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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의 천재성과 위트를 엿보다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명품극단 <라긴> <유령>

최윤우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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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냉철한 시각으로 그려낸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홉의 단편소설 두 편이 무대로 오른다. 명품극단의 <라긴>과 <유령>이다. 유명 단편소설인 『6호 병동』과 『어느 관리자의 죽음』을 각색한 두 작품 모두 현대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는 작품이다. ‘위험한 질서’에 묶여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현실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있는 <라긴>이나 현대인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들여다보고 있는 <유령> 역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연극은 인간의 심적 불안감과 고통의 요소들을 거칠지만 정확하게 그리고 있는 반면 두 작품 모두 사회와 인간의 모순적인 부분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 오히려 그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 그리고 그 속에서 생각해봐야 할지는 않다 스스로에 대한 자문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있을 뿐이다. 두 작 모두 신체언어를 중심으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이미지를 연극언어로 확장시키고 있는 명품극단의 품주목할 만한 신작이다.

  • 라긴,유령
라긴
<라긴> 2013.09.25~10.06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긴>

작은 도시의 병원장인 라긴. 환자에게 관심이 있는 라긴과는 달리, 그가 일하고 있는 병원의 의사들은 도시의 상류층들, 병원의 투자자들과의 만남과 돈, 여자, 향락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런 병원의 생활에 염증을 느낄 무렵, 라긴은 병원에서도 특별히 소외되어 있는 6호 병동 - 정신병동의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6호 병동의 환자들은 단순히 정신병자로 치부되지만, 라긴은 그들 안에 특별한 무언가가 잠재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들은 진정한 삶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채 인간이라는 존재와 세계의 관계를 깊이 고민하는 지성인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눈초리는 차갑기만 했다. 그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며 점차 그들에게 이끌리는 라긴을 두고 병원의 의사들과 사람들은 ‘의사가 드디어 미쳐버렸다’고 생각할 뿐이다. 결국 라긴은 병원 원장직에서도 쫓겨나고, 급기야 환자가 되어 6호 병동에 격리되고 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라긴은 강한 육체적, 심리적 폭력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안톤 체홉의 유명 단편소설인 『6호 병동』을 재해석한 연극 <라긴>은 사회가 만들어낸 질서에 얽매여 정신이상자들이 되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부조리한 단면을 그린 작품이다. 원작의 원형은 유지한 채 현대의 난폭함과 잔인함을 더욱 강한 극적인 표현들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제도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폭력적이고 이분법적인, 비정상적인 사회구조를 목도하게 한다. 즉, 획일화된 규율에서 이탈하거나 반항하면 처벌과 징계가 내려지고, ‘질서’라는 명목 하에 무차별한 폭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저항할 수도 없는 구조적인 모순을 들여다보게 하고 있다.

일시 : 9월 25일 ~ 10월 6일
평일 8시, 토·일 4시, 월 쉼
극본 : 김태현 연출 : 김원석
출연 : 남명렬, 백익남, 김용태, 김철환
전윤지, 장준환, 김경욱

무대를 감싸고 있는 것은 ‘흰색’이다. 무섭도록 청결해 마치 상처를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무장한 것처럼, 연극은 겉으로 보기엔 깨끗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도시의 냉혹한 공간을 상징하고 있다. 연극은 이러한 차가운 세상에 대한 저항, 정형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폭력과 억압이 난무하는 현대사회를 직면하게 한다. 결국 인간성의 파괴를 일으키는 사회에 저항하지만 결국에는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는 주인공 ‘라긴’을 통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질문은 하나다. 사회가 만들어낸 질서를 따르고 굴복하는 사람이 정상인가? 그것은 오히려 근본을 잃어버린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처럼 연극 <라긴>은 알면서도 뿌리칠 수 없는 위험한 질서에 묶인 현실을 거침없이 폭로한다.

유령
<유령> 2013.10.09~10.13
자신을 죽이고 있는 ‘유령’은 누구인가, <유령>

일시 : 10월 9일 ~ 10월 13일
평일 8시, 토 7시, 일·공휴일 4시
극본 : 공동구성 연출 : 서은정
출연 : 채희재, 고민철, 김우현, 정욱현

하급 공무원인 이반은 극장에서 장관에게 재채기를 하고 이후 연거푸 용서를 빈다. 그런 이반은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이에 대해 이반의 아내와 검사는 이반의 죽음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재판을 신청한다. 검사는 이반의 죽음을 타살이라 주장하며 침을 맞은 장관을 고소한다. 하지만 장관 대신 재판장에 나타난 변호사는 이반의 죽음이 그저 소심한 인간이 행한 소심한 자살이라 주장한다. 검사와 변호사는 이반의 죽음을 타살, 혹은 자살로 증명하기 위해 이반과 장관의 만남을 목격한 목격자, 이반의 정신분석자, 이반의 직장 상사를 비롯해 온갖 분야의 학자들과 전문가들을 재판정으로 불러온다. 하지만 이반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심문하게 되면서,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과는 달리 사건은 더욱더 오리무중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체홉의 단편소설 『어느 관리의 죽음』을 각색한 <유령>은 허무하지만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건 속 진실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극이 절정에 이르지 않는 ‘제로엔딩zero ending’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고 피폐해져가는 현대인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브제와 움직임, 대사를 통해 직접적이고 거칠게 표현된 무대는 더욱 더 잔인해지는 현대 사회를 투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극은 경쟁구도에서 발버둥치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누가 나의 경쟁상대인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가야만 하는 시대. 타인을 밟고 서야만 앞서 갈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불안과 위기에 사로잡힌 채 정작 ‘보이지 않는 자신’과의 사투에서 영혼을 잠식당하고 있는 인간소외의 단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사진제공 : 명품극단, 문화아이콘]
  • 라긴,유령 포스터
  • 일시 : 월 25일 ~ 10월 13일
    평일 8시 / 토·일·공휴일 4시/10월 12일(토) 7시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3관
    원작 : 안톤 체홉 『6호 병동』『어느 관리의 죽음』
    연출 : 김원석 <라긴>, 서은정 <유령>
    문의 : 02-3673-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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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웹진 32호   2013-09-2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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