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배경을 막론하고 권력을 쟁취하거나 유지하기 위해서 가져야할 필수조건이 있다면, 비이성적인 논리에 대한 자기합리화나 편협함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말을 해도 닫힌 귀는 열리지 않고, 본질보다는 현상에 머문 동어반복으로 대화는 단절된다. 간혹 부침이 생겼을 땐 인과관계와 상관없이 ‘대의’를 위한 것이라는 명제만 수식해주면 되는 것이다. 도덕성은 결여되고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상실된 상황에서도 이와 같은 지난한 역사는 지금도 반복, 재생되고 있다. 왜 인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와 존엄에 대해 망각한 채, 마치 만년을 사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변화의 지점은 없는 걸까? 연극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속에 그 숨은 비밀이 있다. 연극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며 전쟁을 일으켜 살상과 파괴를 일삼는 이들(남성)과 거친 땅을 새롭게 일구며 이전보다 나을 내일을 켜켜이 쌓아가는 화전민(여성)들의 대립과 갈등을 축으로 삶의 본질과 맞닥뜨리게 한다. 개국을 위함이라는 허명 속에 빠진 이들과 묵묵히 땅을 일구는 이들의 삶의 태도와 행위를 들여다보자.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전개되는 폐허의 땅에 진정한 생명을 이어가는 불변의 가치가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