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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순수를 만나다
[연극 미리보기] 예술의전당 <환도열차>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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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심각한 사회문제는 사실 모르는 척 하는 게 속 편하다. 해결 방안을 찾기가 요원한, 근본적이고 오래된 문제일수록 더욱 그렇다. 만약 역사와 정치, 경제의 헤게모니를 누가 잡고 있는지, 그 헤게모니는 어떻게 생성되고 정착되었는지, 그래서 생긴 문제점은 무엇인지 누군가가 일상에서 시시콜콜 따지고 든다면 아마 꼰대라는 소리를 면하기 어려울 게다. 하지만 연극을 통해서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고 믿는다). 블랙박스 극장 안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캐릭터와 이야기, 그에 걸맞은 무대형식을 앞세워 오감으로 말을 거는 연극은 시대의 거울, 반성의 매체로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닌다. 시시각각으로 다양한 미디어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대이지만 아직까지 연극이 매체로서 유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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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도열차>가 향하는 곳, 지금과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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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겸 연출가인 장우재는 특히 사회적 감수성을 건드리며 사람 마음 불편하게 만드는 연극 만들기에 일가견이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과 희곡상을 수상한 연극 <여기가 집이다>의 작가답게 신작 연극 <환도열차>도 꽤나 아프게 사회의 폐부를 건드린다. 야구의 구질에 비교하자면 그의 연극은 처음에는 변화구의 모양새를 띠는 듯하지만 결국은 직구임이 드러난다. 작품은 한국전쟁 중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1953년 부산에서 출발한 ‘환도(還都)'열차가 2014년 현재의 서울에 갑자기 나타나고, 기차 속에 생존자가 있다는 독특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역사 속에 실존했던 환도열차에 올라탄 과거의 피난민들이 어떤 마음으로 상경을 결심했을까,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서울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에 대한 상상을 직설적으로 펼쳐 놓는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맨발땅 이야기>

  • 작품에서 6.25라는 소재는 지금의 여기, 서울을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로만 역할을 할 뿐이다. 열차는 2014년 현재의 서울로 곧장 타임워프(time warp)한다. 관객은 시간을 초월해 열차 속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20대 초반의 지순을 통해, 1950년대의 시대적 감수성으로 오늘날 서울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극 중 지순은 오늘날의 서울을 바라보며 견디기 힘든 불편함을 느낀다. 지순의 순수한 눈으로 보기에 21세기 서울의 모습은 전쟁 때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아비규환에 다름 아니다. 6.25 이후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순이 보기에, 서울은 전쟁의 아픔을 겪은 후 새 시대를 열기 위한 공생의 가치관을 찾기보다는 ‘먹고사니즘’을 최우선 가치로 삼은 듯하다. 지순의 때늦은 당도로 인해, 사람들은 그동안 서로 속고 속이며 배신과 화해의 시도를 거듭했음이 드러난다. 지순의 눈을 빌려 작품이 목격한 것은 다름 아닌 성공과 야망을 위해 최소한의 윤리도 저버린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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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사회의 헤게모니는 SY라는 대기업과 미국 정보기관이 쥐고 있음이 드러난다. 잊어버리고 싶은 것들의 귀환은 현실에 깊이 뿌리 내린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뿐이다. 갑작스러운 열차의 출현으로 한국이 국제협약에 의거해 미국 측과 공동 조사를 벌이고, 대기업인 SY 관계자가 정보의 허브임이 밝혀진다. 사태를 축소하고 숨기기에 급급한 정보당국, 대기업과는 대조적으로, 서울에 환멸을 느끼고 고국을 등진 한국계 미국인 제이슨 양만이 지순을 걱정할 뿐이다. 지순은 남편을 찾아 서울에 왔지만 2014년 서울은 예전의 서울이 아니다. 아흔 살이 된 남편 한상해마저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님을 깨달은 지순은 미국 측 조사관 제이슨 양의 도움을 받아 서울 곳곳을 살피며 세상이 변한 이유를 직접 찾고자 한다. 하지만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혼란에 빠지고 서울은 자세히 보려고 하면 할수록 잘 파악되지 않는다. 시간을 뛰어넘어 뒤늦게 도착한 서울에서 지순은 원하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노란 달


판타지가 없는 무대, 직시할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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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에 대한 구상은 판타지에서 출발했지만 <환도열차>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처럼 지극히 사실적이다. 이러한 직설화법을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연출가는 무대에서 판타지의 요소를 부각시키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미리 본 무대 도면에는 거대한 철근이 공간 곳곳에 수직으로 꽂혀 있었는데 오늘날 서울의 모습과 어딘가 닮아 있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엘리베이션 무대를 활용한다지만 스펙터클한 장치 역시 판타지적 요소는 최대한 배제한 채 사회 변화의 크기를 상징하는 데만 그칠 것으로 보인다. 무대 자체는 시각적으로 시공간을 특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도 관객은 감각적으로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특정하게 될 것이다.

      결국 <환도열차>에서도 이야기와 사람을 중시하는 장우재의 연극적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날 예정이다.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언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이 연극은 시공간의 변화를 이야기 속 이야기로 오롯이 표현해내려 한다. 40여 명의 인물을 연기하는 21명의 배우의 임무가 무척이나 막중하다.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고루 호평받고 있는 윤상화, 장성익, 박무영, 김용준, 이주원 등을 비롯해 안병식, 김정민 등 안정감 있는 신예 배우들이 대거 참가해 작품을 든든히 받칠 예정이다. 스태프로는 2013년 동아연극상 시청각상을 수상한 무대 디자이너 박상봉,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작곡가 조선형 등이 합류한다.


      판타지에서 상상을 시작했지만 정작 판타지는 없는 무대. 당신은 지순과 함께 순수를 잃어버린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 나설 각오가 되었는가. 쉬운 얘기는 아니다. <환도열차>의 리허설을 보면서 문득 만약에 2050년이 되어 과거에 잊어버린 것들이 귀환한다면 과연 무엇이 올까, 상상해봤다.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살펴보니 생활이 어려워 집 안에서 연탄불을 피운 가난한 세 모녀의 소식, 간첩사건, 복지 사각지대의 비극 등의 기사가 사회면에 어지러이 널려 있다. 착잡한 마음에 그만 눈을 감고 싶어진다. 어쩌면 현실인식 정도의 차이가 개인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직면을 권하는 이유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기꺼이 불편한 마음, 착잡한 마음을 간직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나아진다.


    • 서울 아시테지겨울축제 포스터
    • 일시 : 3월14일(금) ~ 4월6일(일)
      평일 8시 / 토 3시,7시 / 일 3시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작, 연출 : 장우재
      출연 : 윤상화, 김용준, 김정민, 이주원, 장성익, 박무영, 김곽경희,
      하성광, 유병훈, 안병식, 신영옥, 류제승, 박기만, 조연희,
      김동규, 강병구, 김지혜, 권진란, 소성섭, 강선애, 고광준
      문의 :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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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도열차>

    태그 장우재, 예술의전당, 윤상화, 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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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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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9호   2014-03-0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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