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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없는 사회에서 쓰러지는 사람들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남산예술센터 & 극단 C바이러스 <독살미녀 윤정빈>

최윤우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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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소재로 극화된 이야기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어떤 이야기였을까 하는 궁금함에 배경을 찾아보게 되고,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이 수 십 년이 흐른 지금 어떤 관점으로 얘기되는가 하는 호기심이다. 허구적 상상력에 의한 극적 판타지와 다른 또 다른 재미다. 게다가 정서와 문화가 다른 타국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면 더욱 더 그렇다.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이 그렇다. 1922년 경성을 떠들썩하게 했던 ‘독살미인 김정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당시 대서특필된 사건과 재판과정, 재판의 결과가 맞는지 아닌지 끝내 알 수 없었던 특별한 사건을 다룬다. 하지만 그것은 사건의 진실 여부가 아닌, 진실을 말하지 않는 혹은 말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약자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 독살미녀 윤정빈
독살미녀 윤정빈
  •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모르는 함경도 시골마을의 한 여인이 쥐약으로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1심에서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한 그녀는 사형을 구형받았고, 이 사건은 그렇게 그냥 묻힐 뻔 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한 사람들은 투서를 날리며 무죄를 호소하게 되고, 스무 살에 사형을 구형받은 김정필 역시, 협박과 회유에 거짓 진술을 했다며 번복, 1924년 10월 2심 공판이 진행됐다. 보기 드문 절세미인에 대한 동정심과 호기심에 재판소 앞에는 이천여 명의 사람들이 운집하며 장사진을 이뤘고, 신문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사건을 확장시킨다. 시댁식구들과 죽은 남편의 부검의가 진술한 내용에 따라 스무 살의 김정필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항소를 하겠다고 했으나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아, 1924년 10월 27일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몇 번의 감형을 거쳐, 1935년 4월 형 집행정지로 가석방, 1937년 어느 여관의 하녀로 일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독살미인 김정필’ 사건. 그녀가 정말 남편을 살해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주장대로 억울한 누명을 썼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은 이렇듯 경성을 떠들썩하게 했던 ‘독살미인 김정필’ 실화를 소재로 극화한 작품이다. 연극은 쥐약으로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윤정빈 살인 사건을 취재하게 된 신문사 말단기자 황기성을 중심으로 친일파로 기득권을 대변하는 춘원 이광수의 대립, 그리고 언론과 대중에 의해 조작되는 진실과 거짓 등의 이야기로 스펙트럼을 확장시킨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고증에 따른 다양한 무대장치로 극적 사실성의 재현에 초점을 맞췄다. 윤정빈의 초상 화폭, 무성영화 스크린, 창밖 설경의 외적 공간과 사무실, 감옥 등의 내적 공간 등 무대는 상징적인 오브제를 사용하여 자유롭게 가변화시킴으로서 극의 흐름을 유연하게 만들었다. 의자 두 개를 활용해 미묘한 움직임과 거리 조절, 세밀한 감성을 확대시킨 장면이나 재판정, 호외 장면 등에서 구현되는 역동적인 스펙터클은 중극장 무대의 재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은 허구의 인물과 실존 인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대비시켜 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두드러지게 표현했다. 우연히 넘겨받은 사진 한 장으로 윤정빈 사건을 맡게 된 황기성, 그의 삶과 대비되는 이광수의 대립은 물론, 거짓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과 달리 출세와 영웅 심리에 사로잡힌 인간의 욕망, ‘진실’보다 언론과 대중에 의해 포장되고 변질되는 세상에 대해 반응하며 그것을 쫓아가는 모습을 통해 변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과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사진제공 [남산예술센터 & 극단 C바이러스]

  • 독살미녀 윤정빈
  • 일시 : 3월12일(화) ∼ 3월31일(일)
    화~금 8시 / 토 3시, 7시 / 일 3시 (월 쉼)
    장소 : 남산드라마센터
    작 : 이문원
    연출 : 이현정
    출연 : 선명균, 김지영, 신용진, 이종윤, 이은주, 김승기,
    강해랑, 이두리, 한아름솔, 신현진
    문의 : 02-758-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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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독살미녀윤정빈, 남산예술센터, 극단C바이러스, 이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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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19호   2013-03-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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