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엇갈린 관점으로 야기된 비극적 사랑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극단 컬티즌 <채권자들>

최윤우_연극평론가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호기심에서부터, 그리고 관심이 깊어지는 순간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이나 표정 하나하나에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할 때, 이미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버리기도 하는 그것! 설렘으로 시작하여 깊은 신뢰로 유지되는, 아름답고 애잔하여 더 없이 그립고 그리워지는 그것이 우리가 경험했거나 혹은 꿈꾸는 사랑의 보편적인 모습이리라. 하지만 그러한 따뜻하고 섬세한 정서가 자칫 잘 못 다스려지면, 그 어떤 상황보다 비극적 결말을 가져오기도 한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질 수 없는 사랑의 속성이 집착이나 이기심, 폭력과 억압 등의 또 다른 형태로 확장되며 금기시 된 인간의 본능을 들여다보는 열쇠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때로 그것은 당대의 사회적 담론을 에둘러 표현하는 소재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말하는 적극적인 표현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 이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은 그 시대의 변화를 읽은 메타포로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한 여인과 그를 둘러싼 두 명의 남편의 대화로 이뤄진 연극 <채권자들> 역시 표면적으로는 엇갈린 관점으로 야기된 사랑의 비극적 복수를 그리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구시대의 관습과 새로운 이념간의 충돌과 변화를 들여다보게 한다.

  • 연극을 선택할 때 주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 있다. 어떤 작가인지, 연출가는 누구인지, 출연 배우들의 면면은 어떤지, 그 작품을 만드는 극단의 신뢰도는 어떠한지, 공연되는 극장은 가까운지, 재밌는 이야기인지… 아, 티켓 가격은 얼마인지! 보는 이들에 따라 우선순위는 다르겠지만 연극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은 ‘무대’라는 현장성이 만들어낸 특징 때문이다. 극단 컬티즌의 <채권자들>은 이러한 선택기준을 놓고 볼 때, 작품의 선택에 대한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채권자들>은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해 9월부터 올해 초까지 대표작을 연이어 공연하는 페스티벌이 열렸을 만큼 연극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대표작이다. 두 명의 배우가 대화를 나누며 전개되는 <채권자들>의 무대를 궁금하게 만드는 이호재(구스타프) 선생과 길해연(테클라), 김영필(아돌프)이 가진 배우로서의 존재감은 왜 연극무대가 매력적인가를 충분히 느끼게 한다. 자극적인 소재와 이슈를 쫓아 말장난의 유희적 연극이 양산되는 무대에서 삶의 가치와 태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펼쳐내고 있는 극단 컬티즌의 선택이라는 것 역시 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 소유욕이 낳은 충돌과 대립

    어떻게 만났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의도적이 아니라면, 이뤄지기 싶지 않은 관계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두 명의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다. 구스타프와 아돌프다. 아돌프는 그림에 대한 한계와 그로 인한 절망에 빠져 있던 자신에게 예술에 대해 눈뜨게 해준 구스타프에 대한 경계나 적개심은 없다. 대화가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스타프가 아돌프의 아내 테클라의 전남편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흥미로워진다. 왜 구스타프가 아돌프의 아내에게 관심이 많은지, 아내 밖에 모르는 아돌프에게 여자란 어떠해야한다는 것을 주입시키고 있는지, 수컷만의 특권을 빼앗긴 채 사랑받지도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며 아내를 의심하게 만드는지, 조금씩 구스타프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렇다. 구스타프는 자신을 떠난 테클라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녀의 현재 남편인 아돌프를 찾아온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아돌프는 아내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일주일 만에 돌아온 테클라와 팽팽한 대결을 벌인다. 자유분방한 삶을 꿈꾸는 테클라는 갑작스런 아돌프의 변화가 이상하다. 그것도 잠시, 우연인 듯 나타난 구스타프를 만나게 되는 테클라는 아돌프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구스타프의 악의적인 의도에 속내를 드러내고, 아내 밖에 몰랐던 아돌프는 아내의 배신에 절망하며 목숨을 끊는다. 아돌프는 그의 전부였던 테클라를 잃고, 테클라는 사랑했던 남편을 잃으며 절규한다. 이를 자조적 탄식으로 엿보는 구스타프에게도 복수를 감행하여 얻은 통쾌함은 없다. 빗소리가 들리고 막이 내린다.



    “정말? 흥미로운데?”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장 구스타프 - 아돌프(이호재-김영필), 2장 테클라 - 아돌프(길해연-김영필), 3장 구스타프 - 테클라(이호재-길해연)의 팽팽한 맞대결을 펼치는 2인극 형식으로 진행된다. 각각의 장면들에서 만들어지는 대립과 갈등, 그것이 조금씩 쌓여가는 복선들은 인물들의 대사에서 암시된다. 특히 구스타프가 무심결에 “정말? 흥미로운데?”라고 화답할 때 아돌프가 자신의 아내도 똑같은 표현을 쓴다고 놀라워하는 것과 테클라가 구스타프와 아돌프의 만남을 눈치 챈 것 역시 같은 대사다. 이처럼 연극을 흥미롭게 하는 것은 캐릭터와 그 인물을 형성하고 있는 대사의 맛이다.



    “여자는 남편이 있어야 독립할 수 있다, 주도권은 수컷의 특권이다. 여자는 남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여자는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없다, 남편은 아내 밑에서 있을 수 없다”는 구스타프의 신념은 확고부동하다. 반대로 “망상은 남자를 미치게 한다,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다, 남편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항변하는 테클라의 자유분방한 신념 역시 거침이 없다. 그 둘 사이에 끼인 아돌프는 혼란스럽다. 테클라가 전부였던 아돌프의 믿음은 구스타프에게로 옮겨가고, 의혹이 가중되고 혼란이 커질수록 숭배해야할 대상을 찾지 못해 발작을 보일만큼 애처롭다. 그에게 구스타프는 얼음처럼 찬 물에서 자신을 꺼낸 은인이자, 다시 그 물속으로 머리를 밀어 넣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테클라는 신과 같은 존재였으나, 절대존재인 신의 배신으로 더 이상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절망의 늪이기도 한 것이다.

    연극 <채권자들>은 그렇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는 세 인물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 그 화해할 수 없는 투쟁의 경계에 있는 삶의 대한 견해와 태도의 차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작품의 묵직한 질감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희극’이라는 수식을 달고 있는 만큼 작품 곳곳에 희극적 요소가 많이 담겨있다. 그것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배우들의 호연 역시 작품을 흥미롭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사진제공 : 극단 컬티즌]

  • 트라우마 수리공
  • 일시 : 5월 10일(금)∼5월 26일(일)
    화,목,금 8시 / 수,토,일,공휴일 3시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원작 :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작 : 성수정 윤색 : 동이향 연출 : 이성열
    출연 : 이호재, 길해연, 김영필
    문의 : 02-765-5476

 
[최윤우의 연극미리보기] 함께 나온 기사 보기

치유의 꿈과 현실
극단 명작옥수수밭

<트라우마 수리공>

엇갈린 관점으로 야기된 비극적 사랑
극단 컬티즌

<채권자들>

태그 채권자들, 이성열, 스트린드베리

목록보기

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23호   2013-05-02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