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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연결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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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
(노들장애인야학 홈페이지 인사말)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다. 가족과 친척 중에 장애인이 있음에도 미처 몰랐다. 비장애인에게 장애란 그만큼 어디에나 있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 10년 넘게 대학로에 있었지만 여전히 낯선 이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로니에 근처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 혹은 장콜(장애인콜택시)을 만난 적이 있다면 십중팔구는 이음센터 혹은 노들야학에 온 사람들이다. 대학로 한복판 마로니에 공원 뒤편에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이 있다. 노들야학은 1993년 개교하여 2008년부터 대학로에 터를 잡고 활동해온 장애해방교육과 운동의 산실이다. 성북마을극장의 장애인극단 ‘판’도 이곳에서 태동했다. 신재, 쿨레칸, 유선, 신원정 등 액티비스트 예술가들이 몸담은 공간이기도 하다.

노들야학 일일 공간대여 일정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노들의 일일 스케쥴표가 빼곡하다. 공간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장애인 단체와 행사들로 대관 경쟁이 늘 치열하다고 한다. 노들야학에서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낮수업이 월~금 열린다. 학생들은 대부분 시설에 거주하고 있으며 탈시설과 자립을 목적으로 온다. 필자는 4월 9일 화요일 노들에서 3년째 진행 중인 아프리카댄스 수업을 참관하였다. 쿨레칸(무용수 엠마누엘 사누, 고권금, 뮤지션 신보섭)과 난민 인권 활동가 황정인, 야학교사 김유미와 노들의 발달장애인 학생들이 함께하는 수업이다.
신발을 벗고 원으로 둘러선다. 젬베 반주에 맞추어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오른쪽, 왼쪽으로 다 같이 이동한다. ‘커뮤니케이션 서클’은 원 안으로 한 명씩 나서서 자유롭게 리드해보는 댄스 수업의 핵심이다. 함께 몸을 움직이고, 손뼉을 치고, 서로를 기다려주는 시간. 피리 소리가 들리면 춤을 추다가 피리가 멈추면 그대로 멈춘다. 등을 쭉 펴주는 스트레칭을 한다. 불을 끄고 누워 눈을 감는다. 모두가 눈인사를 하면 수업이 끝난다. 교사들은 귀가하는 학생들을 배웅하기 위해 건물 입구까지 나갔다 온다. 네모난 교실 공간이 음악과 노래와 춤으로 둥글어지는, 공간을 바꾸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느꼈다. 각자가 가진 몸의 형태, 흥의 방식으로 발산하는 에너지는 나의 몸까지 꽉 채우고도 남았다.
수업을 진행 중인 무용수 엠마누엘 사누와 뮤지션 신보섭

수업 후 이루어지는 교사들의 피드백 회의도 참관할 수 있었다. 학생의 도전행동1)의 가능성을 감지하기 위해 애썼고, 감정 상태의 변화에 대한 꼼꼼한 관찰을 나누었다. 다 함께 동시에 이동하는 것이 어려우니 로프를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렇듯 노들 수업은 일상의 맥락 안에서 학생과 교사가 밀착되어 상호작용하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현실을 받아들이며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비장애인 위주의 공동체성에 관한 적절한 문제제기가 아닐까.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바삐 퇴근하는 와중에 여유시간이 있었던 권금을 붙잡았다.

“저는 여기 있는 것 자체가 편안하고 (이곳을) 안전한 공간이라 느껴요. 여기에서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 되게 좋아요. 예를 들어 **언니랑 같이 춤을 춘다든가 이 사람의 움직임을 내가 나누는 것, 내 움직임을 상대가 나누는 것이 되게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쉽게 마주하기 어려운 순간이라 생각해요. 커뮤니케이션 동작에 얼마만큼 내 감정과 느낌이 담겨있을까 생각하면 솔직해지는 공간은 여기 지금 이 공간.
[...]
노란들판 행사가 있으면 항상 마로니에 공원으로 나가고 산책도 해요. 여기 또한 사람이 살고 있는, 배움이 있는 공간이에요. 여긴 되게 재밌는 게 학생분들이 선생님보다 나이가 많아요. 여기야말로 나에게는 문화예술과 철학이 있는 공간이고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하는 곳이에요. 누구보다 생기 있게 살아있게 되는 공간.”

- 고권금

다음은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 선생님의 연설이다.

 “우리는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파열음을 낼 것입니다. 장애인이 대학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교육을 받고 문화를 즐길 수 있다면 단절과 배제로 점철된 장애인 문제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희망이 될 것입니다. 대학로를 장애인과 함께 하는 문화의 공간으로, 마로니에 공원을 그 운동장으로 만들어갈 꿈을 꿉니다. 노들은 이곳에서 ‘밤에 공부하는 학교(夜學)’가 아니라 풀뿌리 민중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들판 위의 학교(野學)’로 새롭게 시작할 겁니다.”2)

노들야학 들다방 전경

날씨 좋은 봄날, 마로니에 근처 여유로운 카페를 찾는다면 노들야학 4층에 있는 ‘들다방’을 추천한다. 발달장애인 바리스타가 직접 내린 저렴하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일상의 해방을 느껴보자.

[사진 강보름]

  1.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타인의 신체적 안전을 해할 가능성이 있는 강도, 빈도, 기간의 측면에서 행동 또는 지역사회 시설을 이용하는데 제약을 주거나 접근을 불가능하게 하는 행동(Emerson et al, 1988). 개인의 상태에 대한 주의를 끌기 위한 수단, 통제되는 것에 대한 불만, 자기결정, 상황과 권력에 대한 정당한 행동, 발달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의 문제 해결, 타인과의 소통 혹은 관계맺기 등에 해당한다.
    http://www.nrc.go.kr/nrc/jsp/boardDownload.jsp?board_id=NRC_HS_BOARD&seq=2620&idx=1
  2. 홍은전, 노들장애인야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도서출판 까치수염, 2014. p.134.

태그 해방,노들장애인야학,강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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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름

강보름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연출가
연출작으로 <레디메이드 인생>, <우리가 고아였을 때>,<모던걸타임즈> 등이 있다.
rkdekdzhd@hanmail.net
제158호   2019-04-2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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