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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은 많지만 사실 서울에서 발행되고 있는 매체들이 이들의 활동을 모두 다루기엔 부족함이 많다. 종종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평론가들이 그 지역의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원고를 기고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매우 드문 경우인 데다가, 간혹 기존의 평론지에서 지역 연극에 관심을 갖는 경우, 주요 페스티벌의 작품들에 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겠다.
<파이플>의 시작은 이 지점이었다.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었던 김사슴은, 어느 날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론가가 부산의 연극매체 부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그 장면은 이상하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으로 살던 김사슴의 뇌리를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2017년 가을, <파이플>이 탄생했다.
일상의 관심으로부터, 연극에 이르기까지
2019 가을겨울호 표지
<파이플>은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밴드 고래사슴이 크라우드펀딩으로 발행하고 있는 계간문예지(봄/여름/가을겨울)다. 올해 고래사슴의 멤버는 김사슴을 포함해 6명으로 구성되었다. 초기에는 김사슴과 김사슴의 학교 후배들이 참여를 했는데 3년차 활동에 접어들면서 연극과 잡지에 관심이 있는 청년활동가들을 공개모집하여 6명의 구성원(김그린, 김사슴, 꽃부리, 오나초, 이해경, 정윤)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작은 책 사이즈, 150매 내외(전면 컬러)로 출판되는 <파이플>은 모든 페이지에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구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매 호 ‘주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제’가 심상치 않다. ‘공포’(2019년 여름호) ‘이불’(2018년 가을겨울호), ‘그래도 봄은 온다’(2018년 봄호)라니. 나열해놓고 보니 기존의 연극잡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다소 파격적인 주제들이다.
일반적으로 연극잡지에서 특집이나 기획을 정할 때 그 주제는 대부분 연극계의 현안과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파이플>의 경우에는 그와 무관하게 그 당시 본인들의 관심사, 일상에서 주제들을 찾는다. 이렇게 선정된 주제들은 연극과 무관해 보이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연극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가령 ‘여행’이 주제였던 호에서는, 여행에 대한 일반적인 에세이들과 함께 부산의 소극장가 맛탐방 여행기를 기획하거나 장정일의 희곡 『긴 여행』에 대한 리뷰를 싣는 식이다.
이들이 연극잡지이면서 동시에 ‘계간 문예잡지’를 표방하고 있는 것도 평론지, 연극전문지가 주는 딱딱한 느낌에서 벗어나 독자들에게 친숙함을 주기 위해서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문예지에서 연극이 항상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현상을 뒤집어 보고 싶었다고 한다.) 일상적인 순간들과 연극이 만날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것, 그것이 <파이플>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이었다.
중심과 주변, 이분법을 벗어나서
독자들에게 연극을 친숙하게 소개하는 것 외에 <파이플>이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창작자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일이다. 물론 다양한 연령대의 창작자들과 만나고 그들의 작품에 대한 소개와 리뷰를 싣고 있지만, 특별히 매 호별로 젊은 극작가 한 명을 선정해 희곡, 인터뷰, 리뷰를 함께 게재해오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이제 막 시작하는 신생극단들에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는 사이 <파이플>은 자연스럽게 창작자들과 공연 정보를 주고받으며 교류를 하게 되었다. 매체를 중심으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네트워크가 구성된 셈이다. 부산의 젊은 예술가들은 이렇게 서로를 발견하고 지켜보면서 성장하고 있었고 다양한 매체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파이플>에서는 부산 연극이 중심이다. 부산 극장 지도나 부산 극단 공연 일정표는 <파이플>에서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정보다. 이들에게는 ‘서울로의 진출’과 같은 고리타분한 이분법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 그곳에서의 연극이 중요할 뿐이다. 이렇게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을 다루는 다양한 매체가 늘어날 때 예술의 생태계도 더 건강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 2018 봄호 내지
  • 2018 가을겨울호 내지
크라우드펀딩과 지원금 사이
<파이플>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출판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고 정해진 독자들을 위한 수량만 제작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청년예술단, 최초예술지원과 같은 지원금 제도가 처음 시작하는 연극매체를 지원해주고 있지만, 부산의 경우에는 지원금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물론 계간지를 지원해주는 지원금 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 3년 정도의 경력을 기본자격으로 요구한다. 그러니 이제 막 시작하는 계간지의 경우에는 지원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들은 처음부터 자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고 고민 끝에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크라우드펀딩은 실질적인 독자들과 만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이들이 7회에 걸쳐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금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그만큼 충성도 높은 독자들을 확보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울러 지원금 제도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크라우드펀딩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모금액을 보수적으로 책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인쇄비와 외부 필자들의 원고료를 제외한 본인들의 인건비 책정은 어렵다. 요컨대 <파이플>은 기존의 지원제도가 개선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이기도 하다. 이제 3년 차에 접어든 <파이플>은 앞으로도 많은 변화와 난관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파이플>이 지치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지금처럼 연극 잡지를 만드는 일이 모두에게 즐거운 일일 수 있기를, 응원한다.
# <파이플> 7월호(2019년 가을겨울호)의 주제는 ‘온도감각’입니다.
# 구독과 관련된 문의는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을 방문해주세요.
https://piepl2017.modoo.at/
https://www.instagram.com/pie_pl/
[사진출처: 파이플 인스타그램]

태그 파이플,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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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김태희
한국연극사를 공부하고 있고 연극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shykth@hanmail.net
제172호   2019-11-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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