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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의 기억, 상처받은 마음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극단 산수유 <주머니 속 선인장>

최윤우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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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에 선인장이 있다? 치명적인 아픔은 아니지만 생각만 해도 따끔따끔한, 신경 쓰이는 일이다. 눈물 한번 꾹 참고 얼른 주머니에서 꺼내놓으면 될 것 같은데, 왠지 꺼내기도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수치심’이다. 그것도 괜찮다. 의식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으니, 존재 자체를 망각하며 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면 되는데, 그런데 왜 일상의 곳곳에서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 드러날까? 그것은 도대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수치심의 기억을 다룬 연극, 국내 초연으로 소개되는 <주머니 속 선인장>은 핀란드 작가 안나 크루게루스의 <엉터리 연극A Lousy Performance>를 번안한 작품이다.

  • 연극 주머니 속 선인장


    이것은 예술(연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극단 연습실. 공연을 6일 앞두고 심각한 위기에 처한 배우들이 있다. ‘수치심’을 주제로 하는 대본을 걱정스럽게 기다리던 배우들은 희곡을 쓰던 작가가 갑자기 정신병원에 수용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전작이었던 <햄릿> 공연을 망쳤던 배우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 난감하다. 애초 주제가 ‘수치심’이었으니,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단원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로 공연을 만들어 가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각자의 기억 속 깊은 곳에 내재돼 있던 상처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여성성이 강했던 남자아이가 겪어야 했던 상처, 문학 소년이었던 남자아이가 여학생들에게 농락당했던 수치심의 기억, 부부관계에서의 갈등 등 이야기를 꺼내놓는 순간 유년시절부터 성년이 된 지금까지 거부당하고, 조롱당하고, 존중받지 못했던 상처들이 하나둘 드러난다.

     

    연극 <주머니 속 선인장>은 그렇게 누구나 감추고 있는 가슴 아픈 기억, 수치스러운 자아를 꺼내놓는 배우들의 작업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인간성, 소진되어 버린 휴머니즘적 가치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들이 중심인물로 그려지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머물러 있지 않은 이유는 이 작품이 예술의 가치에 대한 주장이 아닌, 인간의 근원적인 본질,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연출가의 말

연극 주머니 속 선인장
  • 다큐와 즉흥 사이

    연극 <주머니 속 선인장>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극중극 형식이다. 희곡은 장마다 작가가 정의한 ‘SMB’라는 형식의 극중극을 진행한다. 개념화된 정의가 없는 그것은 작가의 설명대로라면 다큐와 즉흥 사이에 있는 조금은 낯선 형식이다. 각자가 지닌 수치심의 기억은 연습실에서 아무런 허물없이 이야기를 건네듯 이어진다. 그리고 연출가는 “그것을 연기해봐,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기로 해보라”고 주문한다. 연극은 극중극으로 들어가고, 마치 사이코드라마처럼 실제인 듯, 연기인 듯 구분하기 쉽지 않은 장면이 그려진다. 극 중 배우들의 연극은 그렇게 6명의 등장인물이 만들어낸 각각의 상황을 이어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되고, 연극은 호평을 받으며 마무리된다.

     


    연출가의 말


    과거와 현재, 실재와 상상이라는 다양한 상황으로 풍부한 연극적 재미를 주고 있는 <주머니 속 선인장>은 2006년 로 핀란드 비평가 협회 최우수 작품상을 받으며 주목 받고 있는 안나 크루게루스의 독특한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2004년 핀란드 국립극장에서 초연. 원제목은 <엉터리 연극(A Lousy Performance)>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연극의 결말처럼 ‘엉터리 연극’이 <햄릿>보다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자신의 수치심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배우들 스스로 진솔한 연기의 지점을 발견하게 됐기 때문이다. 연극이 말하는 또 다른 상징이자 비유다.

     

    연극은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고 있는, 꺼내고 싶지 않은, 의식하지 못했던 수치심의 기억이 무엇인가를 인식하게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어떤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개인의 개성과 삶의 가치가 무너져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우리는 끊임없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그것이 이 사회가 양산해가고 있는 일등주의에서 파생된 비상식적인 현상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되짚어보게 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수치심의 기억은 사실 상처받는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부끄러워야 할 수치심이 있는 반면, 상처를 받으며 방어적으로 생긴 것이 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진정성이 결여된 삶을 살도록 강요받으며 얻게 된 수치심이 있다. 연극 <주머니 속 선인장>이 확장하고 있는 또 다른 이야기다.


    [사진제공 : 극단 산수유]
  • 연극 주머니 속 선인장 포스터
  • 일시 : 5월29일(수)∼6월16일(일) 평일 8시 / 토 3시, 7시 / 일 4시
    장소 : 설치극장 정미소
    원작 : 안나 크루게루스 Anna Krugerus
    번역 : 홍이정 번안
    연출 : 류주연
    출연 : 권지숙, 구시연, 김선영, 신용진, 이태형, 이다일
    문의 : 010-3186-5249 / 010-7488-2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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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주머니 속 선인장,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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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24호   2013-05-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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