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수치와 질투, 그것을 인식하는 타자의 시선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남산예술센터 & 상상만발극장 <천 개의 눈>

최윤우_연극평론가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어떤 연극을 ‘기대한다’고 말할 때, 그 기대치에 대한 기준은 어디에서 나올까? 개개인 마다 보는 시각과 즐기는 감각, 취향에 따라 다른 관점에 섣불리 공통분모를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극의 경우 작품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와 그것을 담고 있는 소재,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극적 상상력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연극’이라는 형식으로 올라가는 무대에서 펼쳐질 연극적 특성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는 말이다. 그런 기준에서 봤을 때 남산예술센터와 상상만발극장이 공동제작 한 <천개의 눈>은 기대해볼만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미궁’의 신화로부터 역사와 예술의 관계를 넘어, 치욕과 수치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삶과 권력, 그 속에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신화적 세계 속에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 <천개의 눈>은 2012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에 시범공연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서양 신화를 도입하여 작가의 언어로 새로이 조탁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는 심사평처럼, 희곡의 문학적 언어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작품이다. 연극은 미노타우로스Minotaurs, 그리스 신화 중 인간의 몸에 거대한 수소의 머리를 지닌 괴물와 테세우스These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테네의 영웅 신화는 물론 인신공희人身供犧, 사람의 몸을 신적 존재에게 제물로 바치는 행위 혹은 그러한 풍습, 백일홍설화처녀의 넋이 백일홍 꽃으로 피어났다는 내용의 설화 등 동서양의 신화와 설화를 한데 섞어 인간의 수치와 질투에 대한 시선을 ‘자로, 타로, 미로’라는 세 인물의 갈등을 축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타자의 시선과 나의 시선, 그것이 중첩되는 미궁의 세계에서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한 선택을 묵직한 질감으로 담아내고 있다.

    보는 자와 말하는 자, ‘미사’의 이야기



    연극은 자로왕의 마지막 침전 환관이자 ‘보는 자와 말하는 자’인 미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늙고 병든 왕 자로와 그의 왕국은 외세의 침략 속에 무너지기 일보직전. 여기에 변방 호족까지 외침에 편승, 반란을 일으켜 도성을 향하고 있다. 자로의 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신하인 환관 미사에게 왕은 마지막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묻고, 미사는 자로에게 ‘타로의 미궁’으로 피신하라고 말한다. 그때부터 연극의 화자인 미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로왕은 20년 전 혼탁한 세상에 홀연히 나타난 먼 나라에서 온 영웅이었다. 호족들은 그를 이용해 왕을 제거하고 권력을 차지하려 했다. 하지만 자로는 왕을 죽이는 대신 왕의 아들이었지만 반인반수 괴물이라는 소문 속에 호족들에 의해 미궁에 갇혀 인육으로 연명하는 타로를 무찔러 민심을 얻고자 미궁으로 떠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자로왕은 타로를 무찌르고 살아 돌아오고, 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자로는 왕이 된다. 그런데, 이제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타로처럼 미궁으로 떠나가야 하는 신세가 된 자로왕, 그는 20년 전 타로를 처치할 때의 진실을 밝힌다. 신화의 실체와 대면했던 자로는 타로를 죽인 영웅이 아닌, 실제로 타로에게 제압당해 사육 당했다. 미궁에서의 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타로는 자신의 삶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자로를 풀어주고 자신의 목을 내어준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죽은 타로의 목을 들고 미궁을 빠져 나온 자로가 왕이 되었던 것이다. 환관 미사는 이제 자로가 타로의 미궁으로 향할 때라면서 호족들에게 항복할 것을 권고하지만 자로는 항복하지 않는다. 자로는 장수 여강에게 자신을 베라 하고, 여강은 마치 자로가 타로를 베었듯이 자로를 벤다. 환관 미사는 자로왕 대신 미궁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 미궁에 자신을 가둔다.

    아름답고, 감각적이며, 시어로 가득한 대사, 세밀한 감성 표현이 도드라졌던 작품 <영원한 너>의 정영훈 작가와 박해성 연출이 다시 만난 <천 개의 눈>은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수치와 질투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동서양의 신화와 설화 속 모티브에서 가져온 ‘미궁’ 속에 던져버리고, 그 공간으로부터 파생된 거짓된 역사와 감춰진 진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투영되는 인간의 수치와 질투를 바라보게 한다.



미궁의 상징성,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자로왕이 갇혔던 ‘미궁’은 하나의 세상이다. 그것은 변하거나 바꾸기 힘든 구조이고, 그 구조를 유지시켜주는 거짓된 이데올로기이며, 늘 스스로를 옥죄는 치욕적인 삶의 공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치욕의 삶의 공간에서 발버둥치는 것을 먼 곳에서 바라보는 타자화 된 공간이기도 하다. 연극은 그 공간이 상징하는 의미에 집중한다. 누군가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고 비록 거짓일지라도 그것을 장악한 자가 승리하는 구조, 승리한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치스러운 삶을 만들어가야만 하는 비정상적인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한다. 연극 <천 개의 눈>은 그렇게 스스로 베어도 베어지지 않는 치욕을 일깨우는 시선에 대해 되묻는다. 자신을 베어 고통스럽게 이 치욕을 극복하고 삶이 삶이기를, 인간이 인간이기를 선택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연극은 ‘미사’를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삶과 권력의 끝자락에 다다른 노쇠한 왕의 회한을 곁에서 지키는 화자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연극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이야기를 이어왔던 환관 미사의 부재를 목도하게 한다. ‘보는 자이자 말하는 자’였던 미사는 직접적으로 역사 속에 개입하지 못한 채 존재의 부재를(수치를) 가슴에 안고 미궁 속으로 자기 자신을 가둔다. 연극은 그런 미사의 역할을 기록가, 예술가로서의 운명을 지닌 이들에 대한 또 다른 서사로 확장시킨다. 개인의 삶과 권력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담는 예술가와의 위태한 존재론적 관계로까지 연극 <천 개의 눈>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미궁처럼 다양한 갈래를 갖고 있다.

[사진제공 : 남산예술센터]
  • 일시 : 9월4일(수)~9월22일(일)
    평일 8시 / 토,일,공휴일 4시 (9월18일, 월 공연 없음)
    장소 : 남산예술센터
    작가 : 정영훈 연출 : 박해성
    출연 : 정선철, 박완규, 선종남, 김훈만, 변효준
    문의 : 02-758-2150

 
[최윤우의 연극미리보기] 함께 나온 기사 보기

수치와 질투, 그것을 인식하는 타자의 시선

남산예술센터 & 상상만발극장
<천 개의 눈>

침묵된 역사, 말이 기억을 현존하게 한다

극단 코끼리만보
<말들의 무덤>

태그 천 개의 눈, 상상만발극장, 박해성, 남산예술센터

목록보기

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31호   2013-09-05   덧글 1
댓글쓰기
덧글쓰기

테디삐
잼있어요 딱 내 스탈.... 다소 진지하고 무겁지만 빨려들어갈 듯한 흡입력에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2013-09-05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