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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역사, 얼굴로 새긴다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극단 ETS <페이스>

최윤우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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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알 것 같은데 쉽게 그 대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이름을 지닌 누군가의 생김과 느낌을 생각해내려고 애쓴다. 그렇다. ‘얼굴’은 사람을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방법이다. ‘영혼의 통로’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얼굴은 마주하는 사람의 삶과 생, 가치관과 행동습관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첫인상’이라는 느낌이 상대방을 인식하는 가장 강력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얼굴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요즈음, 기억과 현실을 오가며 희망을 말하는 ‘얼굴’이 그려진 무대가 있다. 다섯 살 소녀부터 여든 두 살의 할머니, 그 사이사이 함께 공존했던 어떤 얼굴들이 역사 위에 새겨진 무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얼굴로 기억하게 하는 무대, 연극 <페이스(FACE)>다.

  • 페이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서 잠 못 이루어/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황성옛터’라는 노래의 가사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노래라고만 알고 있는, 이제는 어디에서도 쉽게 들어보지 못하는 이 노래는 1928년 순회극단이었던 ‘연극사(硏劇舍)’가 폐허가 된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를 찾아 받은 쓸쓸한 감회를 그렸다. 가수 이애리수가 불러 히트가 된 ‘황성옛터’는 나라를 잃어버린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의 슬픔을 대변하며 전국에 펴져나갔고, 조선총독부는 이 노래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페이스
  • 무대 위에 이 노래가 흐르면 얼굴을 그리고 있는 어떤 할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섯 살 때 얼굴, 열다섯 살 때 얼굴을 그리다가 차츰차츰 만났던 얼굴을 그려가는 그녀의 그림에는 여러 여자들의 얼굴들이 있다. 시골마을, 학교 가고 공부하고 싶었던 것이 소박한 꿈이었던 한 소녀(할머니)는 일본순사에게 아버지를 잃고 더 힘들고 고달픈 삶에 직면한다. 공장에서 일하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일본인의 군복 공장에 취직하게 되면서 마주하게 된 한 소녀의 인생…. 일제강점기를 살아냈던 한 여인이 그 시절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가는 연극 <페이스>는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재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위한 희망을 그려내는 모노드라마다.

    페이스

    소녀의 어린 시절, 위안소로 끌려가게 되는 과정, 위안소에서의 기억, 그리고 할머니의 현재 모습을 폭 넓고 인상적인 연기로 담아내고 있는 연극 <페이스>는 배우 김혜리가 쓰고, 연출, 출연하는 모노드라마다. 배우의 연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작품의 특성상, 창작 초기부터 입체적으로 창조된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구성이 강점이다. 두 개의 큐브를 활용한 미니멀한 무대 위에서 영상 이미지를 통해 다양한 공간을 표현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이미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연출한 멀티미디어 공연이다. 그러면서도 영상, 조명, 무대의 과하지 않는 구성으로 작품의 밀도를 높였다.

    ‘아주 짧게 사용한 녹음된 음성을 제외하고 김혜리 혼자 모든 대사를 소화해 내지만,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공연 평처럼 일제 강점기를 살아낸 한 여성의 이야기로 기억을 재해석하고 기억과 현실을 오가는 연극적 실험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 연극 <페이스>는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넘어, 할머니가 가진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 그리고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사진제공 [극단 ETS]

  • 페이스
  • 일시 : 4월4일(목)~4월21일(일)
    평일 8시 / 토, 일 3시 (월 공연 있음)
    장소 : 정보소극장
    작/연출/출연 : 김혜리
    문의 : 02-889-3561, 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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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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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극단 ETS , 페이스, 김혜리, 모노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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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21호   2013-04-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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