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넘어설 수 없는 금기의 경계는 어디서 오는가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남산예술센터 & 극단 고래 <사라지다>

최윤우_연극 칼럼니스트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으면서 매료되는 것은 비단 신(神)의 세계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신들의 싸움 속에서 운명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강력한 의지다. 우리는 그 넘어설 수 없는 세계를 ‘금기’라고 부르며 끊임없이 그 경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그래서 인간의 예술적 활동에 드라마틱한 모티브가 되었으리라. 여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사이 정해 놓은 또 다른 금기의 경계를 꺼내든 연극이 있다. 도대체 우리가 구분해 놓은 개념들의 경계는 어디서, 누구로부터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질문! 그 원초적인 질문을 꺼내놓은 연극 <사라지다>다.

남산예술센터&극단 고래
  • 사라지다

    어둠 속에서 내레이션이 들린다. 윤주의 친구인 동지, 청명, 신정, 상강, 이렇게 네 명의 여자가 거실에서 영화를 보면서 훌쩍거리고 있다. 윤주의 이모이자 트랜스젠더인 말복이 수선화를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네 명의 여자들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각자의 상처들이 드러나고, 서로 갈등하는 도중 윤주의 부재가 드러난다. 그리고 이날이 윤주의 제삿날이라는 것도 밝혀진다. 윤주의 죽음이 말복의 탓이라고 원망하는 신정에게 말복이 윤주의 비밀을 밝히는 사이 내레이션 속 인물은 자신의 이름이 윤주임을 알게 되고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씩 기억해낸다. 잠시 후 스스로를 얽어매고 있던 생각의 경계에서 풀린 한 순간, 말복은 죽은 윤주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곧 기분이 이상하다며 현실로 돌아온다.

    삼십대 중반, 다섯 명의 여자 동창생의 솔직하고 짜릿한 수다로 전개되는 연극 <사라지다>에는 이혼과 불륜, 동성애와 유산, 몰래한 사랑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은 트랜스젠더 말복, 여성이면서 여성을 사랑하는 신정, 결혼과 이혼의 경계에 서 있는 상강, 유부남과 불륜에 빠진 동지, 행복과 우울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청명,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윤주 등 사회가 만들어낸 경계에 서 있거나 이를 넘어선 다섯 명의 인물들이다. 연극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인물들을 통해 경계란 무엇이고, 그 경계를 넘어서는 ‘금기’에 대한 두려움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과연 이들은 정말 ‘비정상적’인가? 삶과 죽음, 남자와 여자, 결혼과 이혼, 불륜과 사랑, 정상과 비정상 등과 같은 ‘경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하는. 대화와 내레이션을 중심으로 ‘사라지는 것들’ 혹은 ‘사라지다’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사유를 풀어간 연극 <사라지다>는 수다와 철학적 사고를 넘나드는 대화, 감상과 성찰을 오가는 정서, 빛과 어둠으로 강조되는 조명 등을 통해 ‘말복의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을 관객들의 사유의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되묻는다. 우리 스스로 그리고 타인에게 규정하고 있는 경계와 금기들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갈등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는 것을 금기시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들의 폭풍 같은 수다 속에서 쏟아지는 가슴 아픈 사연들을 귀 기울여보라. 그 저릿한 상처들에 몰입하게 된 사이 가만히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아픔이 아닌, 바로 나의 아픔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울림을 끌어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어떻게 발현될 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사진제공] 남산예술센터&극단 고래

  • 사라지다
  • 일시 : 2012년 12월 29일(토)~2013년 1월 20일(일) 평일 8시
    / 토일 3시(월쉼) *12월 31일(월) 공연 있음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작,연출 : 이해성
    출연 : 박용수, 강애심, 김동완, 황세원, 박윤정, 우수정,
    황은후, 김원정
    문의 : 02-758-2150

 
[최윤우의 연극미리보기] 함께 나온 기사 보기

넘어설 수 없는 금기의
경계는 어디서 오는가

남산예술센터&
극단 고래 <사라지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배우들에 대한 광시곡

극단 진일보
<아리랑 랩소디>

자기만의 방을 찾고자
하는 여성들을 위한 무대

극단 목토
<자기만의 방>

태그 남산예술센터, 극단 고래, 사라지다, 이해성

목록보기

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14호   2012-12-20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