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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여 반복되는 폭력을 직시하라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극단 고래 <빨간시>

최윤우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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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너무나 참혹하고 아파 차마 입을 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것도 잠시,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고 먹먹했던 가슴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그리곤 세월을 탓하며 흘러가버린 시간 뒤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아니, 이미 관심 밖으로 멀어져버렸다.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고, 외치는 소리는 들리지만 반응하지 못하는, 그 침묵의 무서움을 들려주는 시가 있다. 바로 연극 <빨간시>다. 황지우 시인의 ‘묵념 5분27초’라는 시를 읽으며(?) 세상에서 가장 짧은 그 시가 지닌 ‘말없음의 의미’를 되새기듯, ‘이승’에서는 관심을 끌 수 없어 저승까지 들락날락해야만 비로소 한번 읽을 수 있는 아픔을 그린 이야기다.

  • 빨간시

    혜화동1번지, 100석도 안 되는 작은 무대 위에서 펼쳐진 이야기는 규모와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무게감으로 객석을 일렁거렸다. 2011년 12월 초연되었던 극단 고래의 <빨간시>는 그렇게 세상을 담았고, 관객을 만났다.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끌끌, 혀 몇 번 차면서, 원래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세상이라며 치부해버린 일. 기념일에만 돌아오는 아픔으로 남겨진 것들을 직설적으로 꺼내놓은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어떤 사건이 아닌, 지금 우리가 세상과 부합하고 있는 태도다.

    연극 <빨간시>는 우리 근현대사의 두 가지 아픈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위안부 사건과 한 젊은 배우의 죽음으로 드러난 성상납 사건이다. 시간적, 시대적으로 많은 차이가 나는 사건이지만,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해성은 이 두 사건 사이에 있는 공통된 지점을 목도했다. 첫째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들이 거대한 힘과 권력에 의해 성적으로 유린당하고 육체적,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것, 사건의 가해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뉘우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의 상처와 아픔은 결국 치유되지 않은 채 덮여있다”는 것이다.

    두 사건 모두 실제로 일어난 폭력이다. 하지만 너무도 명확하게 알고 있는 그것에 대해 말하는 않고, 모른 척 살아간다. 연극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같은 소재를 담았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빨간시>는 역사적 사실 속 당사자들의 아픔보다는 그것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있되, 행동하지 못하는 남은 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작품이다.
빨간시
  • 빨간시
  • 연극은 위안부 할머니와 자살한 여배우, 그리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동주의 이야기를 옥황과 염라, 저승사자 등을 등장시켜 독특한 구성으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성상납 사건으로 자살한 여배우의 사건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 앞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던 현실에서 괴로워하던 동주는 할머니 대신 저승에 가게 되고, 거기서 옥황과 염라를 만나 자신의 삶과 할머니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 동주의 내면으로 상징되는 저승 장면은 우리 각자의 마음 속, 각자의 내면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양심을 형상화한다. 동주는 저승에서 돌아본 자신의 기억과 삶을 통해 현실에서 애써 외면하고 있던 비겁함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승으로 다시 돌아온 순간 깨어나자마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에 나가는 동주, 그는 비로소 침묵을 넘어선 말을 시작하게 된다.

    프롤로그와 각 장면의 막 사이에 들어가는 시와 영상, 그리고 정적 등을 통해 공연 전체가 한 편의 시를 연상케 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는 연극 <빨간시>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위안부들의 상처와 여배우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펼쳐놓는다. 실제로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어떤 일들을 당했는지 잘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이들에게 생생한 고통을 전함으로써 그것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 빨간시

    사진제공 [극단 고래]

  • 빨간시
  • 일시 : 3월22일(금)∼3월31일(일)
    평일8시 / 토 3시, 7시 / 일 3시 / 휴일 없음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작, 연출 : 이해성
    출연 : 박용수, 강애심, 유병훈, 이지현, 김동완, 최수현, 박혁민
    차은재, 강소영, 이운호, 강혜련, 이송이, 신장환, 서장호
    문의 : 010-3424-7975 / 010-3542-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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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빨간시, 극단고래, 이해성, 박용수, 강애심, 유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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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20호   2013-03-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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