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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대상을 잃어버린 길목에 ‘내’가 있다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국립극단 <칼집 속에 아버지>

최윤우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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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고연옥과 연출가 강량원의 만남이라. 왠지 쉽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창작자의 만남이 궁금하면서도 낯설다. 그것은 일상의 소소한 소재를 확장시켜 현대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며 사회의 부조리한 면면을 직시했던 작가와 고전을 각색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배우의 몸성을 연극적 언어로 확장시켜왔던 연출가의 서로 다른 작업방식이 어떤 시너지를 발휘할까 하는 불안함과 궁금함이다.
여기에 국립극단의 프로듀싱이 만났으니, 주목할 만한 창작극이 없었던 2013년 초에 올라가는 <칼집 속에 아버지>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것 역시 사실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안정된 시스템 위에서 펼쳐질 앙상블이다. 또한 ‘무사’의 이야기로 펼쳐진 재밌는 소재와 그 위에 덧붙여질 연출가의 메소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모인 이 무대 위에 구현될 꿈의 세계가 우리에게 어떤 자극을 불러올 것인가 하는 기대감이다.

  • “우리는 그냥 연습을 하겠습니다.” 국립극단 연습실 스튜디오 하나. 40명의 관객들이 모인 그곳에서 <칼집 속에 아버지> 리허설이 시작된다. 공연이 2주 정도 남은 시점으로 관객모니터를 통해 작품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였다. 연출가도 배우도 관객들도 조금은 긴장된 모습으로 무대에 집중한다. 공간과 배우 외에 갖춰진 것 없는, 완성된 형태의 공연은 아니지만 순간순간의 몸짓과 대사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눈과 귀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렇게 <칼집 속에 아버지>는 안내자와 같은 배우 윤상화의 이야기로부터 무사의 시대로 들어간다.

    칼집 속에 아버지


    알 수 없는 시대, 무사들의 이야기
칼집 속에 아버지
  • 하늘과 땅이 멀어진 이유가 있단다. 천사들이 싸우다 찢긴 몸이 떨어져 잔인하고 사악한 왕들이 생겼고, 그래서 땅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존경받던 무사들이 사라진 이유와 겉모습만 치장하는 인간들, 정의로운 싸움이 사라진 시대 등 알 수 없는 말들을 펼쳐내던 사공에게 ‘갈매’가 말을 건다. 배가 너무 느리단다. 사공과 갈매의 선문답이 계속되고, 잠에서 깬 갈매는 어서 강을 건너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사공은 ‘언제 강을 보았느냐’며 되묻더니 훌쩍 뛰어나와 사라진다. 이어지는 장면은 무사 흑룡강과가 갈매의 만남. 그리고 찬솔아비, 아란부인과 갈매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서사가 드러나는데, 이러한 연극의 구조는 게세르 신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연극 <칼집 속에 아버지>는 위대한 무사였던 아버지가 변소에 처박힌 채 발견된 이후 아들인 갈매가 무사 세계의 규율에 따라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문제는 ‘갈매’가 무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원수들의 이름이 적힌 긴 종이를 들고, 사공이 안내하는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7년 동안 원수를 찾아 헤매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머무르게 된 마지막 마을, 그곳은 마을처녀를 재물로 받는 잔혹한 왕, 검은등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의미 없는 방황을 마치고픈 갈매는 천사와 악마의 축복을 동시에 받아 대적할 적이 없는 검은등과의 일전을 치른다. 절대강자였던 검은등의 주술에서 살아남은 갈매와는 반대로 주술이 풀려 백발의 노인이 된 검은둥, 아버지의 원수가 이미 죽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갈매는 자신들의 왕이 되어달라는 마을 사람들의 청을 거부하고 고향으로 떠난다.

    칼집 속에 아버지

    자아를 찾아가는 꿈과 현실의 세계, 어떤 이미지로 완성될까?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떠난 무사 ‘갈매’의 서사는 영웅이 만들어지는 판타지에 머물러 있지 않다. 갈매가 무사가 되기를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마지막 무사가 돼 버린 것처럼, 연극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내몰려 스스로의 삶의 가치와 태도를 지켜나가기 힘든 인간의 삶을 은유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갈매가 싸움의 대상을 찾지 못해 7년 동안 헤맬 수밖에 없던 이유도 이와 같다. 그는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왜 싸워야 하는지도 혼란스럽다. 그저 세상의 규율이 그렇기 때문이니, 그의 목적 없는 방황이 지속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칼집 속에 아버지

    고연옥 작가의 희곡은 강량원 연출의 메소드와 어떻게 조우할까. 이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특징적인 요소가 여기에 있다. 강량원 연출이 선보였던 작품의 특징은 ‘몸성’이다. 언어가 중심구조로 기능하는 여느 연극들과 달리, 그의 작품은 배우의 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압축된 움직임과 그 속에서 꿈틀대는 연극적 상상력을 만나게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습과정은 치밀하고 섬세하되 더디다. 움직임의 당위성을 갖기 위한 수많은 과정을 경험하며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때로 그것은 배우 스스로가 알지도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끄집어냄으로써 드러나기도 하고, 반복된 행위를 통해 찾게 된 명확함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순간 만들어진 것이 곧 완성으로 귀결되지도 않는다. 작품은 매 순간순간 다시 만들어지고 다시 구성된다. 관객과 만나는 지점에서 반응하는 순간의 호흡과 미세한 움직임으로부터 달라지고 변형된다. 그래서 연습과정에서 그려지는 단면을 짐작하여 이럴 것이라고 가늠하기 쉽지 않다. 다만 전작에서 보여줬던 그의 연극성이 새로운 희곡과 배우들을 만나 어떤 과정 속에 놓여있는가를 바라볼 뿐이다.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각각의 장면들이 만들어 놓은 서사와 이야기는 김영민 김정호 윤상화 박완규 박상종 등 각각의 매력을 가진 배우들의 노련함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다. 남은 것은 압축된 서사로 극적 상상력을 확장시킬 몸의 언어가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제는 조금 더 서사를 압축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는 강량원 연출의 말처럼 내적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텍스트의 진중함에 덧붙여진 무대의 극적 상상력이 어떤 모습으로 확장될 것인가? 이 작품을 끝까지 지켜봐야할 특별한 이유 중의 하나다.

    [사진제공 : 국립극단]

  • 칼집 속에 아버지
  • 일시 : 4월 26일(금)∼5월 12일(일)
    평일 8시, 토일 3시, 월쉼
    장소 :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작 : 고연옥 연출 : 강량원
    출연 : 김영민, 김정호, 윤상화, 박완규, 박윤정,
    박상종, 박용, 박미현, 김정환, 이윤재,
    이윤재, 한명일, 마두영, 변민지, 주재희
    문의 : 1688-5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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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강량원, 고연옥, 칼집 속에 아버지,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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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22호   2013-04-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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