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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노동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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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를 상징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그중 한 명이 ‘전태일’이 아닐까. 열일곱이라는 나이에 1965년부터 평화시장에서 일을 시작한 전태일은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시다들을 목격한 뒤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어린 노동자들은 허리를 펼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햇빛도 못 보고 일을 해야 했지만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전태일은 이런 노동환경을 개선해보고자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알리고 노동 현황을 조사하기 위한 설문을 돌리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기업과 행정기관의 방해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1970년, 결국 전태일은 동료들과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계획한 시위 끝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지난 2019년, 청계천 수표교 근처에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이하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요구하며 스물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49년 만의 일이었다.
전태일과 이소선, 그 시대를 기억하는 키워드
서울시가 조성하고 전태일재단이 위탁운영하고 있는 이 공간에서는 전태일을 기념하고 노동의 의미를 되돌아보기 위한 다양한 문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기념관에서 주력하고 있는 문화사업은 크게 전시, 교육, 공연으로 나누어진다. 전시의 경우 전태일과 그의 모친 이소선 여사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와 기간별로 기획하는 기획전시가 운영되고 있고, 교육의 경우 노동인권 체험교육이나 각종 체험학습과 같은 사업들이 있다. 공연의 경우 2층에 조성된 공연장 울림터(약 60석 규모)를 중심으로 공연지원사업, 초청공연, 수시대관이 이루어진다.
기념관의 대표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상설전시는 전태일의 삶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가 남긴 일기와 사진, 서류들을 바탕으로 그의 어린 시절, 처음 평화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을 때부터 마지막 시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하게 보여준다. 이 전시는 전태일의 삶을 축으로 진행되지만, 결과적으로 전태일이라는 개인 이상의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남긴 일기들은 전태일 개인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열악하고 처참했던 그 시대에 대한 기록이었고, 그가 찍힌 사진들은 당대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기도 했다. 시다들이 일을 했던 다락방을 재현한 공간이나 전태일이 돌렸던 설문지를 직접 작성하게 하는 체험 코너 역시 관람객들에게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덕분에 전시를 다 보고 나면 전태일 개인에 대한 인상만큼이나 그 시대에 대한 감각도 날카로워진다. 열악한 환경과 부당한 대우에 대한 경악, 씁쓸함. 노동자들을 극한으로 내몰았던 시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새겨진다.
유연성과 확장성, 2020년의 전태일과 노동
앞서 살펴본 상설전시처럼, 기념관에서 운영되는 문화사업들은 아무래도 그 특성상 전태일에 대한 기념의 의미를 추구한다. 2020년 공연지원사업 공모에서는 지원 자격으로 전문성과 단체 경력 외에 “전태일 정신에 부합하는 창작물”이라는 조건이 따른다. 이때 전태일 정신이라는 것은 ‘사랑, 연대, 행동’이라 명기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작품에서 인물을 소재로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9년 시즌 공연 작품들만 하더라도 전태일을 소재로 내세운 작품 보다 일반적인 노동이나 노동 환경, 나아가 인권이라는 확장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더 많았다. 이것은 기념관이 지향하고 있는 바가 비단 열사에 대한 기념에 그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필자가 기념관을 방문했던 날에는 상설전시 외에도 기획전시 ‘시다의 꿈’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다의 꿈’은 봉제업에 종사하는 네 명의 여성 노동자와 소설가, 미술가, 사진가가 협업해서 진행한 프로젝트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가들이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창작하거나 혹은 미술가가 흰 셔츠와 사진을 통해 오늘날 노동과 상품의 관계에 대한 사유의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교육 프로그램들 역시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인문학 프로그램)’과 같이 현대의 관점에서 노동환경을 개선해줄 수 있는 주제들로 다채롭게 꾸려지고 있다. 공연 프로그램들처럼 전시나 교육프로그램 역시 동시대 노동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지원 담당자와의 대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관객에 대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공연을 보러 오지 않는 공간이다 보니 일반적인 연극 관객과는 다른 관객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담당자에 따르면 단체의 소개나 홍보를 통해서 찾아오는 관객들의 비중이 높긴 하지만 기념관의 다른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공연을 보러 오기도 하고, 노동인권 문화에 관심이 많은 관객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어린이극이나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의 경우에는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관람을 하러 오기도 했다고 하니, 관객들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한 편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관객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 기념관이 지향하고 있는 바를 가장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1970년대의 노동과 2020년의 노동이 완벽하게 일치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노동은 과거에 비해 종류도 다양해졌고 노동이나 인권에 대한 인식도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외당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여전히 ‘전태일’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기념관이 해야 할 역할은 이렇게 노동이라는 키워드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는 것, 그리하여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올해는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지 50주기가 되는 해로 기념관에서는 ‘기념 문화제’를 준비 중이다. 전태일기념관이 앞으로 우리 시대의 노동에 대해 어떤 질문들을 던지게 될지 관심을 가져보자.
전태일기념관 웹페이지 : www.taeil.org
[사진제공 :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태그 김태희, 전태일기념관, 전태일, 이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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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김태희
한국연극사를 공부하고 있고 연극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shykth@hanmail.net
제176호   2020-02-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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