝터랑 스크린이 필요하고, 공연을 하니까 음향이랑 조명도 필요하고. 초반엔 지하 연습실에서 짐을 하나하나 다 지상으로 올리는 식이라 짐 운반에만 한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다들 끙끙거리면서도 이 장비 빼자, 저 장비 빼자는 식의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도 신기하더라고요. 지금은 다행히도 한 참여시민 분이 흥사단 지하창고를 알선해주셔서 짐 운반에 드는 시간이 30분 정도로 줄게 됐죠. 5년이란 시간 동안 진상규명이 안 되었다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희는 이 시간들을 거치면서 노하우가 쌓이게 됐어요.”
“다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채감이 있잖아요. 그걸 개인적으로 감당하고 추모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 슬퍼하는 것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모여서 함께 연대하고, 진상규명 서명도 받고, 그렇게 치유해 가는 거죠. 슬퍼하는 게 다는 아닌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거니까요. 문화제에서 밝은 노래를 부를 수도, 콩트를 할 수도 있는 거죠”
“저는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고, 전에는 이런 활동에도 참여해본 적이 없었어요. 사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에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뉴스와 SNS를 다 차단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일말의 정의감이 가슴에 체증처럼 맺혀서 ‘마로니에 촛불’에 참여하게 됐는데, 이걸 계기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여기서 계속 토론도 하고 공부도 하게 되니까, 저희 아버지가 올해 88살이시고 박근혜를 찍은 해병대 5기 출신이시거든요. 이제는 저를 계기로 해병대 전우회 모자에 노란리본이랑 4.3 동백꽃을 달고 다니셔요(웃음).”
“아까 넋전춤 공연을 하신 (안)혜경 선생님은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시는데 오실 때마다 떡을 해오시거나 쌀을 가져다주시고, 효소 같은 걸 만들어주셔요. ‘마로니에 촛불’을 하면서 소중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었어요. 아, ‘마로니에 촛불’에서 결혼한 커플도 있어요. 아무튼, 그래서 아이들에게, 희생자분들에게 무엇이라도 더 열심히 해드리고 싶어요.”
“나는 문화운동을 했던 사람이라 운동이나 조직을 많이 거쳐 왔는데, ‘마로니에 촛불’ 이 친구들은 분위기가 너무 이상한 거예요. 운동도 잘할 줄 모르는 것 같고, 전혀 조직적이지가 않은데, 신기하게도 계속 굴러가요. 지금도 신기해요. 고맙고 사랑스러워.”
“물론 다들 사람인지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좋은 취지로 모여도, 다들 활동하던 사람도 아니고 이 방면으로 미숙하다 보니까 관계가 틀어지는 순간들도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럴 땐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마로니에 촛불’하면서 힘든 게 있다면 이런 것들이지 활동 때문에 힘든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5년 동안 하면서 점점 바뀌어가는 게 있다면, 예전엔 서명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서명을 하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나가면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과 보이는 눈빛은 ‘아직도 해?’에요. 관심이 점점 멀어지는 거죠. ‘책임자 처벌된 거 아니야?’, ‘배상금 받고 다 끝난 거 아니에요?’ 아니거든요. 서명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실이 다 밝혀지지 않아서 아직 진행 중이라는 걸 알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해마다 이번 주기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5주기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작년 4주기부터는 안 끝나는 싸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사실 들었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각자 지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가 정말 중요한 게, 이 사건 전까지도 한국 사회에서는 300명 이상이 사망한 사고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더라고요. 우리 사회는 안전 불감증에 걸린 사회인 거죠. 진실을 규명하고 저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기억하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은 끝없이 흐르는 직선으로 자주 비유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기억한다는 것은, 흐르는 시간 가운데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으로, 매듭을 묶어 둥근 고리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오늘이란 시간을 그저 현재적인 오늘이 아니라 그날과 더불어 흐를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아닐까. 그저 흐르기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축적되고 쌓여가는 시간, 그래서 다른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 그렇게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마로니에 공원에 모인다.
P.S. “‘연극in’이니까 연극인들이 가장 많이 보겠죠? 많이들 미안해하셔요. 특히 아르코 극장에서 공연을 하실 때 공원을 돌아서 가시기도 하더라고요. 돌아서 가지 마시고, 어차피 아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냥 지나치시지 마시고, 인사도 하고, 서명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진: 송이원]

태그 마로니에촛불,송이원,마로니에,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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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원

송이원 연출가
‘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
eewons@gmail.com
제157호   2019-04-1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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